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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대가야제국의 부활 (11) 제2부 하지태왕의 성장 6

작성일 : 2021.03.29 12:19 수정일 : 2021.03.29 12:23

대가야제국의 부활(11)

2부 하지태왕의 성장(6)

김하기

여가전쟁(고구려와 가야전쟁)에서 승리하고 사실상 최초로 한반도를 통일한 광개토대왕은 점령한 종발성을 아라가야(함안)의 수병(戍兵)으로 지키게 했다. 그리고 신라는 내물마립간과 실성군에게 맡기고 그는 남진에서 승리한 군사 5만명을 데리고 다시 북진했다. 사냥개 같은 모용성이 광개토왕의 남진으로 무주공산이 된 고구려로 쳐 들어가 요동의 신성과 남소성을 함락하고 닥치는 대로 부녀자를 강간하고 재물을 노략질한다는 소식이 파발을 통해 들어왔다.

태왕은 겉으로는 태종대에서 일본을 향해 화살을 날리는 사후제를 하는 등 태연했으나 속마음은 분봉하는 벌처럼 바빴다.

내 이놈 모용성을!’

광개토왕은 모용성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이다.

모용성은 성격이 사납고 포악해 자신을 위해 충성을 바친 공신과 종친들조차 낫으로 풀을 베듯 무수히 처형했다. 한번 마음에 복수심과 앙심을 품으면 죽일 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죽였다. 모용성은 아버지 모용보가 난왕에게 죽은 것을 복수하기 위해 난왕의 부하로 들어가 난왕의 똥구멍을 빨 정도로 충성을 다했다. 성격은 난폭하지만 나름 조리 있고 의지가 굳은 그는 온갖 더러운 충성과 깔끔한 위선으로 난왕의 절대적 신임을 얻었다. 난왕의 신임을 얻자 그는 서서히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먼저 난왕과 그의 형제를 이간질해 분열시킨 뒤 형제간에 서로 내분에 휩싸이게 했다. 이후 집안싸움으로 힘이 빠질 대로 빠진 난왕을 모용성이 공격해 끝내 난왕을 참살하고, 그의 형제와 처자식까지 모조리 잡아 죽였다. 모용성은 난왕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던 태왕조차도 미워해 태왕을 호시탐탐 노리다가 태왕의 남정을 기화로 비어 있는 고구려 땅을 공격하여 신성과 남소성을 함락하고 고구려 땅 칠백 리까지 쳐들어와 있었다.

태왕은 태종대에서 금성으로 올라와 5만의 보기병을 이끌고 고구려 국내성을 향해 다시 질풍노도처럼 올라가려고 하던 때에 대가야에서 한 사람이 급히 달려왔다. 말 위에 있던 태왕은 말에서 내려 가까운 곳의 정자로 옮겼다. 산이 수려하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는 으레 정자가 있었다. 이 정자는 바위와 물, 숲에 싸여 소슬한 멋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정자에 앉은 태왕에게 엎드린 사람은 대가야에서 쫓겨 온 박지 집사였다.

그는 태왕에게 엎드려 급히 보고했다.

백제의 아신왕이 대가야를 쳐들어왔나이다. 이에 우리가 결사항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고숭 도독은 전사하고 어라성은 백제 아신왕에게 점령당하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고숭 도독이 전사했다고?”

, 고장군은 아신왕의 심복 진무 장군의 칼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박지 집사는 지금 대가야의 어라성은 피의 약탈이 이뤄지고 있으며 자신만 겨우 목숨을 건져 이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금성에서 고숭의 전사소식을 들은 태왕은 잠시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무골인 고숭에게 무리하게 대가야의 도독이 되게 했다. 이번 전쟁까지만 버텨주면 다시 그의 곁에 불러올리려고 했는데 안타까웠다.

결국 한 나라의 살림살이는 군인이 아니라 왕과 행정관이 맡아 다스려야 한다. 회령왕이 죽은 이후 대가야는 고구려 장군에 의한 무단통치가 계속되었다. 패장인 아신왕과 내물마립간에게 백제와 신라를 돌려주었듯이, 대가야는 회령왕의 아들인 꺽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것이 종주국이 속국과 신국에 베푸는 자비이자 질서이다.

