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연재소설 /대가야제국의 부활
작성일 : 2021.03.15 10:34 수정일 : 2021.03.15 10:40
제2부 하지태왕의 성장(4) /김하기
그때 실성군이 실성을 한 듯 맨발로 광개토대왕이 머무는 영명사 강학소 대청마루로 뛰어 들어온 배경은 다음과 같았다.
금관가야 이사품왕이 가야 철기군을 이끌고 금성 반월성으로 쳐들어와 내물마립간을 잡으려 하자 다급해진 내물 마립간은 마지막으로 그의 신하인 박제상을 불러 말했다.
“그동안 내가 고구려에 몇 번이나 사신을 보냈으나 구원군은 오지 않았다. 너는 차라리 산치고개로 간 계림장군에게 빨리 달려가서 나를 구하러 오라고 전해라. 알겠느냐!”
“......네!”
“만약 군을 이끌고 오지 않으면 역모로 다스리겠다고 말해라!”
내물왕은 죽을 때 죽더라도 왕법은 서슬 퍼렇게 살아있음을 신하에게 보이리라는 결기는 있었다.
“알겠사옵니다.”
박제상은 한때 삽량주의 간(干)을 역임한 적이 있기 때문에 산치고개와 곰마을[웅촌] 일대의 지리에 밝았다. 박제상은 겹겹이 에워싼 적의 포위망을 뚫고서 간신히 산치고개를 넘어 곰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계림장군을 만나 서라벌 함락과 내물 마립간의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전했다. 신라 계림장군은 산치고개에서 가야군을 물리친 승리의 기쁨도 맛보기도 전에 가야군에 의해 서라벌이 함락되고 왕이 포로로 잡혔다는 비보를 접해야 했다.
박제상은 일단 내물 마립간의 뜻을 전했다.
“장군님, 마립간께서는 어서 빨리 장군님이 구원군을 이끌고 금성으로 와서 목숨을 구해달라고 하십니다.”
성급한 월풍도 박제상의 말대로 지금 당장이라도 금성 서라벌로 쳐들어가자며 쇠몽둥이를 휘둘렀다.
계림장군도 장팔사모를 잡고 군을 움직일 준비를 하며 박제상에게 물었다.
“일단 네 이름이 무엇이고 집안은 어떻게 되느냐?”
“저의 이름은 박제상으로 박혁거세의 후손입니다. 할아버지는 아도갈문왕이며, 아버지는 파진찬 물품입니다.”
“호오, 파진찬 물품 어른은 나와 같이 고구려 태학에서 동문수학한 분으로 잘 아는 분이야.”
계림장군은 박제상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았다. 명문 가문을 타고난 늠름한 기, 지혜로워 보이는 반듯한 흰 이마, 강직해 보이는 눈빛과 강인한 턱이 믿음직스러웠다.
먼 후일 이 박제상은 고구려에 들어가 복호왕자를 구출하고 연이어 왜에 들어가서 미사흔 왕자를 구출한 후 왜왕에게 붙잡혀 왜왕의 신하가 되기를 요청받았으나 ‘계림(신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될 수 없고, 계림의 형벌을 받을지언정 왜국의 벼슬과 상은 받지 않겠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죽은, 탁월한 외교관이자 용맹한 애국충신이었던 충렬공 박제상으로, 아직은 그 마지막 절창을 부르고 죽기 전 젊은 시절이었다.
“자, 월풍! 어서 군을 출발시켜라.”
계림장군이 장팔사모로 앞을 가리키며 월풍에게 명령을 내리자 박제상이 말했다.
“잠깐만 장군님, 진정으로 이 군대로 마립간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박제상, 내가 만일 서라벌로 군사를 움직이지 않는다면 왕명을 거역해 역적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 달리 무슨 선택이 있겠는가.”
계림장군은 검은 가라말의 고삐를 잡아끌며 말했다.
박제상은 충신 계림장군이 승패와는 관계없이 이 가라말에 뛰어 올라 근왕병으로서 당장 군사를 일으켜 서라벌로 쳐들어갈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장군님, 하지만 지금 지친 군사로 서라벌로 달려가 마립간을 구하는 것은 섶을 지고 불로 뛰어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서라벌은 이사품왕의 철기군에 의해 이미 함락되었고, 서라벌로 가는 길목인 달천 철장도 적에게 점령되었습니다. 지금 서라벌을 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입니다.”
