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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3.22 09:03
제2부 하지태왕의 성장(5)
김하기
고구려군의 전광석화 같은 남진에 이사품왕은 상당한 전리품을 챙기거나 마립간의 목을 벨 틈도 없이 부랴부랴 반월성 밖을 빠져나갔다. 이사품왕은 한 줌의 병사와 함께 금성(경주)에서 우시산국(울산)으로 내려와 태화강에서 배를 타고 동해안으로 빠져 종발산으로 도주했다.
이사품왕은 배에서 멀어져가는 신라 땅을 바라보며 못내 아쉬워했다.
“내가 만든 밥을 거지 같은 고구려 놈들이 와서 다 퍼먹는구나.”
그나마 그는 내물 마립간이 쓰던 신라의 금동관을 벗겨와 그의 손에서 햇빛에 반짝거렸다.
“이 따위 금동관이 뭐란 말이냐!”
“그래도 마마께서 신라의 명예를 벗겼습니다. 이제 내물 마립간은 더 이상 마립간 자리를 유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종발성을 지키던 목라근자가 이사품왕을 맞으며 말했다.
목라근자는 근초고왕 때부터 활약한 백제의 장군이자 일본군을 끌어 모으는 용병대장이었다. 키는 9척 장신에다 눈은 고리눈이며 팔다리가 근육으로 채워져 있어 갑옷을 입고 창을 잡고 서 꼿꼿이 있을 때는 잘 빚어놓은 늠름한 청동상처럼 보였다. 목라근자에 대한 한국측 사료는 비교적 적으나 야스마로가 쓴 <일본서기>에 의하면 목라근자는 그의 아들 목만치와 함께 7가야를 정복하고 다스렸다고 뻥을 세게 치고 있다. 어쨌든 우리측 소략한 자료에 따르면 목라근자가 백제왕에 의해서 임명된 종발성의 성주 내지는 임나왜소의 주수임에는 틀림없다.
가야군과 왜군의 잔병들은 금관가야의 토성 종발성에서 농성하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종발성은 임나왜소(임나왜소: 일본은 369년 임나일본부를 세워 남선을 경영했다고 주장하나, 6세기까지 일본이라는 말조차 없었기 때문에 허구다. 임나일본부가 왜에 있었다는 북한학자의 주장도 근거가 희박한 주장일 뿐이다. 임나일본부는 실제로 한반도에 있긴 있었으나 가야가 왜에 허락한 자치 무역항이며 작은 왜소에 불과하다. 종발성은 김해 함안 양산 동래 다대포 등에 비정되나 필자는 최근 연구 결과에 따라 현재 부산 토성동의 토성에 비정한다.)가 있는 곳으로 가야철이 왜로 나가고 대신 왜의 용병과 물산이 들어오던 곳이다. 이사품왕은 이곳을 보루로 해서 다시 한 번 광개토대왕군과 일전을 치른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사품왕은 그간 아신왕의 행태에 관한 보고를 듣고 분기탱천하였다. 광개토왕이 남진해 신라의 서라벌 금성을 점령하자, 아신왕은 광개토의 남진을 막고 고구려군을 친다는 미명하에 진무장군을 보내 옆으로는 대가야와 미오야마국을 치게 했다. 여기에는 고구려 주둔군과 고상지의 후임인 고숭을 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사두장군을 남쪽으로 보내 옛 마한 땅인 6가야를 치게 한 것은 여지없이 이사품왕의 뒤통수를 때린 것이다. 다만, 백제장군 목라근자만은 종발산에 농성케 하여 고구려로부터 일본의 임나왜소만은 지키게 했다.
“아신왕과 상다리(순천)에서 철석 같이 금석맹약을 했건만 우리의 뒤통수를 쳐서 가야땅을 삼켜서 먹다니! 내 이 뒤웅박을 찬 승냥이 같은 아신왕을 가만 두지 않으리라!”
“대왕마마, 그것보다 우선 이 종발성을 고구려로부터 지켜내는 것이 긴급한 일입니다.”