태왕이 박지 집사에게 말했다.

고숭 도독의 전사는 참 안 되었소. 그는 내가 총애한 심복이었소.”

오로지 폐하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가득한 분이었지오.”

박지도 반죽을 맞추었다.

헌데 이번 전쟁에서 꺽감은 어떻게 되었소?”

태왕은 너무나 현명해서 총애했던 가야아이 꺽감의 안부를 물었다.

꺽감은 후누장군과 함께 가야산으로 퇴각해 그곳에서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습니다.”

, 그럼 대가야는 지금 누가 다스리고 있소?”

고숭을 물리친 진무는 되돌아가고 백제의 젊은 장군 목만치가 대가야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목만치라면 임나왜소의 주수 목라근자 아들이 아닌가!”

광개토왕이 놀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백제는 목씨들을 내세워 끊임없이 가야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는구만. 그럼, 아신왕은 어디로 갔소?”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이상하게도 아신왕은 승전의 기세를 타고 신라로 진격하지 않고 다시 소백산맥을 넘어 백제 땅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이상할 것 없소. 아신왕은 원래 그런 자요. 틀림없이 소백산맥을 넘어 옛 마한 땅에 있는 가야 6국을 점령하러 간 것일 거요. 이번 전쟁에서 원래 아신왕이 노리던 것이 바로 소백산맥 이서에 있는 가야 땅이었소. 이사품왕의 뒤통수를 제대로 친 것이오. 승냥이 같은 아신이 이사품을 부추겨 전쟁판을 벌여놓고 판돈은 자신이 몽땅 챙겨간 셈이오.”

광개토대왕은 아신왕의 마음을 꿰뚫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하긴 승리를 습관으로 하는 광개토왕과는 달리 실패를 습관적으로 반복해왔던 아신왕으로선 한번의 승리가 절실했던 것이다. 백제의 아신왕은 끊임없이 고구려와 맞싸우다 패배에 패배를 거듭하자 이번에는 고구려의 힘을 역이용하기로 작정했다. 가야가 신라를 치는 사이 갸야의 뒤통수를 치는 작전으로 대가야와 옛 마한의 설치된 육 가야의 땅을 뱀이 메추리알을 집어 삼키듯 순식간에 집어삼킨 것이다.

광개토대왕은 끊임없는 정복전쟁을 통해 삼한 왕들을 자신의 발아래 굴복시켜 한반도 최초로 사국일통을 이뤘다. 하지만 백제 가야 신라 삼국은 주권 독립국가가 된 지 오래인 왕국인데다 삼국의 왕들의 성격 또한 모두가 끈질기고 강하기 때문에 패배해도 쉽사리 고구려 천하의 봉건 질서에 편입되기를 원치 않았다. 광개토왕이 그들을 정복한 후 제후국, 조공국을 삼아도 쉽사리 신속의 질서를 인정하지 않았다. 뒤웅박을 찬 승냥이 같은 백제의 아신왕, 너구리 금관가야의 이사품왕, 수달 같은 신라의 내물 마립간은 물론이고 이를 둘러싼 이국들의 왕인, 족제비 같은 왜왕, 그리고 사냥개 같은 후연의 모용성까지 이들은 전쟁에서 져 정복왕 태왕의 영원한 노객이 되겠다는 충성의 맹세를 거듭하고도 기회만 있으면 끊임없이 반란을 도모했다.

태왕이 박지 집사에게 말했다.

지금 가야의 맹주인 금관가야의 이사품왕은 종발성에서 우리에게 패하는 바람에 지는 해가 되었소.”

과연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 대가야도 백제에 패하는 바람에 마찬가지 운명이 되었습니다. 두 맹주국인 금관가야와 대가야가 이번 전쟁에서 패해 가야연맹체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 같사옵니다.”

18개국 가야제국은 고구려와 백제의 공격으로 짓밟히고 갈가리 찢겨져 김수로왕에서 시작된 400년 사직이 망하게 되는 국면이었다.

