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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3.08 10:04
제2부 하지태왕의 성장(3)
/김하기
백제 아신왕은 가야왕 이사품 왕을 만나 신라와의 전쟁에 대해 담판을 짓기로 했다. 두 왕은 지리산 서쪽 옛 마한 땅 가야 6국의 중심국, 상다리(순천)에서 만나기로 했다. 가야가 차지하고 있는 소백산맥 너머, 옛 마한 땅에 설치한 가야 6국은 상기문(임실, 번암), 하기문(남원), 상다리(순천, 광양), 하다리(여수, 돌산), 사타(고흥), 모루(무안)이고 그 중심지가 상다리이다. 이 가야 6국은 옛 마한 땅으로 백제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나 금관가야가 성벽을 높이 쌓아 침공하기가 쉽지 않았으며, 특히 호전적이고 전설적인 남해의 여전사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어 백제가 쉽게 먹을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뒤웅박을 차고 있는 승냥이 같은 아신왕과 능구렁이 같은 이사품왕은 각각 동상이몽을 가지고 상다리성 고당에 올라 마주 앉았다. 남해의 파란 바다가 보이고 점점이 떠 있는 녹색 섬 사이로 하얀 돛을 단 가야 배들이 바람에 곱게 밀려가고 있었다.
“정말 그림 같이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백제에는 이런 곳이 없습니다.”
아신왕은 마한 땅 가야6국은 머잖아 백제의 영토에 편입될 것이라는 욕망을 숨기며 인사를 건넸다.
“이곳은 풍광도 아름답거니와 우리 가야에서 가장 물산의 풍부한 곳입니다.”
백제 넓은 땅에 이런 곳이 없다니, 백제 서해안은 여기 못지않은 아름다운 곳이 얼마나 많은가. 금관가야의 이사품왕도 아신왕의 입질을 전에부터 느끼고 있었다. 굳이 이곳에서 만나자는 것부터 이곳을 정탐하면서 군침을 흘리고 있다는 속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 아닌가.
“과연 그럴 만한 곳이군요.”
백제 아신왕은 타오르는 불꽃무늬의 화려한 화염금관을 썼고, 가야 이사품왕은 산(山)자 모양의 소박한 금동관을 썼다.
아신왕이 이사품왕을 좌우에서 호위하고 있는 여전사를 보며 말했다.
“가야의 여전사는 아름답기도 하고 남자 무사들 못지않게 씩씩해 보입니다.”
“우리 가야의 보배들이지요. 가야의 여전사들은 지리산 너머 이곳, 옛 마한 땅에 있는 가야 6국을 지키고 있는 정예병입니다.”
“가야의 여전사들이 명성은 삼한에 널리 퍼져 있지요.”
아신왕은 쩝쩝 입맛을 다셨다.
철갑옷을 입은 가야의 여전사들은 하다리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하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국경을 두고 백제의 병사들과 더 많이 싸우고 있었다. 이 여전사들이 백제의 수병(戍兵, 국경을 지키는 병사)들이 쳐들어오는 족족 족쳐놓았던 것이다. 가야는 전쟁이 일어나면 여자들이 스스로 지원해 철갑옷을 입고 전투에 나서, 나라를 지키는데 남녀가 따로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남해바다와 가야의 여전사로 운을 뗀 백제의 아신왕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 마디 했다.
“참, 이번에 잃어버렸던 옛 가야영토를 회복한 것에 대해 감축드립니다.”
“뭘, 감축까지. 본디 400년 동안 가야 12국은 우리 연맹체였는데, 잠시 나들이를 한 셈이었던 게지요. 아직도 대가야를 비롯해 다라와 성산이 연맹회의에 오지 않는데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들어오게 되어 있으니까요.”
결국 가야연맹체는 언제나 지난 400년 동안 금관가야 김수로대왕 아래 하나였다는 것이다.
서로간에 인사와 하례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이번 전쟁에 대해 말했다.
“이번 신라와의 전쟁은 우리 백제가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사실은 인정하시겠지요.”
“그건 인정합니다.”
이미 백제는 병관좌평 진무장군을 금관가야로 보내 이사품왕과 김품지 장군과 수없이 대 신라 전쟁에 관해 전술 전략회의를 열어 물밑작업을 했었고 이제 마지막 최고권자인 왕들의 결정만 남겨두고 있었다.
“지금 신라의 국방은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수년 전 왜구가 단순히 신라 해안가에 노략질하러 들어갔다가 군대가 너무 약하니 금성까지 쳐들어가 온통 분탕질을 했지요.”
“맞습니다. 그 때 내물마립간은 왜에 왕자 둘을 볼모로 보내고서야 왜구들이 분탕질을 멈추었지요.”
