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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이의 국악 다가가기 16> 순조 연경단 진작례

작성일 : 2021.03.12 12:12

순조 무자년 연경당 진작례.

-춘앵전 포함 정재 17개 초연

 

궁중 연향은 설행 목적에 따라 회례연(會禮宴), 양로연(養老宴), 진연(進宴), 사객연(使客宴)으로 나뉩니다. 진연은 규모가 다양하게 발전함에 따라 진풍정(進豊呈), 진찬(進饌), 진작(進爵) 등 여러 가지 용어가 쓰였습니다. (김종수, 45-58). 조선 초기에는 연향을 올리는 것을 진풍정’, 또는 헌풍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성종 때부터 진풍정 대신 진연이 많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중종 때부터 진풍정은 웃어른에게 올리는 성대한 연향을 의미하고, 진연은 효종 때부터 진풍정보다 규모가 작은 예연(禮宴)을 뜻하는 용어로 확립되었습니다.

 

18세기 후반 영조대 말기에는 진찬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진찬은 조촐한 잔칫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1795(정조 19)에 이르러 진연보다 작은 규모의 예연을 뜻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진찬은 점점 규모가 작아져 영조 당시에는 예연이 아닌 단순한 술자리 즉 곡연(曲宴)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순조 28(1827)에는 진작(進爵)’이라는 용어가 새로 등장했습니다. 진작은 진연 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향응 위주의 잔치인 곡연이 아니라 예연입니다. 진작은 음식, , 치어(致語, 임금에게 올리는 찬양의 말), 그리고 가무 등 의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한국 예술 종합학교 무용원 부설 세계 민족 무용 연구소는 2006626, 음력 61, 창덕궁 연경당 본채에서 조선 순조 무자년 연경당 진작례 (演慶堂 進爲禮)를 재현하였습니다. 178년 전 오늘, 순조 무자년(1828) 음력 61일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는 모친인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1857, 순조비)40세 탄신을 축하하기 위하여 연경당에서 왕실 잔치를 마련하였습니다. 이날 진작례는 순조의 왕실 가족 8인과 외빈 4인만이 참가한 조촐한 잔치였으나, 효명세자는 정재(呈才) 17개를 새로 창작하여 처음으로 펼쳐 보였습니다.

정재는 궁중의 가무입니다.

 

효명세자는 조선 제23대 왕인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에서 태어나, 순조 27218일부터 3056일 급서하기까지, 33개월 동안 대리 청정(聽政)했습니다. 그는 짧은 통치 기간에도 불구하고 전례 없이 화려한 궁중 연향 들을 벌이면서 궁중 무용의 창사를 직접 짓고,

연향에 쓰이는 치사(致辭)와 전문(箋文)을 직접 지었습니다. 치사는 임금에게 올리던 송축내용의 한문 문체인데 치어(致語)라고도 하고, 전문은 나라에 길한 일이나 흉한 일이 있을 때 에 임금에게 써 바치던 사륙체(四六體)의 글, 즉 네 글자와 여섯 글자로 된, 한문(漢文體)의 글입니다. 당시 정치 경제적 이유로 예악 정치가 중단돼 정재의 창사조차 제대로 전해오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효명세자는 이름만 남은 옛 정재 들을 되살려내고 연향의 규모를 확대해 왕실의 위엄을 한껏 드러내었습니다. 그는 조선조 말까지 전하는 53종의 궁중 정재 중 26종의 정재를 직접 예제(睿製)하고 다시 창작해 조선 정재의 절정기를 일궈냈습니다. 예제란 세자나 왕세손이 글을 짓는 것을 말합니다.

 

연경당 진작례의 의전 절차는 크게 6단계입니다. 1) 왕세자가 자리에 나가는 취위(取位), 2)왕과 왕비가 자리에 올라가 앉는 승좌(陞座) 및 왕세자 사배례(四拜禮), 3)왕과 왕비에게 휘건(揮巾), 음식, , , 치어, 무용들을 올리는 진작, 4) 왕세자에게 휘건, 음식, , , 치어, 무용 들을 올리는 진작, 5) 음식을 물리는 퇴어찬 (退御御), 6) 의식을 마치는 예필(禮畢). 휘건은 식사할 때 앞에 두르는 수건입니다.

 

조선 후기에 내연에는 여성 무용수인 여령(女伶)이 정재를 추었고. 외연에서는 어린 남자 무용수, 무동(舞童)이 추었습니다.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어머니 순원왕후를 위해 창덕궁 후원에 지은 내당입니다. 연경당 진작례는 내당에서 벌어진 잔치이지만 효명 세자가 주관을 했고 왕도 참여하는 행사이므로 외연이라고 간주하여 무동이 출현한 듯합니다.