“그럼, 마립간은 잡혀 있고, 신라 사직은 망해가는 데 어떡하겠는가?”
계림장군은 장팔사모를 지팡이 삼아 짚고 스러져가는 저녁노을을 응시하며 말했다.
“장군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바위로 계란을 치는 것, 둘 중 어디를 택하겠습니까?”
박제상은 맹랑하게 말하며 물었다.
“이왕이면 바위로 계란을 쳐서 이겨야지, 더 말할 게 무언가.”
“바로 그것입니다. 바위로 계란을 치는 것, 바로 바위덩어리 같은 고구려 광개토왕을 끌고 내려와 가야를 치는 것입니다.”
“그야 그렇긴 하지만...”
계림장군은 박제상의 말이 딱딱 들어맞는 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동안 위기 때마다 고구려에 몇 번의 사신을 보내도 광개토왕은 움쩍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계림장군도 잘 알고 있었다.
“박제상, 그런데 그게 가능한가 말일세. 지금까지 마립간이 사신을 세 차례나 보냈으나 이 지경이 되어도 광개토왕은 일절 응하지 않았지.”
계림장군은 누에같이 흰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대왕은 때를 기다린 것이지 거절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평양에 들어가서 고구려 구원군과 함께 내려올 때까지 장군은 이곳 곰마을을 지키며 병력을 보존하고 계십시오. 그때 왕명을 따라도 늦지 않습니다.”
계림장군은 왕명을 어기는 것에 대해 잠시 고민을 했지만 젊은 박제상의 말이 일일이 옳은 듯했다. 현재 신라의 삼군이 궤멸하고 유일하게 남은 소수의 이 병력만으로는 고토를 회복하기엔 역부족이다. 전 신라의 영토 안에는 가야군과 왜군으로 가득 찼고, 가야 철기군의 말발굽 아래 신라 전역이 짓밟힌 현 상황에서 신라를 구원할 자는 실질적으로 고구려의 광개토왕밖에 없었다.
“알겠네, 나라의 흥망은 이제 자네의 세 치의 혀에 달렸네. 광개토왕의 구원군이 움직이면 그때 나도 움직이겠네.”
“그럼, 저는 곧바로 평양으로 가겠습니다.”
박제상은 장군에게 읍하고 평양을 향해 말을 달렸다.
박제상은 구사일생으로 가야군의 포위망을 뚫고 신라와 고구려의 국경을 넘어 패강까지 갔다.
그는 패강 나루터에 하룻밤을 묵으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바로 광개토대왕을 만나면 전의 사신처럼 또다시 거절당할 것이다. 질자로 있는 실성군은 광개토대왕과 연이 있을 터이니 그를 먼저 만나 의논을 해야겠다. 대왕은 이번 전쟁에서 어떻게든 신라의 실성군을 이용할 것이다.’
박제상은 평양 영명사에서 먼저 실성군을 만났다. 실성군은 박제상이 적의 포위망과 국경선을 뚫고 이곳까지 찾아온 것에 대해 매우 기특하게 생각하며 말했다.
“너의 이름이 박제상이라고? 그래, 무슨 일로 사선을 넘어 나에게로 왔느냐?”
“왕명을 받들고 고구려 구원군을 청하러 왔습니다.”
박제상은 그동안 신라에서 일어난 전쟁의 자초지종을 실성군에게 낱낱이 보고하고 설명했다.
“헌데 왜 광개토대왕에게 직접 가지 않고 한갓 고구려의 볼모에 불과한 나를 찾아왔느냐?”
“내물 마립간은 이번 가야와의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그의 명예는 대내외적으로 땅으로 추락했습니다. 광개토대왕은 이번 전쟁이 끝나면 반드시 내물 마립간을 내치고 대군을 왕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그런 말 말게. 여기에도 신라의 세작들이 있네.”
“일단 내물 마립간의 때는 가고 대군의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 이 박제상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렇게 되기야 하면야 잊을 수가 있겠나. 그리고 또 난 광개토대왕과 좋은 관계도 아니야.”