태왕이 땅바닥에 엎드린 박지 집사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하지만 대가야를 백제에서 구원하는 계책이 있소.”

마마, 그게 무엇이옵니까?”

엎드려 있던 박지 집사는 고개를 들어 쥐눈을 반짝이며 강한 호기심을 내비쳤다.

아까 대가야를 다스리는 자가 목만치라고 했던가. 짐이 종발성에서 목만치의 애비 목라근자를 포로로 잡았소. 지금 짐의 군대는 북으로 빨리 진군해야 하기에 군대로는 지원하지 못하지만 포로로 잡은 목라근자는 박집사에게 넘길 테니 목장군을 담보로 그 아들 목만치와 협상해 대가야를 찾아보도록 하시오.”

황은이 망극하나이다, 폐하.”

박지 집사는 태왕에 굽실하면서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목만치의 애비 목라근자를 포로로 잡았다니, 어찌 그런 우연한 행운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비록 이번에 내가 세력을 잃었지만 목라근자를 가지고 성공만 하게 되면 대가야를 되찾고 그 수장이 될 수 있다. 고상지, 고숭 아래에선 만년 이인자인 그였지만 이제 고구려 도독이 없는 대가야에서 일인자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사품왕의 금관가야가 무너진 마당에 대가야는 확실하게 가야제국의 맹주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태왕은 박지를 지그시 노려보더니 말했다.

헌데 지난번 황후 앞으로 올린 세작보고서는 박지 집사의 작품인가?”

박지는 가슴이 뜨끔했다.

이 대왕은 사람을 웃겼다 울렸다 하는 것인가. 왜 또 지나간 보고서를 가지고 문책을 하려는 것일까. 꺽감이 후누장군의 아들이 아니라 회령왕의 아들이라는 보고서를 세작을 통해 장화황후에게 올린 것은 자신의 짓이었다. 장화황후의 질투에 불을 질러 고상지와 여옥, 꺽감과 수경을 동시에 제거한 뒤 박지가 대가야의 전권을 쥐려고 한 음모였다.

박지는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저는 아닙니다. 고상지 도독이 세작을 통해 올린 보고서로 알고 있습니다.”

죽어서 말이 없는 고상지에게 모든 잘못을 들씌웠다.

흐음, 아무리 멍청한 고도독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목이 떨어지게 되는 불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올릴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스스로 등에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꼴이 아닌가.”

보고서의 골자는 고상지 도독이 여옥소후와 야합하여 회령왕의 아이를 죽이지 않고 바꿔치기했으며 바꿔치기로 살아남은 아이가 회령왕의 아들 꺽감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질투에 눈이 먼 장화황후의 불같은 공격과 수경의 침착한 방어, 태왕이 수경과 꺽감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로 인해 박지의 반간계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난 사건이었다.

교활하고 노회한 박지 집사는 태왕의 뜻을 재빨리 간파하고 빠져나갈 방도를 찾았다.

고장군이 왜 그런 보고서를 올렸는지 아둔한 저로서는 잘 모르겠나이다. 폐하, 하지만 대가야도 신라와 백제처럼 왕손인 꺽감을 중심으로 나가야 한다는 그런 뜻이지 않았을까요?”

박지는 원치도 않은 꺽감을 넣어 대왕의 비위를 맞추려 했다. 사실상 꺽감이 대가야로 내려오고 난 후 박지와 꺽감은 서로 암투와 내홍을 벌이며 매우 껄끄러운 경쟁관계가 되었다. 그 틈을 노려 진무장군과 목만치는 쉽사리 대가야를 점령해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꺽감을, 꺽감을 좋아하는 대왕의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는 걸 박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태왕은 박지의 미꾸라지 메기잔등 넘어가는 구변과 관계없이 세작의 보고서 건을 계속 추궁했다.

집사, 고상지 도독이 자신의 죄상이 담긴 보고서를 왜 장화황후 앞으로 올렸는가 나는 그것을 묻고 있는 것이야.”