“목장군 자네도 아신왕과 한 통속으로 백제군이 우리 가야를 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
“전혀 몰랐습니다. 능히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정도(正道)가 아닙니다. 하지만 대가야를 친 것은 고구려 주둔군을 치면서 횡으로 광개토왕과 고구려군의 퇴로를 차단하려는 뜻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한 저는 아신왕과 이익을 공유하는 경제적 관계만 맺고 있습니다. 이곳 종발성과 다다라는 무역항입니다. 그래서 저는 백제인이지만 제 아내는 신라인이고, 저의 주 거래처는 가야와 일본을 비롯해 한반도 전체입니다. 그 중에서도 저의 종발성의 물품을 가장 많이 이용하시는 금관가야의 이사품 대왕님이말로 저의 진정한 주군입니다.”
목라근자는 이사품 왕에게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음, 지금 자네의 절을 받고 있지만 나는 똥통에 빠져 목만 내밀고 있는 기분이네. 금관가야로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여기서 싸워야 할지 다시 생각해 보겠네.”
이사품왕은 기분 같아서는 당장 금관가야로 철수하고 싶었다. 하지만 수하에 있는 한줌의 병사를 데리고 그곳에 가보았자 별 뾰족한 수도 없다. 현재 목자근자와 왜병 1만 명이 주둔하고 있는 철옹성 같은 종발성이 자신의 안전이나 고구려군과 싸우기에 여러모로 유리하다. 일단 이사품왕은 아신왕에 대한 화를 누르고 그의 휘하의 장수 목라근자와 함께 종발성에 남기로 결정하였다.
광개토대왕은 보기군 5만과 함께 금성으로 입성해 이사품왕의 손에서 내물 마립간을 구해주었다. 마립간의 이마에는 망나니가 휘두른 칼자국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죽기 직전에 마립간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태왕이 얼굴이 초췌한 마립간을 보며 말했다.
“그동안 가야 이사품왕의 분탕질에 마립간의 고생이 많았구료.”
“이렇게 또 다시 생명을 구해주시니 폐하, 앞으로 저는 폐하의 영원한 노객이 되겠습니다.”
태왕은 산벚꽃이 흩날리는 토함산을 바라보다 발 앞에 엎드린 마립간을 굽어보며 말했다.
태왕은 웃음과 슬픔, 빛과 그늘을 봉합한 듯한 묘한 얼굴로 말했다.
“헌데 마립간, 자꾸 노객이 되겠다는 말만 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그 대가를 지불하시오. 그동안 신라는 우리의 속국이라 칭하면서도 염(鹽),사(絲),철(鐵)과 공녀를 제대로 바치지 않았소.”
“알겠나이다. 이제부터 제가 직접 조공을 챙겨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내물 마립간은 광개토대왕에게 거듭 납작 엎드렸다. 외세에 의존해 한번 도움을 받은 자는 힘이 약해지고 점점 더 값비싼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강약이 부동이라 힘이 없는 신라는 동북아시아의 패자 고구려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실성군이 광개토대왕에게 보고했다.
“폐하, 계림 장군의 말에 따르면 지금 이사품왕과 왜군의 주력이 종발성으로 퇴각해 집결하고 있답니다.”
“음, 나도 그 소식을 들었네. 지금 반월성에 머물러 승리를 만끽할 시간이 없네. 선 걸음에 종발성으로 쫓아가 왜군을 진멸하고 말겠네. 실성군, 어서 출발하세!”
광개토대왕은 정이대장군으로 삼은 실성군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내물 마립간으로서는 광개토대왕을 따라온 사촌동생 실성군이 가장 맘에 걸리지 않을 수 없다. 고구려에 볼모로 내쫓은 실성군이 신라에 들어온 이상, 이제부터 천장에 뱀이 들어온 것처럼 마음이 불안해질 것이다. 마립간의 지위가 언제 실성군으로 교체될지 모를 일이다. 내물 마립간은 이사품왕의 포로가 되어 천민으로 족강되는 굴욕을 맛보았다. 광개토대왕이 왕위를 회복시켜주었지만 신라 백성들을 보호해주는 든든한 어버이 왕으로서의 신망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마을 고샅을 뛰어다니는 똥개에도 뻗치는 기가 있는데 하물며 왕에게 있어서랴. 왕의 몸에는 왕기(王氣)가 무럭무럭 피어나야 한다. 바로 앞에 서 있는 태왕만 하더라도 저 늠름한 몸에 왕의 아우라가 무성하게 피어오르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내물 마립간은 똥통에 빠진 강아지 꼴이 되고 말았다.
광개토대왕 옆에는 한 때 고구려의 볼모에 불과했던 실성군이 정이대장군이 되어 수탉처럼 위풍당당하게 시립하고 있었다.