“좋은 관계가 아니라면 좋은 관계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번 전쟁에서 대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저들이 먼저 알 것입니다. 일단 저와 함께 광개토대왕을 만나러 갑시다. 만나실 때 신라가 매우 위급한 상황임을 일부러라도 보이십시오.”
“알겠네.”
실성은 박제상을 데리고 태왕이 머무르고 있는 영명사로 향했다. 박제상의 말에 따라 실성군은 마치 실성을 한 듯 맨발로 강학소 대청마루로 뛰어올라가 광개토대왕에게 화급히 구원군을 요청했다.
태왕은 실성군과 함께 온 박제상에게 물었다.
“정녕 내물마립간이 이사품왕의 포로가 되었느냐?”
“그러하옵니다. 포로가 되어 왕족에서 천민으로 족강되어 개 취급을 받고 있사옵니다. 내물마립간은 오로지 폐하의 구원군이 오기를 일각여삼추로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태왕이 실성군을 보며 말했다.
“실성군, 어찌하면 좋겠는가? 난 지금까지 구원군을 보내기를 주저했다. 그동안 내물 마립간이 신라의 철, 염,주와 특산물을 잘 보내지 않고, 때로는 백제, 가야, 왜와 밀통해 무역하고 그 나라에 질자를 보내기까지 한 사실도 있다. 이래도 짐이 도와주어야 하나?”
“폐하, 그건 이번 전쟁이 끝나고 난 뒤 벌을 주십시오. 그러나 지금은 시급히 구원군을 보내 적의 아가리에서 마립간을 건져내는 일이 우선입니다.”
“내물 마립간을 구해달라? 사촌동생인 자네를 신라에서 내쫓기 위해 볼모로 보내고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데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
실성은 내물왕의 사촌동생으로 어려서부터 학문과 무예가 내물왕보다 비상하게 뛰어난 데다 인물마저 훤칠하여 내물왕이 시기하던 중 고구려가 신라에게 볼모를 요구하자 냉큼 질자로 올려 보내버린 것이다.
“내물은 국방에 실패해 전쟁 포로가 된 것도 모자라 천민이 되어 개 취급을 받고 있다. 이런 자를 신라인들이 다시 왕으로 받들겠는가. 신라에서 내물의 시대는 가고, 실성, 이제 자네의 때가 온 것 같네.”
태왕의 말은 박제상이 예측한 것과 신통방통하게도 일치했고, 실성이 그야말로 원하고 바라던 말이었다. 그렇다. 박제상과 태왕의 말대로 내물왕인지 나물왕인지 그의 시대는 저물고 시들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태왕의 말에 실성이 넙죽 맞장구를 놓아버리면 자신의 탐욕스런 본심이 만천하에 드러나 부작용이 날 수도 있는 법, 우선은 한껏 자세를 낮추었다.
“내물 마립간은 여전히 모든 신라 백성들이 어버이로 우러르고 있지만 저는 아직 어리고 미거해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흠, 너는 수시로 짐과 고구려를 싸잡아 비난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짐으로부터 제왕학을 배웠기에 내가 너의 국량을 잘 알고 있다. 신라로 돌아가면 반드시 훌륭한 마립간이 될 것이다.”
“황공무지로소이다. 폐하께서 저의 지난날의 과오를 용서하시고 도와주신다면 저는 그간의 모든 불평불만을 거두고 오로지 폐하와 고구려에만 목숨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짐이 오만 군사를 내서 내물 마립간을 구원하고 가야와 왜가 다시는 신라 땅에 발을 못 붙이도록 하겠다.”
“황은이 망극하나이다.”
실성군과 박제상은 광개토대왕 앞에 납작 엎드렸다.
광개토왕은 즉시 평양 외곽의 고구려 보기군 5만을 신라를 향해 출병시켰고 실성군을 정대장군으로, 박제상을 참군으로 삼고 직접 선두에 서서 군대를 진두지휘했다.
백마를 탄 광개토대왕이 보검인 신검을 빼어들고 소리쳤다.
“신라 금성으로 진격하라! 가야군들과 간악한 왜놈들에게 고구려군의 위용과 본때를 보여줘라.”