폐하, 저는 참으로 세상 모르는 일이옵니다.”

박지는 자신의 손으로 써올렸다는 것을 부인하면서 나름 논리를 갖춰 설명했다.

다만 고상지 도독은 아이를 바꿔치기한 자신의 잘못이 들통 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손자병법을 아는 고 도독이 자신의 죄상을 낱낱이 장화황후에게 자백하는 고육계를 쓰는 한편, 장화황후의 칼을 빌려 자신과 연루된 사람들을 모두 죽여 증거를 인멸하려는 차도살인계를 쓴 것이 아닐까 짐작하옵니다.”

손자병법 36계중 34계인 고육계는 자신의 고통과 희생을 통해 적을 안심시킨 뒤 공격하는 것이고 3계인 차도살인계는 남의 칼을 빌려 적을 죽이는 것을 말한다.

고육계는 적벽대전에서 오의 노장 황개가 자청하여 채찍과 곤장을 맞은 뒤 조조에게 거짓 귀순하면서 적에게 화공을 가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차도살인계는 이이제이와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이번 전쟁에서 백제의 아신왕이 고구려의 칼을 빌어 가야를 친 뒤 가야 7국을 집어 삼킨 것은 그야말로 차도 살인계를 유감없이 쓴 것이다.

태왕은 손자병법을 손바닥의 손금처럼 훤히 알고 다루었다. 박지도 손자병법에 능하니 세작을 이용하는 33계인 반간계도 능할 것이다. 태왕은 장화황후에게 보고서를 보내 고상지와 소후를 죽이고 수경과 꺽감마저 죽이려 한 자는 고상지가 아니라 박지 집사라는 걸 확신했다. 그렇다고 박지를 지금 당장 처벌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무너진 대가야를 재건을 위해서는 박지가 가진 악마적 재주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태왕이 박지에게 말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과거는 지나갔다. 앞으로 박지 집사는 가야의 왕손 꺽감을 중심으로 대가야를 다시 일으켜 세우도록 하게.”

부족하지만 위로는 폐하에게 충성하고 아래로는 꺽감에게 신명을 다 바치겠나이다.”

꺽감을 모해해 죽이려 했던 박지 집사는 새로운 태왕의 명 앞에 몸을 납작 엎드렸다.

광개토대왕은 박지에게 포로 목라근자를 데려왔다. 백제의 장수 목라근자는 종발성에서 함거에 실려 고구려로 압송되어 가던 중이었다. 머리는 봉두난발이고 눈은 움푹 꺼졌으며 피골이 상접한 패자의 몰골은 처참했다.

목라근자가 누구던가. 백제장군과 용병대장, 임나왜소의 주수로 있으면서 비자벌(창녕) 남가라(김해) 탁국(경산) 안라(함안) 다라(합천) 탁순(대구) 가라(고령)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무역했으며, 신라와도 선린관계를 맺어 백제의 동남부 강역을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자였다. 그는 아리수 이남에서 백제 가야 신라 왕 다음으로 무력이 강하고 재산이 많은 자였다. 그러나 그에게 운명의 낙차는 컸고, 전쟁 포로가 되어 노예로 떨어질 운명이었다.

광개토대왕이 포승으로 포박된 목라근자를 박지에게 인계하며 말했다.

집사, 짐이 큰 선물을 내리니, 이것으로 대가야를 살려 보시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박지는 목라근자의 함거를 두고 떠나는 광개토대왕에게 큰절을 했다.

물질의 풍요와 소유를 삶의 척도로 삼는 박지는 이 큰 선물을 어떻게 이용해야 그가 다시 대가야의 집사로 복귀해 잃어버린 재산을 찾을 수 있을 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남거성에서 박지를 만나 목라근자를 넘겨준 광개토대왕은 5만의 보기군을 이끌고 북으로 질풍노도처럼 달렸다.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보기군은 남거성에서 평양까지 단숨에 도착했다. 태왕은 남정의 기간 동안 모용성의 침입을 미리 경계했지만 정작 뒤통수를 맞으니 눈앞이 번쩍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모용성, 이 사냥개 같은 놈을 반드시 응징하리라.’