‘신라 백성들은 고구려 구원군을 데리고 온 실성군을 나보다 더 믿음직스런 군주로 생각할 것이다. 저 불쾌하게 솟은 수탉의 벼슬을 찍어내고 어떻게 하면 실성군을 다시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버릴 수 있을까? 실성군은 태왕의 신임을 받아 종발성까지 종군하는 광영을 누리고 있는데 가당키나 한 것일까? 자신도 실성군처럼 광개토대왕을 따라가 조금이라도 공을 세워야 땅바닥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왕의 체면을 세울 수 있지 않겠는가.’
내물 마립간은 고민하다 군대를 이끌고 반월성을 떠나는 광개토대왕께 말했다.
“저도 폐하를 따라가 왜군을 치겠습니다.”
“허허, 말은 고맙네만 여기서 뒷일을 수습하는 게 우선이네.”
내물 마립간은 태왕의 말대로 수습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이사품왕의 포로가 되어 심적인 혼란에 빠져 있을 가족인 보반부인과 세 아들 눌지 복호 미사흔과 궁녀들, 가까운 척족인 왕족과 호족들을 챙겨야 하고, 하루빨리 가야왕이 무너뜨린 관제를 재정비하고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해야 했다.
태왕은 오 만의 보기군을 이끌고 질풍노도처럼 다시 남단의 종발성을 향해 달렸다.
그는 중천에 걸린 해와 점점 길어지는 나무의 그림자를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은 시간과 싸움이야. 사냥개와 같은 후연의 모용성은 내가 없는 틈을 타 국내성으로 쳐들어올 것이야. 국상 을력소와 밀운 장군이 내가 되돌아갈 때까지 버텨주어야 할 텐데. 또 승냥이와 같은 백제의 아신왕은 틀림없이 가야의 뒤통수를 쳐 전쟁의 이익을 챙길 것이다. 대가야에 주둔하고 있는 고숭과 고구려군, 박지 집사와 후누 장군은 백제군에게 무너질 것이다. 최선의 방책은 가능한 빨리 종발성을 함락해 한반도를 통일하고 재빨리 국내성으로 귀환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태왕은 금관가야의 종발성으로 물밀 듯이 쳐들어갔다. 종발성은 석성산(지금의 부산 서구 토성동 천마산. 신라시대의 토성과 석성이 있던 곳으로 임나왜소가 있던 다대포와 가깝고 지명 초량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초라성과 같아 비정할 수 있음.)을 등지고 낙동강 부산포 해안에 축성한 거대한 반월형 토성이었다. 종발성의 모양이 ‘종발이’ 같이 생겨서 종발성이라 불렀고, 그 배후지 다다라(다대포)는 수백 년 동안 가야와 통상하고 있는 무역항으로 그 중심부에는 임나왜소가 있었다.
태왕은 가야의 이사품왕과 백제의 장군이자 왜군의 용병대장인 목라근자가 농성하고 있는 종발성을 쳐다보았다.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종발성은 서쪽으로는 깍아지른 듯한 절벽인 석성산을 등져 자연성벽을 이루고 있는데 동남북의 낮은 곳의 토성과 연결해 성을 완성한 전형적인 포곡형 반월성이었다. 토성에는 높은 목책을 치고 그 앞에는 깊게 판 해자를 둘러, 개미새끼 한 마리조차 접근을 허락하지 않은 철옹성이기도 했다.
광개토대왕은 일단 오만의 병사를 풀어 종발성을 포위하고, 막사에서 휴식을 취했다. 전에 같으면 여자를 안기도 하겠지만 전쟁이 일깨운 맹렬한 성욕을 잠재우는 대신 신어산 서림사에서 쌍수스님을 불러 법문을 들었다.
광개토대왕은 전쟁터에서 이따금식 화상의 설법을 들으며 마음공부를 하고 있었다.
쌍수가 태왕에게 물었다.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마마, 대체 경계란 무엇입니까?”
“구별하는 것이 아니오?”
“원래 하나이던 것을 둘로 분리해 미워하며 차별하고 죽이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경계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삿된 것입니다.”
“현실과 이상이 반드시 같지는 않소.”
“태왕께서 땅의 경계를 동서 6천리, 남북 4천리로 넓혀 광개토경의 칭호를 얻었지만 태왕의 마음은 얼마나 넓히셨습니까?”