금성 반월성의 뇌옥에 갇힌 신라의 내물 마립간은 고구려의 구원군과 곰마을의 계림장군이 오기만을 눈알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고구려가 우선이었다. 내물은 아침저녁으로 북쪽 고구려를 향해 절을 했다.
금관가야의 이사품왕은 그런 내물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마립간이라는 자가 고구려의 똥과 방귀도 향기롭다고 사대를 하니 어찌 나라가 온전하게 남아나겠는가.”
광개토대왕은 5만 보기군을 이끌고 파죽지세로 신라로 향해 쳐들어왔다. 금성 외곽에 주둔하고 있는 가야병과 왜군을 물리치고 수도 금성을 향해 질주했다. 고구려군이 반월성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사품왕은 서둘러 전리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는 너구리같은 성격으로 눈앞의 승리에 그렇게 연연해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목숨이 부지되고 전리품을 챙겨 이익만 나면 도망가거나 무릎을 꿇는 따위는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이사품왕은 반월성의 아리따운 왕비와 궁녀들, 값진 금은보화의 보물들을 챙겨 달아날 준비를 하였다.
이사품왕은 핵심 측근과 장수들과 함께 궁궐을 빠져나오기 전 뇌옥에서 내물 마립간을 석방시켜 자기 앞에 무릎을 꿇렸다.
이사품왕은 내물에게 따지듯 말했다.
“마립간 동생, 옥중에서도 아침저녁으로 고구려 왕궁을 향해 절을 한다며?”
“반드시 고구려의 구원군이 와서 왜놈과 붙어 묵은 네 놈을 응징할 것이다.”
“이 일을 어찌할꼬. 평양에 있는 고구려군은 지금 후연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북방으로 움직이고 있다네.”
“거짓말 마라. 지금 5만의 고구려군이 성 밖까지 내려와 있다는 걸 옥중의 수인들도 다 알고 있다.”
“그걸 유언비어라고 하지. 자, 난 제수씨와 궁녀들을 데리고 금관성으로 간다. 창고 안에 있는 값진 보물들은 가는 길의 노잣돈으로 쓰겠네.”
“무엇이라고? 내 아내와 비빈들을 약탈해 간단 말이냐. 이 천하에 오사리잡놈 같으니라고!”
“제수씨 보반부인은 천하의 미인으로 소문난 여자인데 이곳까지 와서 그냥 갈 수는 없지.”
왕비 보반부인은 미인일 뿐만 아니라 지혜롭기도 소문이 난데다 아들 눌지 복호 미사흔 삼 형제를 낳아 잘 기른 현모양처로서도 소문이 났다.
“이 더럽고 추잡한 놈, 그러고도 같은 형제라고 말할 수 있느냐.”
“내물 마립간, 그동안 같은 형제끼리 한 짓을 보면 네 놈이 감히 형제 운운할 자격이 되느냐!”
서로 같은 김씨 혈통임에도 골육상쟁을 벌이는 두 김씨는 가야와 신라의 건국시조이자 동조동근의 김씨로 서로 형제였다. 김씨의 시조는 김알지도 김수로왕도 아닌 흉노족 왕자 김일제였다. 서력 달력이 BC에서 AD로 바뀔 무렵인 후한 광무제 때(BC6~AD57) 중국 땅에서 김일제의 후손들이 광무제에 의해 진멸될 때 거의 동시에 한 울타리 집안 형제인 김수로와 김알지는 중국에서 도망쳐 한반도로 건너와 각각 가야와 신라의 건국시조가 되었다.
여기서 잠시 김해 김씨와 경주 김씨의 시조이자 이 지구상의 모든 김씨의 맨 처음 시조인 김일제(金日磾)에 대해 이야기하고 넘어가자.
대보공 김알지는 경주 김씨의 시조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석탈해 이사금은 65년 봄 어느 날 밤에 인가가 없는 금성 서쪽의 시림(始林)의 숲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새기를 기다려 호공을 보내 시림을 살펴보게 하였더니, 금빛 찬란한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서 아뢰자, 사람을 시켜 금 궤짝을 가져와 열어 보았더니 조그만 사내아기가 그 속에 있었는데, 자태와 용모가 준수하고 컸다.
석탈해가 아기를 보고 기뻐하며 좌우의 신하들에게 말했다.
“이는 어찌 하늘이 나에게 귀한 아들을 준 것이 아니겠는가?”