왕은 평양을 지나치고 단숨에 국내성으로 향하려고 했다.

그러나 고척동과 연개남이 태왕에게 간했다.

폐하, 날도 저물고 군사와 말도 지쳤습니다. 무구와 말안장도 정비해야 하니 평양에서 일박을 하고 진군하는 게 좋겠습니다.”

태왕은 전령과 세작을 통해 후연의 소식을 매일 들었다. 다행히 재상 을력소가 모용성에게 미인계를 넣어 그의 발을 요동의 남소성에 묶어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용성은 그곳에 머무르면서 온갖 종류의 죄와 악행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나 흑발미녀의 미인계에 단단히 걸려 귀중한 시간을 보람 없이 맹탕으로 허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국내성 외곽 방어선은 철옹성과 같이 튼튼하니 더 이상 동진은 하지 못할 것이다.

태왕은 부하 장수들에게 말했다.

좋다. 오늘밤은 평양에서 머물고 내일 새벽 일찍 출진한다.”

서두른다고 일이 빨리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시조모 웅녀도 백일을 쏙과 마늘을 먹고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곰털을 벗고 자기가 하는 일의 뜻을 이해하는 것- 즉 인간의 빛을 입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평양의 서궁에서는 장화황후를 비롯한 비빈들이 맞아주었다. 남정의 기간 동안 보지 못한 이들과 해후하고 안부를 들으니 반가웠다. 밤늦게 태왕은 황후전의 침전에 들었다.

황후가 태왕을 반기며 물었다.

먼 남정에 옥체는 괜찮으신지요?”

진정으로 건강을 챙겨주는 사람은 비빈이나 전쟁터의 여자가 아니라 역시 부인인 황후밖에 없다.

좀 피곤하구려. 술은 없소?”

황후가 도자기 술병을 내면서 말했다.

다행히 저에게 중국에서 건너온 주귀 한 병이 있습니다.”

주귀라면 중국술 중에서도 황태자로 불리는 좋은 술 아닌가.”

황후는 도자기 병을 따서 붉은 술을 고구려 각잔에 따르며 말했다.

지금 모용성의 침입으로 국내성이 위태롭습니다.”

내가 있는 한 저들은 더 이상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오.”

황후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태왕은 술잔을 비웠다.

전쟁터는 한 이불 속에 발을 넣고 자는 평화와 안식을 무너뜨린다. 태왕은 오랜만에 밤꽃보다 더 진한 욕정의 냄새를 풍기며 황후에게 다가갔다.

태왕은 큰 전쟁을 앞두고 성욕이 맹수처럼 맹렬하게 일었다.

오늘밤이 마치 당신과 마지막 밤인 것 같구려.”

왜요? 전쟁의 신이신 당신이 마치 죽을 듯이 말씀하시는군요. 모용성이 두려운 건가요?”

백제의 아신왕은 사나운 맹견이지만 강적인 태왕을 알아보고 꼬리를 사타구니에 넣고 굴복할 때 굴복할 줄 안다. 이번 전쟁에서도 태왕에 맞서지 않고 대가야와 소백산맥 이서의 가야 6국을 먹고 물러날 줄 알았다.

그러나 모용성은 달랐다. 성격이 포악해 자신을 위해 충성을 바친 공신과 종친들조차 낫으로 풀을 베듯 무수히 처형하지 않았던가.

남소성을 함락하고 고구려 땅에 칠백 리까지 들어와 있었다.

난 모용성보다 당신이 더 두려워.”

도수가 높은 주귀의 술맛은 삽싸름하면서도 강인했다. 그녀의 입술과 혓바닥이 감아주는 뱀같은 자극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훑어갔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연약한 아녀자를 두려워하다니.”

모용성은 분명한 나의 적이야. 적인 것을 알면 싸워서 베어 죽이면 그만이야. 하지만 품안의 여자는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없어. 그러니 두려울 수밖에.”

대왕께서 나를 의심하다니, 지금 온전한 정신으로 말씀하시는 겁니까?”