“우리 세작들의 보고에 따르면 지금은 그때보다 더 약하다고 합니다. 성들은 높으나 모래성과 같고, 병력은 허수아비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가야가 신라에 쳐들어가면 썩은 삽짝 문짝을 차고 들어가듯 들어가 신라는 저절로 무너질 것입니다. 신라를 치기에는 지금이 최적기입니다.”
백제 아신왕이 말을 할 때마다 머리에 쓴 화염금관이 움직이며 번쩍거렸다. 화염금관의 불꽃 문양이 마치 가야 이사품왕의 작은 금동관을 녹일 듯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이사품왕이 말했다.
“저도 신라 땅을 순식간에 먹을 자신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야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이번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이사품왕은 내물만 생각하면 승리의 예감으로 온몸이 전율이 일 듯 충일하다가도, 내물의 뒷배인 광개토왕까지 생각이 미치면 두려움과 공포에 젖어 하늘로 치솟던 기운도 순식간에 풀이 꺾여 땅바닥에 내꽂혔다.
아신왕이 이사품왕에게 말했다.
“이름 그대로 미친개에 불과한 광개[狂犬], 광개토를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소.”
“하지만 그는 전쟁에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동북아의 패자요.”
“난 광개토와 4번을 싸웠소. 그런데 맨처음 광개토가 비겁하게 기습해 석현성과 관미성을 빼앗긴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긴 싸움이나 마찬가지였소.”
아신왕은 고구려와의 4번의 전쟁, 관미성 전투, 관미성 수복 전투, 수곡성 전투, 패강 전투에서 모두 패했다. 하지만 고구려군의 선제 기습공격을 당해 한강 이북의 석현성과 관미성을 잃은 첫 번 째 전투를 제외하고 나머지 전투에서는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모두 백제군이 아리수 이북으로 적진 영토 깊숙이 쳐들어간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관미성 수복 전투에서는 백제군이 석현성과 관미성을 포위해 공격했으나 뒤에 보급로가 충분치 못해 승리를 눈앞에 두고 통한의 후퇴를 해야 했고, 세 번째 전투에서는 수곡성에서 패퇴하기는 했지만 백제군의 용맹에 놀란 광개토왕이 평양 남쪽 지역에 일곱 개의 성을 쌓고 나오지를 않았다. 네 번째는 진무 장군이 이끄는 백제군이 한강과 송악을 넘어 평양을 향해 곧장 진격하려 했으나 광개토왕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와 패수에서 진무를 물리쳤다. 광개토왕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아신왕은 즉시 군대를 이끌고 송악산을 넘어 청목령까지 나아갔으나 때는 겨울이라 큰 눈이 내려 눈물을 삼키며 한산성으로 회군했던 것이다. 먼저 선공을 하고 후퇴를 했을지언정 패배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사품왕이 술잔을 들이켜며 백제왕 아신을 보며 말했다.
“저는 백절불굴의 정신을 가진 아신대왕을 존경합니다. 하지만 제가 고구려의 개가 된 내물을 치면 미친 개 광개토는 반드시 내물에게 구원군을 보낼 터, 솔직히 말하면 한입에 꿀꺽 삼킨 신라 땅을 다시 토해 내는 깨구락지 꼴이 될까 두렵소이다.”
“이사품왕, 염려 마시오. 한강에 백제군 최정예 병력 3만(398년 아신왕은 다섯 번째 고구려와 전쟁을 하기 위해 한강 남쪽에서 대규모로 군대를 사열했다. 399년 진무를 병관좌평, 사두를 좌장으로 임명하고 한강 이북에 북진의 교두보인 쌍현성을 쌓았다. 마침내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한산 북쪽의 책성에 병력을 집결시켰으나 그날 밤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지자 이를 불길하게 여긴 아신왕은 공격을 중지시켰다. 무리하게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대규모의 징발과 잇따른 군역으로 수많은 백제사람들이 신라로 도망가 백제의 호구수가 급격히 줄자 아신왕은 가야왕과 왜왕과 연합해 고구려 대신 신라를 먼저 치기로 전략을 바꾸었다.)을 배치해 놓아 광개토가 아무리 미친개라 하더라도 내려올 수 없을 것이오. 더욱이 내가 올 초에 연나라 모용(고구려의 숙적, 후연의 모용성을 말함)에게 사신을 보내 군사동맹을 깡풀처럼 단단히 맺어 놓았소. 만약 고구려 병사가 신라에 대규모 구원병을 보내면 곧바로 배후에서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을 치기로 철석같은 금석맹약을 했소이다.”
“광개토왕이 남하하면 연나라 모용이 국내성을 친다! 그렇게까지나 치밀하게 준비를 했단 말이오?”
“그렇소이다.”
아신왕이 껄껄 웃으며 탁자 위에 놓인 술잔을 들며 말했다.
“자, 그러니 염려 말고 술이나 마음껏 듭시다.”