석탈해가 아이를 거두어서 길렀는데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으므로 이름을 알지(閼智)라 하고 금 궤짝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金)이라 하였다.
이야기인즉슨 김알지가 금 궤짝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김씨 성을 받았다는 것인데 이것은 사대주의자 김부식이 김씨의 시조가 흉노족이라는 사실을 빼고 조상을 미화한 것이다. 원래는 김씨의 시조 김일제는 흉노족의 왕자였다. 그는 흉노의 관습대로 ‘금인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祭天金人]’고 해서 한무제가 김씨 성을 김일제에게 준 것[賜姓]이지 금궤짝에서 닭이 울어 김씨가 아닌 것이다.
그럼 좀 더 자세히 신라와 가야의 시조에 대해 알아보자.
흉노족은 어떤 민족인가? 김부식이 사료에서 삭제할 정도로 부끄럽고 비천한 북방 오랑캐가 아니라 세계를 정복한 위대한 기마민족이었다. 북방 유목민족인 흉노는 투르크계 인종으로 뛰어난 기동력과 용맹한 전투력으로 정복전쟁을 벌여 항상 중국과 대등하게 맞서며 중국을 괴롭혀 왔다. 세계 7대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만리장성도 강대한 북방민족인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것이다. 서방으로 진출한 흉노족의 일부는 훈족으로 불리어졌는데 훈족의 대왕 아틸라는 동유럽으로 쳐들어가 훈족의 나라 헝가리를 세웠다.
흉노족이 중국을 실제적으로 지배한 것은 한나라 초기였다. 한나라를 창업한 유방은 흉노와의 전쟁에 져 포로가 되었다. 유방은 흉노족의 대왕인 선우에게 그의 신속(臣屬)이 되어 매년 황금 3천 냥과 아리따운 여인 3백을 조공으로 바치기로 약속하고서야 가까스로 포로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이런 강대한 흉노족도 중국의 한 무제 때는 힘을 잃기 시작해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패전에 패전을 거듭했다. 패전의 과정에서 흉노족의 왕 휴도왕이 죽고 휴도왕의 왕자 일제도 포로의 신세가 되어 한나라에 잡혀가 뇌옥에 갇혀 황제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일제가 한족의 포로가 되어 뇌옥으로 압송되었을 때 마침 훗날 <사기>를 써 만고에 이름을 떨친 사마천이 아직은 젊은 나이에 뇌옥에서 갇혀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뇌옥의 형리들이 공교롭게도 일제와 사마천 둘을 같은 방에 넣었다. 나이도 비슷하고 죄질도 서로 얽혀 있는 비슷한 죄인이라 같은 옥방에 넣었는지도 모른다.
옥방에 들어가자마자 방장인 사마천이 대뜸 일제에게 말했다.
“그대가 흉노족의 왕자인 일제요?”
“그러하오. 어떻게 날 알았소?”
“난 이 뇌옥에서 사형수로 좌장이오. 옥중의 모든 소식은 나에게 흘러 들어오게 되어 있소.”
사마천의 눈은 어둠 속에서 번들거렸으나 사형수답지 않게 온화한 얼굴이었다. 이마는 넓고 반듯해 지혜로워 보였고, 눈썹은 짙고 단정하며, 눈은 가늘고 길어서 봉안(鳳眼)이었다. 눈빛에 총민한 광채가 나고, 안광에 문기(文氣)가 은은히 감돌고 있어 한눈에 기개가 높은 문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당신네 흉노족에 투항한 내 친구 이릉 장군을 변호했다 하여 이 꼴이 되었소.”
사마천은 흉노족인 일제를 원망하는 투로 말했다.
사마천은 흉노족의 포위 속에서 부득이하게 항복한 이릉 장군을 변호한 것이 한 무제의 역린(逆鱗)을 건드려 사형 판결을 받았다고 했다. 용이란 짐승은 잘 친해지기만 하면 올라탈 수도 있다. 그러나 용의 목 아래에는 직경 한 자쯤 되는 거꾸로 난 비늘이 있어 만약 그것을 건드리면 용은 크게 노해 반드시 사람을 죽이고 만다. 임금 또한 용처럼 역린이 있어 심기를 잘못 건드리면 임금의 분노를 자아내 신하는 죽고 마는 것이다.