난 모든 여자를 의심해. 그들은 약으로 은장도로 심지어 성병으로 나를 죽이려 했지. 그래서 밤이 두려운 거야.”

폐하는 그동안 화려한 꽃과 무성한 이파리에 정신이 팔려 근본인 뿌리를 잊었습니다. 밤이 두려울 때마다 항상 황후인 저에게로 돌아오세요. 그러셔야만 온전한 정신으로 국정을 임할 수 있습니다.”

황후는 태왕의 쪼그라진 잠지를 물었다. 그녀의 입안에서 태왕의 늘어졌던 힘줄이 돋고 피가 몰리면서 하나의 거대한 소우주가 서서히 펼쳐졌다. 태왕은 황후를 엎드리게 한 후 주귀의 남은 술을 그녀의 등에 뿌렸다. 그녀의 몸에서 향기롭고 알싸한 술향이 뿜어나왔다. 태왕은 검붉은 근을 달빛에 반짝이는 탄력 있는 엉덩이 골 사이로 밀어 넣었다.

황후가 앓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 폐하.”

태왕이 뒤에서 움직이자 그녀의 젖꼭지에 매달린 술방울이 흔들리며 방울방울 떨어졌다.

약간의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태왕은 곧 황후에게서 싫증을 느꼈다. 하지만 황후가 식상하더라도 성공적인 혼인은 늘 똑같은 사람과 여러 번 사랑에 빠지는 것을 필요로 한다. 가야 한다.’ 태왕은 황후의 몸 안에서 부드럽게 파정하며 전쟁터에서 느낄 수 없고 집에서만 느끼는 나른하고 평온한 행복감에 실려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 미명 광개토대왕은 서궁에 거련과 질자들을 불렀다.

태왕이 거련에게 말했다.

태자, 나는 지금 고구려는 후연과 전쟁을 하러 떠난다. 현재 모용성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지?”

, 남소성에 진을 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헌데 왜 모용성이 남소성에서 더 이상 국내성으로 진군하지 않았을까?”

재상 을력소가 남소성 앞 언덕에서 목책을 치고 오만의 병사로 대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알고 있구나, 거련. 하지만 한 가지 빠진 게 있다. 손자병법 31계지.”

손자병법 31?”

“31계는 미인계를 말한다. 모용성은 우리 세작인 고구려 흑발미녀에게 걸려 남소성에서 사흘 째 발이 묶여 있지. 흑발미녀 한 명이 오만 대군보다 더 무서운 거지. 너희들은 역사에 나타난 31계 미인계의 예를 들 수 있겠는가?”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을 때 거련이 말했다.

춘추시대 월나라 범려가 미인 서시를 오나라 부차에게 보내 오나라를 망하게 한 것과 삼국지에 왕윤이 초선을 동탁에게 보내 동탁을 죽게 한 것이 31계의 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거련, 훌륭하구나.”

태왕이 이제 제법 새끼호랑이의 티가 나는 거련을 따뜻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태왕은 그의 짧은 인생보다도 더 긴 시간을 요구하는 모순에 빠진 그런 위업에 매달렸고 결국은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 왕업을 태자 거련은 거뜬히 완성하고 번창하게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거련아, 명심하여라. 명예나 평판은 질그릇, 도자기 같이 쉽게 깨지고, 믿을 게 못된다. 그보다 우선하는 것이 계략과 전술이다. 미인계는 더러운 계략이지만 적을 반드시 패배시키는 패전계의 으뜸 책략이다. 여기에 한번 걸려들면 마치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세력을 펼치고 적의 장수를 제거하는 데는 미인계만큼 효과적이고 확실한 방법이 없느니라.”

, 명심하겠습니다, 아바마마.”