 

연경당 진작례에 정재무가 17개나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규모가 작은 왕실의 잔치였지만 대량의 창작 정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 행사의 의례와 정재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박미경. 81).

 

 

의례

정재

1

휘건을 왕과 왕비에게 올림

망선문(望仙門)

2

어찬을 왕과 왕비에게 올림

경풍도(慶豐圖)

3

꽃을 왕과 왕비, 왕세자에게 올림/

왕세자가 절함

만수무(萬壽舞)

4

왕의 술잔을 수주정(壽酒亭)에 둠.

(수주정은 잔치를 벌일 때 술잔을 올려놓던 탁자이다)

헌천화(獻天花)

5

왕세자가 왕비에게 잔을 올림

춘대옥촉(春臺玉燭)

6

왕비의 잔을 수주정에 둠.

보상무(寶相舞)

7

별미를 왕과 왕비에게 올림

향령무(響鈴舞)

8

탕을 올림

영지무(影池舞)

9

차를 올림

박접무(撲蝶舞)

10

휘건을 올림

침향춘(沈香春)

11

찬반을 올림

연화무(蓮花舞)

12

술을 올림

춘앵전(春鶯囀)

13

탕을 올림

춘광호(春光好)

14

차를 올림

첩승무(疊勝舞)

15

어찬을 올림

최화무(催花舞)

16

찬반을 물림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

17

왕세자가 절을 함

무산향(舞山香)

 

이 표를 보면 아주 많은 정재무가 연향에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건, , 음식, 탕을 올리거나 물릴 때마다 새로운 춤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화려한 연향은 아주 드물 것입니다. 진작은 술을 바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의전 절차 중 술을 올리는 단계가 행사의 절정입니다. 이때 춘앵전(春鶯囀)이 나옵니다. 효명세자는 춘앵전이 가장 아름다운 춤이라고 생각하여 술을 올리는 의례에서 춘앵전을 배치하였을 것입니다.

 

춘앵전의 춘은 봄, 앵은 꾀꼬리, 전은 지저귄다는 뜻입니다. 이름을 염두에 두고 춤을 보면 봄 꾀꼬리가 지저귀며 날아다니는 형상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무용수는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 색의 앵삼(鶯衫)을 입고, 화관을 쓰고, 오색 한삼(汗衫)을 양손에 끼고 꽃돗자리(花紋席) 위에서 혼자 춤을 춥니다.

 

무용의 동작은 언어로 서술하기가 참 어려운데 춘앵전 무보 에는 시적 묘사가 가득합니다. 화전태(花前態)는 꽃 앞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짓는다는 뜻입니다. 실제 춤에서는 무용수가 양손을 등 뒤로 돌려놓고 생글생글 웃으며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화전태는 춘앵전에서 가장 우아하면서도 매혹적 동작입니다. 과교선(過橋仙)은 선녀가 다리를 건넌다는 뜻입니다. 실제 춤에서는 무용수가 양팔을 일자로 벌리고 좌우로 3바퀴 돕니다. 과교선은 매우 황홀합니다.

 

정재의 무용수들은 춤추기 전이나 추는 중간중간 노래를 합니다. 이것을 창사라고 합니다. 춘앵전의 창사는 춤의 분위기를 묘사합니다.

 

娉婷月下步 羅袖舞風輕 빙정월하보 나수무풍경

最愛花前態 君王任多情 최애화전태 군왕임다정

 

어여쁜 여인 달빛 아래 거니는데, 비단 소매 춤바람에 나부끼네

꽃 앞에 선 자태 어찌나 아리따운지, 군왕께서 다감한 정을 주시네.

 

춘앵전은 국립국악원 무용단에서 자주 공연합니다. 그런데 해설자들은 이 춤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원래 춘앵전은 앞에서 말했듯이 순조 무자년 연경당 진작례에서 술을 올릴 때 처음 등장하였습니다. 이 춤의 목적은 연향의 분위기를 띄우는 것입니다. 1910년 조선이 망하면서 궁중의 여성 무용수들은 민간으로 내려갑니다. 그들은 기생이 되어 일류 요리점에서 춘앵전을 추었습니다.

 

오늘은 순조 무자년 연경당 진작례의 의례와 정재를 살펴보았습니다. 정재는 궁중 무용입니다. 1910년 궁중 연향이 사라지면서 궁중의 여령들은 민간의 연향에서 춤추고 노래하게 됩니다. 여령을 여악 이라고도 부릅니다. 조선 여악의 운명은 다음 시간에 살펴보겠습니다.

 

인용 문헌

 

김종수. 조선 시대 궁중 연향과 여악 연구. 민속원. 2003 개정 1.

박미경. 순조 무자 진작례에 나타난 공연 양식. 영남춤학회지. 영남춤학회지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