태왕은 만인이 ‘광개토’라는 위대한 호칭을 부르며 우러러보는데 서림사의 쌍수화상은 오히려 그 이름을 질타했다. 직지로 가슴을 가리키며 아픈 곳을 찌르는 쌍수화상의 즉설은 태왕의 마음에 무겁게 다가왔다.
“큰스님, 유구무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열 성읍을 얻는 것보다 한 치의 사람 마음을 얻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경계 자체는 원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탐심이 경계를 만들어 삶과 죽음, 적과 동지, 좌와 우, 사랑과 미움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음.”
태왕은 충언과 진리는 귀와 마음에 거슬리는 법이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태왕은 쓴 약을 삼킨 듯 간신히 가부좌를 지탱한 채 눈을 감고 쌍수화상의 법문을 듣고 있었다.
‘차라리 여인을 끌어안고 바닥을 뒹구는 게 낫지 종발성의 함락과 사국일통을 앞두고 이 무슨 부처님의 가운데 토막 같은 말씀이란 말인가!’
하지만 광개토대왕은 천하의 태왕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를 설파한 스님에게 큰절을 하고 신어산 서림사에 두둑이 시주를 하고 스님을 돌려보냈다.
종발성안에는 이사품왕과 만명의 잔병을 거느린 왜의 용병대장 목라근자가 깃발을 세우고 농성하며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목라근자는 백제인으로 근초고왕 때부터 활약한 백제의 장군이자 임나왜소의 수장이면서 왜의 용병을 지휘하는 대장이었다. 이번 전쟁에 동원된 왜군도 모두 목라근자가 가야 철정을 주고 왜에서 모집한 용병들이다.
성의 남문은 바다로 열려 있었고, 동문과 북문은 평지인 초량과 독로국으로 향해 있었다.
태왕은 신라의 남거성과 반월성을 함락하는데 공을 세운 휘하의 심복 장수 고척동과 연개남을 종발성의 동문과 북문 공격에 투입했다. 절영도 바닷길로 돌아가서 종발성의 배후인 남문을 치는 일은 바다 길에 익숙한 신라인 실성군과 계림장군에게 맡겼다.
너구리와 같은 이사품왕도 시간이 승리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종발성의 성문을 닫고 닷새만 농성하고 있어도 천리를 떠나온 5만의 고구려군 병사는 보급을 견디지 못하고 철수할 것이다. 더욱이 후연의 모용성이 고구려를 치면 고구려군은 더 이상 버티지를 못할 것이다. 그때 성문을 열어 고구려군을 추격해 섬멸하는 전략을 세웠다.
이사품왕이 성문을 닫아걸고 농성을 하고 있는데 서쪽에서 낭보가 들려왔다.
용병대장 목라근자가 가야왕에게 말했다.
“백제 아신왕의 전갈입니다. 후연의 모용성이 왕과 군대가 비어 있는 고구려로 향하여 진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사품왕은 주먹을 불끈 쥐며 쾌재를 부르고 싶었으나 차분하게 들뜬 마음을 억누르며 말했다.
“목장군, 가뭄에 기다리던 단비와 같은 반가운 소식이나, 그게 사실이면 왜 광개토는 여기서 철수하지 않는 거요?”
이사품왕은 아신왕의 소식을 불신하며 말했다.
“지금 막 들어온 따끈한 소식이라 광개토는 철수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중일 겁니다.”
“모용성이 고구려로 쳐들어갔다면 어디까지 진격했다고 하오?”
“현재 고구려의 신성과 남소성을 함락시키고 국내성으로 향하여 진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 모용성이 광개토의 뒤통수를 제대로 치는구나.’
이사품왕은 춤이라도 추고 싶었으나 너구리 같은 그는 전혀 얼굴 내색을 하지 않았다.
목라근자가 말했다.
“이렇게 되면 광개토는 종발성을 치지도 못하고 돌아갈 게 뻔합니다.”
“난 아직도 그 소식을 못 믿겠소. 광개토와 고구려군이 이곳에서 철수하는 그때, 목장군의 말을 믿겠소.”