거련은 태왕이 가르친 손자병법을 가슴에 간직했다. 후일 거련이 장수왕이 되어 백제 개로왕을 상대로 반간계와 미인계를 쓴 것은 어릴 적부터 부왕으로부터 손자병법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나라를 목만치에게 빼앗긴 꺽감은 가야산에서 후누와 함께 진을 치고 있었다. 고구려에서 내려오자마자 백제의 침공을 받고 나라를 빼앗긴 꺽감은 눈 내린 겨울 가야산 깊숙이 들어가 고토회복만을 꿈꾸고 있었다. 운명은 때론 겨울철 나무처럼 보일 때가 있다. 황량한 나뭇가지는 새싹이 나고 잎새가 자라고 꽃이 필 것 같지 않지만 꽃이 피기를 소망하고 열매가 맺기를 기원하면 결국은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이 힘든 시기도 언젠가 지나가리라 꺽감은 생각하며 칼과 활을 굳게 잡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고구려를 떠나던 그 시절을 추억하기도 했다.

장화황후는 황후전에서 수경과 꺽감을 가야로 내려 보내기로 결정한 소식을 듣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에 염려가 되었다.

폐하의 총애를 독점한 여우같은 여옥이 참수를 당하니 삼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것 같구나. 허나 수경과 꺽감, 이 두 모자가 가야를 틀어쥔다면 태자 거련에게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닌 것이다.’

장화황후는 머리에 나비잠을 꽂고 황후복을 갖춰 입고 태왕에게 나아가 말했다.

폐하, 불여우 같은 수경과 영악한 꺽감을 가야로 내려 보내면 장차 거련의 적이 되고 고구려에 큰 우환거리가 될 것입니다. 태자 거련에게 삼배구고두의 노객의 예를 한 뒤 보내도록 하세요.”

당신의 질투가 너무 심한 것 아니오? 불가에서는 헤어질 때는 꽃을 뿌려주는 산화공덕도 하는데 그리 모질게 보내면 되겠소?”

당신은 세상을 정복한 강한 남자인지 몰라도 여자와 아이에게는 삶은 무처럼 물러요.”

허허, 무슨 그런 소리를. 난 지금 바쁘오. 바깥에 5만의 보기군이 기다리고 있소. 곧 가야의 종발성을 치러 내려가야 해요.”

잘 됐군요. 당신과 군대 앞에서 삼배구고두를 시키시지요.”

.”

광개토대왕은 고민을 했다. 황후의 말이 단순히 수경과 꺽감에 대한 질투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린 거련의 보위가 염려되는 건 태왕도 마찬가지였다. 물고 물리는 이 전국시대에 거련이 자신의 이룩한 위업을 온전하게 계승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그 때문에 태왕은 정복국의 질자를 불러 모아 항상 고구려 중심의 제왕학을 가르치며 태자 거련에게 충성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왔던 것이다.

가야의 질자 꺽감은 건강하고 총명하고 용맹한 데다 발톱까지 숨길 줄 아는 보라매와 같은 녀석이다. 이 녀석을 가야의 하늘 아래 맘껏 풀어놓는다면 장차 가야를 기반으로 고구려에 대적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황후의 말대로 거련의 적이 되고 고구려에 우환거리가 되지 않도록 미리 손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서궁에는 출진하기 전의 5만의 보기군 병사들이 집결해 있었다. 모든 부하와 병사들이 볼 수 있도록 천단을 만들고 그곳에 태자 거련을 좌정시켰다.

거련의 옆에 선 광개토대왕이 단 아래에 있는 꺽감에게 말했다.

꺽감은 태자에게 노객의 맹세를 하고 태자에게 삼배구고두를 하여라.”

. , 꺽감은 영원히 거련 태자의 노객이 되며 그의 명에 복종하겠습니다.”

꺽감은 큰 절을 세 번하고 이마를 돌바닥에 아홉 번을 찍었다. 꺽감의 여린 이마에 피멍이 맺혔으나 전혀 아프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어린 마음에도 어떤 뜨거운 모욕감의 불이 머리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꺽감은 거련에게 치욕스런 삼배구고두 의례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거련과 상희, 백제 공주 다해와도 작별인사를 했다. 거련과 꺽감, 상희와 다희는 지난 수년 동안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며 지냈다. 선 머슴애 같은 고구려 공주 상희는 꺽감을 드러내놓고 좋아하며 따라다녔다. 꺽감에게 맛있는 먹거리를 곰상스럽게 챙겨주고 귀한 선물도 했다. 하지만 광개토대왕의 딸이자 거련의 여동생인 상희와 가야에서 온 질자인 자신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여 있었다. 꺽감이 상희와 함께 뒹굴면 상희의 호위무사들이 , 미천한 것이 감히 우리 공주를 범하려고 해.’ ‘저 미개한 가야자식이 무슨 짓을 하는 거야라며 호통을 쳤다. 상희는 질자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고구려 공주였다.