아신왕의 건배 제의에 이사품 왕도 함께 술잔을 들며 말했다.
“이건 신라 술입니다. 왕도 못되는 마립간 내물이 고구려 광개토왕에게 진상품으로 올리는 향온주라는 술인데 맛과 향이 기가 막힙니다.”
향온주는 녹두와 누룩으로 빚어 밑술을 만든 뒤 열두 번이나 덧술을 쳐서 만든 것으로 맛과 향이 진할 뿐 아니라 도수가 높아 뒤끝이 깨끗했다.
아신왕은 이사품왕과 술잔을 부딪친 후 술잔을 뒤집었다. 순하면서도 잘 숙성된 두터운 맛이 혀끝에서 구르듯 부드럽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데 목젖을 스치며 코로 전달되는 청향이 은근하면서도 알싸한 게 마실수록 술맛이 흐뭇했다.
아신왕이 말했다.
“야, 맛과 향과 빛깔이 최고야. 이 향온주는 내가 마셔본 술중에서 기억될 만한 명주요.”
“대왕께선 술맛을 제대로 아시는군요.”
“술 빛깔의 청탁을 불문하고 말술을 통째로 마신다는 술고래인 미친개 광개는 평생 가도 이 맛을 모를 거야.”
“암요. 이번 전쟁이 끝나면 신라 내물은 광개토가 아니라 백제의 아신대왕에게 이 술을 을 진상품으로 바칠 것입니다.”
이사품왕이 아신왕에게 아부성 발언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 아신왕이 한 마디 뼈 있는 말을 했다.
“이번 전쟁으로 금관가야는 신라라는 막대한 땅을 전리품으로 얻소이다. 그렇다면 남하하는 고구려의 군대를 막아주는 우리 백제의 전리품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오?”
“하, 그거야...... 제가 바로 아신대왕의 아우가 되는 것 아닙니까. 아우의 것이 바로 형님 것인데 무엇을 더 원하십니까?”
“아우, 지금까지는 분명하게 짚어 오시다가 전리품에 와서는 두루뭉술하게 말씀하시네. 하지만 알겠소이다, 나도 알아서 작은 전리품이라도 챙길 것은 챙겨야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의 아우로서 형제국 관계만 분명히 한다면야 피차에 그것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소. 하하하.”
뒤웅박을 찬 승냥이 같은 아신왕은 속셈이 있었다. 그러나 이사품왕에게 당장은 전리품에 관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금관가야와 왜로 하여금 신라를 치게 하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아신왕이 술잔을 높이 들었다.
“대 신라 전쟁 승리를 위하여 건배합시다. 건배!”
“건배!”
둘은 호쾌하게 잔을 비웠다.
아신왕은 광개토대왕보다 나이는 두 살 많지만 왕위에는 한 해 늦게 올랐다. 그는 392년 즉위 이후 아리수를 경계로 하여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전투를 치르는 데 그의 일생을 보냈다. 마침내 백제의 아신왕과 금관가야의 이사품왕은 지리산 서쪽 가야국인 상다리에서 만나 올해 4월 신라를 치기로 맹약했다.
이사품왕과 헤어진 아신왕은 다시 백제의 수도인 한성으로 돌아왔다. 아신왕은 병관좌평 진무와 함께 북진의 교두보인 쌍현성 망루에 올라 고구려 진영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진무의 오른쪽 팔뚝 토시 위에는 해동청 보라매가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아신왕이 보라매를 보며 말했다.
“꿩을 한 마리 잡아볼 텐가?”
“좋습니다.”
진무는 왕이 매사냥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도 매사냥을 배워 지금은 왕의 실력을 능가하는 매사냥꾼이 되었다.
“저기 고구려 진영 앞 솔숲으로 날려보게.”
“예.”
진무가 팔을 들어 날리자 보라매는 날개를 펼치고 빼깃이에 매단 방울을 흔들며 하늘로 솟구쳐 날았다. 보라매는 파란 하늘을 한 바퀴 휘돌더니 쏜살같이 직강하여 꿩을 덮쳤다. 그러자 상처를 입은 꿩이 피를 흘리며 하얀 눈밭을 퍼더덕거리며 날아다니자 이를 보던 고구려 병사들이 꿩을 잡으려고 떼로 뛰쳐나와 콩칠팔칠 뛰어다니며 엎어지고 덮어지면서 간신히 꿩을 나꿔채갔다. 진무가 매피리를 불자 보라매는 다시 망루로 날아와 진무의 곰 가죽 토시 위에 앉았다.
아신왕이 꿩을 잡은 보라매가 대견한 듯 쳐다보다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다.
“진무장군. 가야가 신라를 치면 고구려군이 밀고 내려올 것 같은가?”
진무는 눈이 밝고 침착하고 지략이 많아 아신왕이 전군을 지휘하는 병관좌평으로 삼았다.