이사품왕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농성에서 어떻게 공격으로 전환해 고구려군을 섬멸할 것인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모용성은 후연의 황제가 된 뒤 사냥개처럼 고구려 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광개토대왕이 남정으로 국내성을 비운 사이 잽싸게 고구려를 들이친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가야는 으늑한 변방구석의 지방 군현이 아니었다. AD42년에 김수로왕이 낙동강 젖줄기의 구지봉에서 금관가야를 건국한 이래로 철을 중심으로 강력한 부족국가를 세웠고 이후 외국과의 교역을 통해 일취월장한 400년이나 된 강력한 주권국가였다. 가야의 외교력은 백제 일본 산동뿐만 아니라 요동을 비롯한 중국 동북지방의 후연까지 미친 동아시아의 강국이었다.
금관가야의 영토는 낙동 이동에 독로국(동래)과 미리미동국(밀양) 2국, 낙동이서에 접도국(칠산), 고자미동국(고성), 고순시국(진주), 반로국(고령, 대가야), 낙노국(하동 악양), 미오야마국(합천 묘산), 감로국(김천 감문), 주조마국(김천 조마), 안야국(함안), 그리고 소백산맥 너머 옛마한 땅에 설치한 가야 6국은 상기문(임실, 번암), 하기문(남원), 상다리(순천), 하다리(여수 돌산), 사타(고흥), 모루(무안)에 이르렀다. 동서 오백 리와 남북 오백 리의 넓은 국토와 탄탄한 국가체제, 그리고 3만의 철기군을 가진 나라였고, 능란한 외교정책과 전략에 의해 독자적인 대외활동을 펴나간 나라였다.
금관가야의 이사품왕이 신라의 내물 마립간을 친 배후에는 백제 아신왕의 부추김도 있었지만 이러한 강한 국력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목라근자가 백제 아신왕의 새로운 전갈을 가져왔다. 백제의 아신왕이 팔랑치를 넘어 대가야의 고숭과 박지를 쳤다는 것이다. 후연의 모용성에 이어 아신왕마저 움직였으니 바야흐로 이번 전쟁은 한반도 전체에 전쟁이 벌어지는 국제전이 되었다.
가야는 왜의 용병을 끌어들여 3만으로 신라 금성을 치고 이에 고구려는 평양에서 5만의 보기군을 남진시켜 신라와 임나왜소 종발성을 포위했다. 후연의 모용성은 광개토대왕이 고구려를 비운 틈을 타 고구려로 쳐들어가 신성과 남소성을 함락시키고, 기회를 엿보던 백제는 동진하여 대가야의 박지를 쳤으니 그야말로 한반도는 가야 신라 백제 고구려 왜와 후연, 여섯 개의 나라가 얽혀 싸우는 거대한 전쟁터로 바뀐 것이다.
너구리같은 이사품왕이 말했다.
“고구려군은 이번 원정으로 나라가 없어질 수도 있겠군.”
“그렇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닷새만 버텨주면 후연은 국내성을 쳐들어가 고구려를 집어삼키고 우리는 다시 고구려를 추격하여 신라를 먹게 되면 고구려는 한반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헌데 백제의 아신왕이 나의 뒤통수만 치지 않았다면 ”
이사품왕이 입맛을 쩝쩝 다셨다.
고구려군의 남진에 신라 반월성에서 부랴부랴 도망 오느라 미처 챙겨오지 못한 전리품과 보반왕비와 궁녀들의 자색이 눈앞에 삼삼하기도 했다.
광개토대왕은 후연의 모용성이 국내성으로 진격하고 있고, 이어 백제의 아신왕마저 대가야의 박지와 고구려 주둔군을 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고민에 빠졌다.
“백제의 아신마저 대가야의 고구려주둔군을 치다니, 설상가상이군.”
그야말로 광개토대왕이 즉위해 원정과 정복전쟁을 시작한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부하장수 고척동이 말했다.
“폐하, 우리가 신라와 내물왕을 구했으니 이번 남정의 목적을 달성한 것 아닙니까? 종발성을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으음.”
“두고 온 고구려 땅에는 우리 병사들의 아내와 자식과 친척들이 있고 집과 가축이 있습니다. 지금 모용성은 이들을 약탈하고 말발굽으로 짓밟고 있습니다. 우리 병사들은 천리나 떨어져 있는 이곳 종발성을 치는 것보다 하시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 후연의 병사들을 물리치고 싶어 합니다.”
심복장수 연개남도 같은 생각이었다.
“폐하, 후연의 고구려 침입 소식에 우리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백제가 대가야를 점령하고 퇴로를 차단하기 전에 빨리 고구려로 돌아가는 것이 상수입니다.”