꺽감의 속마음은 백제공주 다해에 가 있었다. 살결이 가무잡잡하고 성격이 보리처럼 억센 상희와 달리, 다해는 얼굴이 해끔하고 피부가 쌀알처럼 투명하게 비칠 정도였다. 눈이 크고 마음도 상냥해 질자로 끌려온 남자애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꺽감도 다해를 보면 괜히 가슴이 콩닥거렸다. 하지만 백제공주 다해 곁에는 늘 거련이 왕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오늘 헤어지는 마당에도 거련이 다해를 옆에 두며 눈 밝은 감시를 하고 있었다. 방금 거련에게 삼배구고두의 노객 의식을 치른 꺽감은 감히 다해에게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헌데 다해가 꺽감에게 다가와 준비한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예상 밖의 행동에 꺽감은 기분이 얼얼했고 거련은 기분 나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수경과 꺽감은 남으로 향했다. 꺽감은 걸어가면서 다해가 걸어준 꽃목걸이의 향기를 맡았다. 다해의 따뜻한 눈길과 감미로운 입술이 꽃향기와 함께 알싸하게 배여 걸어도 걸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태왕은 수경을 가야로 보내며 말했다.

수경, 잘 가시오. 난 이번 두 모자에게 큰 기회를 준 것이오.”

수경과 꺽감은 거련에게 치욕스런 삼배구고두를 하고 대가야로 돌아왔으나 태왕의 말대로 큰 기회는 없었다. 오히려 고숭 도독과 박지 집사의 집중 견제대상이 되었고, 지금까지 형식적이나마 군 통수권을 가졌던 후누 장군마저 군신지의 직을 박탈당해 꺽감, 수경, 후누는 어디 한 군데도 의지가지할 데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광개토왕은 금관가야와 왜로부터 신라를 구하기 위해 남정을 한 것이고, 광개토대왕과 고구려군이 가야제국의 맹주인 금관가야(김해)와 종발산을 점령하고 아라가야(함안)에게 맹주의 자리를 맡겼다. 그 틈을 타 백제는 대가야와 옛 마한땅 6가야를 병합하고 마는 형국이 되었다.

현재 아라가야가 가야연맹체의 맹주 노릇을 하나 진정한 맹주는 사라지고 가야의 구심점은 사라졌다. 18개 가야국은 고구려 신라 백제 왜 등에 의해 찢겨지고 영향을 받으면서 한곳에 모여 있으나 내적으로는 뿔뿔이 흩어진 상태가 되었다. 사회와 국가는 인간의 이성 내지는 이상이 아니라 인간의 사악한 본성 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이들 소국 가야제국들은 외세의 간섭에 의해 꼬시래기 제 살 뜯어먹기로 서로의 살을 파먹으며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다.

꺽감은 우선 백제 목만치의 지배하에 있는 대가야만이라도 수복하여 부왕 하령왕이 다진 가야의 옛 기틀을 다시 회복하리라 결심했다. 그의 귓가에는 광개토왕이 종발성에서 포로로 잡은 목만치의 아버지 목라근자를 박지에게 내주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반가운 소식이긴 하지만 결코 반갑기만 한 소식은 아니었다. 고토회복의 주도권이 다시 박지 집사에게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누장군과 백여명의 잔여 병졸들은 가야산에 통나무집을 지어놓고 언젠가 다시 무력으로 고토을 회복하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꺽감이 눈 덮인 가야산에서 추위를 견딜 수 있는 것은 다해의 입술이 닿은 볼 발간 기억이 따뜻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