“친구를 변호했다고 사형을 시키다니 그런 옹졸한 군주가 어디 있소?”
“그래서 내가 역린을 건드렸다고 하지 않소. 친한 친구도 아니었다는 게 더 환장할 노릇이오.”
“사마천, 당신은 훌륭한 역사가라고 들었소. 목 베임을 당해 죽느니 차라리 궁형(宮刑, 남근을 거세하는 형)을 택해 살아남는 게 더 나은 방법이라 생각하지 않소?”
“무슨 소리요? 문사로서 못 할 짓이 궁형을 받는 것이오. 그대는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오?”
당시 사형 선고를 받으면 백이면 백 모두 궁형보다 사형을 택했다. 사형을 받으면 죽음과 함께 죄는 사라지지만 궁형을 받으면 죄와 함께 대대로 후손들에게까지 물려져 치욕거리가 되기 때문이었다.
“사마천, 정말 그대는 생각보다 바보군요. 생명보다 명분이 소중한 것이오? 죽은 정승보다 산 개가 낫다는 말을 모르오? 그대가 역사와 후손에게 진정 떳떳한 이름을 남기려면 궁형이든 짤형이든 살아남아 그대가 진정 쓰고자 하는 올바른 역사를 쓰는 것이오.”
일제는 사마천의 결정적인 약점을 건드렸다. 그것은 바로 역사였다. 사마천에게 역사는 생명보다도 그 어떤 명분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었다. 아버지 태사공 때부터 시작된 역사기술 과업을 그는 반드시 이루고 눈을 감아야 했다. 역사기술을 끝내는 것은 아버지의 유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난 흉노족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한나라의 마구간을 지키는 말구종의 삶이 주어지더라도 달게 받을 것이오. 그대도 나와 함께 살아남아 미완의 역사를 완성하시오.”
사마천은 사형집행일을 며칠 앞두고 형리를 불러 말했다.
“사형 대신 궁형을 택하겠소.”
이 결정이 반드시 일제의 권고와 충고 탓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마천도 마음속에도 아버지의 유언과 역사에 대한 깊은 궁리가 있었을 것이고, 또한 그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마천의 선택에 형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궁형을 집행하는데 달인이었다. 한무제는 명군이었지만 성격이 포악해 자신의 역린을 건드리는 자는 가차 없이 사형이나 궁형에 처해 한해에 궁형을 당하는 자가 수십 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망나니는 먼저 독초를 끓인 독극물을 나무대야에 그득 담았다. 독성이 센 미치광이풀, 초오, 투구, 천남성, 칠수를 삶은 물이다. 망나니는 사마천의 입에 나무로 만든 고자좆[방성구, 防聲具]을 물린 뒤 성기와 고환을 그 물에 한식경 동안 담그게 했다. 그러자 성기와 고환이 녹아 흐물흐물해졌다. 한식경이 지난 뒤 숫돌에 사흘들이 간 날카로운 칼로 그의 하체를 도려내었다.
“으으으으......”
고통에 가득 찬 사마천의 신음소리는 입에 문 고자좆 밖으로 새어나왔다.
하지만 그는 궁형을 당하면서 적어야 할 사기의 한 구절을 생각했다.
‘天道是耶非耶(천도는 과연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사마천은 천도의 존재마저 의심하며 남근과 음낭이 잘린 채 뇌옥에서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사서필방으로 들어가 아버지 사마담의 유지인 ‘사기’ 편찬에 나머지 생애를 걸었다. 뇌옥에서 만난 일제의 충고가 없었더라면 사마천은 사형을 택했을 것이고, 어쩌면 사마천의 ‘사기’는 영영 탄생하지 못 했을지 모른다. 또한 김일제의 기록이 한서에 남아 있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일제는 흉노국 왕자의 신분에서 한나라 마구간을 지키는 말구종의 신분으로 뇌옥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도 사마천처럼 꿈과 희망을 잃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매사냥을 즐겨했던 매꾼인 그는 매잡이의 성품인 신중함과 통솔력, 용맹무쌍함과 때를 알아차리는 분별력을 지니고 있었다. 일제는 말구종 신분이었으나 뇌옥에서 쌓은 교분으로 인해 사마천의 사서필방을 자주 출입하였다.
