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양왕용의 시 읽기
작성일 : 2021.03.18 11:21
가로등
류선희
모든 가로등은 하루살이이다.
어둠별이 뜨자마자 다시 태어나,
초췌한 몰골로 떨고 있는 풀들
잠시라도 누이려
뼈마다마다 녹여서
시린 어둠 죄다 걷어내고
뜨거운 꿈길을 연다.
보름달처럼 넘치거나
안개같이 잔인한 것들이
길 위에 길 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습관이라고
등 뒤에서 빈정댈지언정
으슥토록 잠 못 드는 裸木이나
길 속에서도 길을 찾는 눈먼 새를 위해
남은 불씨까지 마저 지피다
끝내 빈 몸으로 하루를 접지만
수직으로 살다 죽는 가로등은
매일매일
눈물겹게 부활한다.
-계간 시전문지 ⟪사이펀⟫2016년 여름 창간호
*류선희(부산시,금정구) 시인, 이화여대 기악과(피아노) 졸업, 1992년 ⟪한국시⟫ 등단, 부산문 학상 본상, 부산시협상 본상, 부산카톨릭 문학상 등 수상, 시집 『그대의 빈 들에서』 ,『길 속에도 강』, 시선집 『바람개비』등이 있음.
류선희 시인은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피아니스트이다. 그리고 독실한 카톨릭 교인이다. 이 작품 에는 그의 이러한 두 측면이 나타나 있다. 한국의 현대시는 문장부호를 무시하는 것이 통념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류 시인은 쉼표와 마침표를 하나도 생략하지 않고 있다. 필자 역시 그러하지만, 연 구분을 하지 않는 경우 문장부호가 의미의 단락이나 리듬의 파악 등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다. 이 작품의 경우도 연 구분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이러한 태도는 대단히 적절하다.
그의 카톨릭적 세계관은 이 시의 제목이자 이 시의 중심 이미지인 ‘가로등’을 인식하는 자세에 충분히 나타나고 있다. 가로등이 날마다 저녁이 되면 켜지고 날이 밝으면 꺼지는 것을 날마다 죽는 하루살이라고 비유하고 있다. 이렇게 날마다 죽는다는 인식은 부활이라는 카톨릭 세계관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말하자면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결국 날마다 부활하는 것이고, 다시 사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천주님을 위한 삶 , 즉 자기 자신보다 주님의 교훈에 따른 이웃 사랑이라는 삶의 자세인 것이다. 이 시의 가로등은 ‘초췌한 몰골의 풀’들에게나 ‘나목’에게나 ‘길 위에서 길을 찾는 눈먼 새’에게 꿈을 주고 새로운 길을 인도해주기 위해서 날마다 부활한다고 류 시인은 인식하고 있다.
카톨릭 세계관의 사물화라는 점에서 이 시는 분명히 성공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가 진정한 신앙시라는 점도 보여주고 있다.(양왕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