광개토대왕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결연하게 말했다.
“몇 번이나 말했듯이 이번 전쟁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종발성은 오늘 해가 떨어진 후 어둠이 닥치는 자정에 정복한다. 그 후에 고구려로 돌아갈 것이다.”
휘하의 장수들이 모두들 놀란 눈으로 광개토대왕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대륙천하를 정복해온 태왕이지만 위용이 하늘을 찌를 듯한 난공불락의 종발성을 단 하루만에 점령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허풍이었다. 더구나 성안에는 만여 명의 철갑병사들이 문을 단단히 걸어놓고 버티기 작전으로 농성하고 있는데 성의 항복을 받아내기에는 한 달이라도 부족할 것 같았다.
태왕이 말했다.
“너희들이 나의 말을 따르는 한 승리는 바로 눈앞에 있다! 공격은 오늘 밤 자정에 한다. 다행히 하늘이 우리를 도우려는 것인지 오늘 밤은 보름이라 휘영청 밝은 달이 우리의 발길을 훤히 비춰줄 것이다. 성을 공략하는 열쇠는 깍아지른 듯이 가파른 석성산 서쪽에 있다. 나와 정예병사들은 석성산 서쪽 절벽을 타고 올라가 종발성에 진입하여 동, 서, 남문을 활짝 열어 젖힐 것이다. 그때 병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일시에 들어와 성을 함락하라!”
험한 석성산을 넘어 서쪽을 치고 올라가 종발성에 진입한다는 것은 장수와 병사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태왕이 몸소 가장 험한 공격로인 석성산을 넘어 서쪽을 공략하겠다고 하니 장수와 병사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밤 자정에 신라의 계림장군과 실성군, 박제상은 신라배를 타고 절영도 바닷길로 돌아가서 종발성의 배후인 남문을 쳐 종발성을 흔들어라. 고척동은 동문을, 연개남은 북문을 불화살로 공격하라. 알겠느냐?”
“넵!”
신라배로서 물위에 세워져 있는 남문을 치는 것도 예측하기 힘든데 험한 석성산을 넘어 서쪽을 친다는 것은 누구도 상상 못할 적의 허를 찌르는 작전이었다.
자정쯤 되었을까, 동문, 북문, 남문, 종발성의 삼대문을 굳게 닫아걸고 지키고 있던 목라근자가 자정쯤에 이사품왕에게 말했다.
“남문 쪽에서 적의 함성 소리가 들려오는데요.”
이사품왕이 푸른 남해바다에 발을 적시고 있는 난공불락의 철옹성 남문을 보며 말했다.
“오밤 중에 그럴 리가 있나? 남문은 바다와 면하고 있어 이 성에서 가장 안전한 문이지 않는가?”
목라근자가 이사품왕에게 말했다.
“하긴 고구려군은 수전에 약하기 때문에 강력한 우리배가 지키고 있는 남문으로 쳐들어올 리는 만무합니다.”
“대륙에서 말달리던 놈들이라 물만 보면 산고양이처럼 기겁을 하지.”
“최소 사흘, 최대 열흘만 이대로 버티면 사면초가에 빠진 고구려군은 고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사품왕은 모용성과 아신왕이 고구려군을 향해 쳐들어가고 있으니 전세는 단번에 역전되었음을 느꼈다. 제 아무리 천하의 광개토인들 고구려가 점령당하고 있다는데 한반도의 남단에 있는 작은 종발성에 붙잡혀 시간을 낭비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정이 되자 남문에서 예상 밖의 큰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헌데 남문 쪽에서 들려오는 함성소리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점점 커지는 듯합니다.”
수전에 능한 신라의 계림장군과 신라 병사들이 신라배를 타고 절영도를 한 바퀴 돌아 남문항으로 밀고 들어가는 소리였다. 신라군들은 남문항의 왜선들을 불태우고, 부두교에 올라 남문성을 향해 진격했다. 적의 병력이 몰려 있는 동문과 북문을 피해 방심하고 있던 남문을 들이친 것이다.
이사품왕이 목라근자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목장군, 남문이 공격당하고 있소. 빨리 남문으로 가 적들을 막으시오.”
“알겠습니다. 군은 속히 남문으로 이동하랏!”
“군을 다 이동시키면 동문과 북문은 어찌하오? 여기도 고구려 병사들이 끊임없이 불화살을 날리고 있소.”