사마천은 일제를 만날 때마다 뇌옥에서의 그 충고 한 마디가 자신을 살렸다고 고맙게 생각했고, 둘은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는 막역지우가 되었다.
“사마천, 요즘 소변을 보기가 어떤가?”
“여자처럼 앉아서 누니 오히려 편리한 면도 있다네.”
“글쓰기는 어떤가?”
“가운데 다리 하나가 없으니 솥발처럼 균형이 맞지 않아 자꾸만 앞으로 몸이 기울어지네. 그래서 하루 종일 붓대를 세워서 균형을 잡고 있다네.”
사마천은 농담으로 말하곤 했다.
“오, 붓대로 균형을 잡는다? 하루 종일 글만 쓴다는 말이군.”
“그런 셈이지. 자네의 말구종 생활은 어떤가?”
“나야 늘 목숨이 말 부랄처럼 붙어 있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산다네.”
각설하고 이후 일제는 말구종의 신세에서 벗어나 마감, 교위까지 승진하게 되는데 어느 날 밤 우연히도 한무제를 암살하러 칼을 들고온 자를 잡게 되는 큰 공을 세우게 된다. 한 무제는 그런 일제에게 자신의 딸을 주어 부마로 삼으려 했으나 일제는 이미 사랑하는 여인이 있음을 내세워 완곡하게 거절했다.
“아니 되옵니다, 폐하. 제가 사랑하는 여인 때문에 공주님을 조금이라도 홀대하면 폐하께 불충이 되옵니다.”
“두 여자 모두 사랑하면 되지 않느냐?”
“소신은 국량이 모자라 그렇게 하지 못 하옵니다. 통촉하여 주옵소서.”
“알겠노라. 그럼, 다른 소원은 없는가?”
한 무제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일제에게 벼슬 이외에 특별한 뭔가를 보답해주고 싶었다.
“감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소원이 한 가지 있사옵니다.”
“오, 그래 그게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떼어주고 싶구나.”
“이제 저도 결혼을 해야 하는데 흉노의 관습법에 따라 일제란 이름만 있었지 아직 성이 없사옵니다.”
“그렇지. 일제라고만 불리고 있지.”
“황제 폐하께서 사성(賜姓)을 해주시면 이보다 큰 영광이 없겠사옵니다.”
“일제는 참으로 욕심이 없고 성정이 맑은 사람이다. 원하는 성이 있는가?”
“가능하다면 김(金)으로 하고 싶습니다.”
“왜 하필 김인가?”
“김은 우리 흉노족의 기상이 담긴 금인이기 때문입니다. 황제께서도 아시다시피 우리 겨레는 대대로 감천궁에서 금인으로 하늘을 섬기는 제천금인(祭天金人) 행사를 해왔습니다.”
“김이라?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릴 좋은 성씨이구나. 좋은 날을 잡아 사성을 하도록 하마.”
그날은 하늘이 참으로 맑은 날이었다.
한 무제는 삼공과 경·대부를 불러 조칙을 발표했다.
“대소신료들은 들으시오. 지난 번 암살 사건 때 짐의 생명을 구한 공신이 누구인지 여러분은 잘 알 것이오. 자, 일제는 앞으로 나오너라.”
일제는 황제 앞으로 나아갔다.
“일제의 성은 이제부터 김(金)으로 사성하고 교위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투후의 직을 주노라. 그리고 산동지방을 식읍으로 주노니 그 이름을 이제부터 금성(金城)이라 하라.”
이로써 성서에 아담이 인류의 첫 조상으로 나와 있듯이 인류역사상 최초의 김씨 성을 사용하게 된 김일제는 오늘날 이 지구상에 흩어져 있는 모든 김씨-한반도에 집중적으로 모여 살지만-의 조상이 된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우리 역사에 매우 익숙한 이름인 김알지가 나온다. 그 김알지가 바로 김일제의 5대손 성한왕(星漢王) 김성(金星)인데 문무대왕 능비와 흥덕왕 비에도 공히 김씨의 시조를 김일제로, 신라의 태조를 성한왕 김성으로 새겨놓고 있다.