방금 전까지 고구려의 멸망을 논하고 있던 이사품왕과 목라근자 두 사람은 남문의 기습공격과 동문 서문의 불화살 공격에 혼비백산하여 우왕좌왕했다.
그 시각에 광개토대왕과 정예병들은 서쪽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어떤 각도의 깍아지른 절벽도 원숭이 같이 잘 타는 고구려 병사 한 명이 있었다. 그는 먼저 줄을 등에 지고 올라가 절벽 끝 왕소나무에 밧줄을 걸어 내렸다. 이어 밧줄에 줄사다리가 달려 올라오고 곧 고구려군과 광개토왕은 원숭이떼처럼 사다리 밧줄을 타고 올라갔다. 남문과 서문, 북문을 막는데 정신을 빼앗긴 목라근자 병사들은 그들의 등 뒤로 서쪽 가파른 절벽을 타고 광개토왕과 고구려 정예병들이 넘어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미 고구려군은 석성산 서쪽 절벽을 타고 종발성 안으로 난입해 동문과 북문을 열어젖혔다.
성 밖 동문과 서문에서 대치하고 있던 고구려군영에서 진군의 나팔이 울렸다. 고척동과 연개남이 오 만의 보기군을 이끌고 성문 안으로 진격해 거리와 건물을 점령하자 종발성은 순식간에 함락되고 말았다.
이사품왕은 망루에서 이 광경을 보고 탄식했다.
“난공불락의 종발성이 어떻게 하루를 못 버티고 무너진단 말인가.”
태왕은 이사품왕과 목라근자 장군을 포로로 잡아 임나왜소 종무소 뜰 앞에 무릎을 꿇렸다.
태왕이 말했다.
“이사품왕, 목장군.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이사품왕이 말했다.
“태왕, 우리는 죄인이 아니오. 죄가 있다면 이번 전쟁에서 패배한 것밖에 없소.”
“장수의 가장 큰 죄는 전쟁에서 패배한 죄지. 하지만 몇 가지 여죄도 가리켜주지. 첫째 신라를 먼저 침략해 노략질한 죄. 둘째 한반도에 왜와 후연 등, 외세를 끌어들여 전쟁을 일으킨 죄, 셋째 가야와 백제는 오래전부터 고구려의 속국이면서도 주인인 나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고 오히려 반항한 죄다. 내가 이 죄를 물어 둘을 참수하겠다.”
광개토대왕은 망나니로 하여금 이사품왕과 목라근자 장군을 베게 했다.
이사품왕이 움추렸던 자라목을 펴며 다급하게 말했다.
“태왕마마, 목숨만 살려주시면 백제의 아신왕을 잡아 올리겠습니다.”
“망나니, 칼을 멈춰라!”
대가야의 회령왕을 죽인 이후로 정복한 땅의 군주를 죽인 적은 없었다. 물론 회령왕 이전에도 포로로 잡은 왕을 죽이지 않았다. 어차피 이사품왕에게 겁박만 하고 충성 맹세를 시킨 뒤 목숨은 살려줄 작정이었다.
“무시기, 백제의 아신왕을 잡아 올린다고?”
“예. 아신왕은 대가야를 친 뒤 금관가야로 오기로 하였습니다. 그때 제가 포로로 잡아 바치겠습니다.”
그러자 함께 참수형을 기다리던 목라근자가 이사품왕의 말을 듣고 분기탱천해 말했다.
“그 무슨 소리요? 지금까지 함께한 혈맹 백제왕을 한갓 죽음이 겁나 적에게 넘긴단 말이오? 도대체 왕에겐 신의가 살아있는 것이오?”
“무엇이 혈맹이란 말인가? 너희 백제군은 고구려군이 남하할 때 막아주기는커녕 오히려 우리 가야영토인 대가야와 옛 마한 가야6국을 쳐서 먹지 않았는가.”
“대가야는 고구려의 꼭두각시 나라 아니오? 그 나라를 친 것은 곧 고구려를 친 것이니 무슨 잘못이란 말이오?”
목라근자가 백제를 떠나 임나왜소의 주수로 올 때 이사품왕은 너구리같은 자니 주의하라고 많은 사람들이 당부를 했다. 목라근자는 그럼에도 이사품왕과 목숨을 같이 하며 이번 전쟁을 치렀다. 헌데 승승장구할 때는 신라의 보반왕비와 궁녀들까지 탐내더니 불리해지자 자신의 비빈과 심복들마저 버리고 제일 먼저 줄행랑을 놓는 비겁한 모습을 보고 과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잔병들을 수습해 종발성까지 이끌고 온 것은 목라근자였다.
그러나 이사품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내가 할 말은 해야겠다. 이번 전쟁에서 손 안대고 코푼 자는 너희 백제의 아신왕밖에 없다. 무엇이 혈맹이고 어떤 게 신의란 말인가.”
태왕은 둘 사이의 다툼을 제지하며 말했다.
“그만들 하게. 나는 수많은 전쟁판을 누비고 다니며 십여 개국의 왕과 수백 명의 장군을 포로로 잡아 내 발 아래 무릎을 꿇렸다. 그들은 패장이긴 했지만 한 나라를 움직일 만한 위엄과 당당함을 지니고 있었지. 하지만 자네들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만 보이고 있네.”
태왕은 장군들과 병사들에게 큰 소리로 명을 내렸다.
“이 두 사람은 포로로 압송하고 앞으로 이 종발성과 금관가야는 옆의 아라가야왕이 수병을 둬서 다스리도록 하라. 백제의 아신왕은 이미 항복해서 나의 노객이 되었으니 오늘로써 내가 꿈꾸던 백제, 신라, 가야 삼국을 정벌해 사국통일을 이루었다. 고구려로 돌아가 후연을 치기 전 먼저 절영도에 가서 사국통일식을 거행할 것이니 그리 알라!”
태왕은 재상 을력소와 밀운장군이 후연의 침입을 맞아 의외로 잘 버티고 있다는 소식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광개토대왕은 천지신명께 제사를 드리는 제단을 절영도 남쪽 석대에 설치했다. 태왕이 절영도 남단을 사국일통을 기념하는 제단으로 잡은 것은 첫째 고구려 국내성에서 볼 때 가장 먼 한반도의 최남단으로 한반도를 일통한 끝자락이고 둘째 사국 일통을 끝까지 방해한 왜를 쫓아낸 곳에다 멀리 왜 땅이 보이기 때문이다.
태왕은 삼족오 깃발을 높이 세우고 제물을 올리고 향을 피운 뒤 국조 단군과 시조 주몽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어 연개남 장군이 사국일통의 험난한 과정을 낭랑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은택은 위로는 황천에 미치고, 그 위무는 북으로는 숙신부터 남으로 삼한까지, 서로는 거란부터 동으로는 예맥까지 사해에 떨칩니다. 특히 오늘은 한반도의 삼국의 마지막 일한인 가야를 정벌하고 왜를 물리쳐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사국을 모두 하나의 통치, 하나의 핏줄, 하나의 언어로 일통하는 뜻깊은 날입니다. 천지신명이시여, 국조 단군왕검과 시조 동명성왕이시여, 폐하와 이 나를 굽어 살피어 함부로 외국의 오랑캐들이 한반도를 침공하거나 능멸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고 배달민족이 홍익인간의 깃발 아래 대대손손 국태민안과 생생복락을 누리게 하소서.”
사국일통의 의례가 끝나자 광개토대왕은 신궁의 시위를 한껏 당겼다. 그는 바다 건너 왜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이 화살은 배달민족이 왜를 향해 날리는 정의의 화살이다. 다시 한 번 왜가 우리 땅을 침범하면 내가 직접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 왜왕을 사로잡고 왜 땅 전체를 고구려의 발 밑에 굴복시킬 것이다.”
한반도 사한의 사람들은 이날 광개토대왕이 대를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일본을 향해 화살을 쏜 곳을 태종대(현재 영도 남단에 있는 바위절벽. 태종 무열왕이 활을 쏜 사후지라서 태종대라고 불린다고 전해져 오고 있으나 신라의 태종 무열왕이 태종대를 사후지로 했다거나 영도나 동래 일대에 다녀간 역사적 기록은 전혀 없다. 태왕, 태종으로 불리기도 했던 광개토대왕이 영도와 가까운 종발성을 쳐 한반도에서 왜병을 물리친 뒤 영도 남단 바위절벽에서 사국통일의 제천행사를 하고 일본을 향해 활을 쏘았다는 게 태종대 스토리로 더 잘 어울린다.)라고 불렀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