산동성 일대에 살던 김성은 금성의 주민들을 이끌고 두 갈래로 한반도에 들어갔다. 한 갈래는 북방 초원길을 통해 동쪽으로 이동해 고구려를 거쳐 신라로 들어와 경주 김씨의 조상이 되었고 다른 한 갈래는 김일제의 동생 김윤의 갈래로 산동의 청주에서 바로 배를 타고 신라 김해로 들어와 김해 김씨의 조상이 된 것이다.
한반도에 정착한 것은 거의 동시대이긴 하지만 역사서에 따르면 가야의 김수로왕(재위42-199)이 신라 김알지(출생 65년)에 비해 건국의 시기도 약간 더 빠르고 항렬도 빨라 여러모로 형의 위치에 있었고 동생인 신라와 더불어 잘 살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갈수록 동생 신라 김씨는 형을 공격해 수시로 땅을 빼앗아갔다. 신라 김씨는 고구려를 든든한 뒷배로 삼아 전쟁과 협상, 늑약을 통해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듯 야금야금 형의 나라인 가야 땅을 먹어치웠다. 신라가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가야의 여러 왕들과 왕비와 비빈을 납치하고 약탈해 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신라의 내물 마립간이 미오야마국(묘산, 합천일대)과 독로국(부산 동래)까지 먹어치우려 하자 가야의 이사품왕은 어쩔 수 없이 백제와 왜와 손잡고 동생의 나라인 신라를 쳐 응징했던 것이다.
이사품왕이 포로로 잡은 내물 마립간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동생과 나는 김일제 조상으로 같은 뿌리인데 어찌 나에게 그다지도 적대적인가?”
“사돈 남 말한다더니, 가야야말로 같은 핏줄을 내팽개치고 왜와 관계를 맺고 끊임없이 우리 신라를 침공하지 않았던가.”
과거에도 이번처럼 가야가 왜와 손잡고 신라를 침공해 금성(경주)을 포위한 적이 있었고, 내물 마립간은 다양한 지략으로 이들을 물리쳤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규모 면에서 과거의 작은 전투와 양상이 전혀 달랐다. 가야의 왕 이사품이 직접 가야와 왜의 연합군 삼 만을 이끌고 쳐들어와 신라 전토를 점령한 것이다. 연합군 뒤에는 백제 아신왕의 오만 군의 지원이 있었다. 마립간의 지략이나 신라만의 군사력만으로 막을 수 없는 대규모 남방 전쟁이었다. 이사품왕이 마립간을 무릎 꿇리고 말했다.
“마립간, 너도 처음에는 제법 영명한 군주가 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몇 년 전 왜군을 물리친 뒤로 자고에 빠져 한 자매를 같은 침상에 끌어들이는 패륜을 범하는가 하면, 어진 신하들을 멀리하고 간신을 곁에 두었다. 민심은 피폐해져 나라는 도탄에 빠졌는데 백성을 착취해 창고에 쌀과 어육과 보물을 가득 채워놓는데 급급했다.”
이사품왕도 마립간의 패덕을 단죄할 만한 도덕군자가 전혀 아니었다. 단지 승자의 강변일 뿐이고 패자는 승자가 말을 내뱉는 대로 죄를 뒤집어쓰게 마련이다.
“내가 오늘 네 목을 베어 이번 전쟁이 정의로운 전쟁임을 만천하에 알리겠다.”
이사품왕이 칼을 빼어 목을 치려는 순간, 가야의 전령이 숨 가쁘게 달려와 다급하게 말했다.
“광개토군이 금성 북문까지 쳐들어왔습니다. 지금 당장 피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북쪽에서는 고구려군이 물밀 듯이 쳐내려오고 남서쪽으로는 신라의 계림장군이 장팔사모를 들고 근왕군을 이끌고 올라오고 있었다. 빨라야 달구벌쯤에 주둔하고 있을 고구려군이 벌써 반월성 문밖에 있을 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아니, 고구려군이 남진해 내려올 경우, 백제군 5만으로 차단하고 후연의 모용과 맹약을 맺어 고구려의 뒤통수를 친다며 철석같이 약속했던 아신왕은 어찌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가!’
이사품왕은 산더미 같은 전리품을 발앞에 두고서 발발 동동 굴렀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