“밀고 내려오기는 오되 우리와 대치하고 있는 저기 병사들은 아닙니다.”
“그 근거가 무엇인가?”
“지금 우리와 대치하고 있는 저기 보이는 고구려 군영은 모두 오합지졸들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방금 보라매가 꿩을 잡았을 때 병사들이 동네 아이들처럼 떼로 몰려나온 것은 조련이 되지 않은 병사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움직임이나 걸음걸이를 봐도 군인의 절도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마구잡이로 머리 숫자를 채운 농사꾼이나 노비 같습니다. 들고 있는 무기들도 형편없고요.”
“그러면 고구려 정병들은 어디 있나?”
“아마 후방 7성에 집결해 있겠지요. 결국 고구려 정예 보기군은 내려오긴 하되 우리가 지키고 있는 아리수 전선을 피해 동해안으로 내려올 것입니다.”
아신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무의 말에 동의했다.
“고구려 구원병이 지체 없이 신라로 달려가려면 동해안밖에 없지. 그럼 우리 군은 어떡해야 하는가.”
“고구려군이 움직일 때 우리도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동해안으로 가서 같이 싸우자는 뜻인가?”
“아닙니다. 강군인 고구려군과 맞서지 말고 고구려군의 약한 고리인 대가야와 옛 마한 땅 가야6국을 쳐서 가야의 일부를 전리품으로 먹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명분도 얻고 실리도 얻는 것입니다.”
진무는 팔뚝에 앉은 매의 눈같이 날카로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지금 대가야는 고구려 대장군 고상무가 숙청되어 없는데다가 금관가야에게 맹주자리마저 빼앗겨 겨우 성산가야 다라가야와 함께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더욱이 대가야는 고구려 질자인 쥐방울만한 꺽감이라는 하령왕의 아들이 귀환한 뒤로 박지 집사파와 후누파로 나뉘어 내분까지 일고 있어 약간만 충격을 가해도 담벼락이 휘청 넘어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신왕이 진무장군에게 은근히 떠보며 말했다.
“나는 백제군을 동원해 고구려의 남하를 저지하겠다고 이사품왕과 철석같이 약조를 맺고 왔다네. 대가야를 쳐서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은 약조를 어기고 이사품왕을 배신하는 것 아닌가?”
“대왕마마, 국가 간 약조라는 것은 힘이 강한 쪽이 힘이 약한 쪽에게 언제든지 어겨도 좋다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눈엣가시인 박지를 제거하고 대가야를 먹는 것과 소백산맥 서쪽 옛 마한 땅은 원래 우리 백제의 땅으로서 다시 돌려받는 것이기에 이사품왕으로서도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것입니다.”
“오호, 역시 진무장군이야.”
아신왕은 진무장군이 믿음직스러웠다.
그러나 장군은 장군이었고 왕은 아니었다. 장군의 전술과 왕의 전략은 다르다. 장군은 전투에서 이겨서 대가야라는 전리품을 얻어야 하고 왕은 대가야에서 더 나아가 큰 틀에서 전략적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 즉, 신라에 들어온 고구려의 뒤통수를 까야 한다. 그것만이 꿈에 그리던 근초고왕의 뜻을 이어 백제 고구려 신라 가야 4국통일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아신왕은 야망이 있었다. 그는 별궁에서 태어났을 때 밤에 신비로운 빛이 나타나 그의 방을 밝게 비추었다. 아신왕은 그 빛이 백제를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번성시킨 근초고왕의 빛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그는 근초고왕을 존경하고 사숙하였으며 반드시 근초고왕이 정복했던 대제국의 고토를 회복하리라고 다짐했다. 그렇기 때문에 광개토와 끊임없이 고토회복의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아신왕의 부왕은 백제에서 최초로 불교를 공인한 침류왕이었다. 침류왕은 죽기 한 해 전인 384년, 동진에서 온 서역승 마라난타를 궁궐 안에 모시고 예경했고, 한산주에 불사를 창건하고 승려 열 명에게 도첩을 주었다.
침류왕은 죽기 전 어린 태자 아신을 염려해 침류왕의 동생인 진사에게 아신왕의 보필을 부탁했다. 하지만 그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 되고 말았다. 침류왕이 죽자 숙부 진사는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고 조카 아신을 나라 밖인 대가야로 쫓아버렸다. 아신은 대가야의 회령왕 밑에서 무술을 연마하며 와신상담했다. 진사왕은 초기에는 국정을 개혁하고 고구려군과 싸워 이겨 백제의 옛고토를 회복하며 명군주로 백성의 추앙을 받았다. 그러나 후기로 갈수록 여색과 안일에 빠져 정사를 멀리하고 고구려에게 기존의 백제 땅마저 빼앗겨버렸다. 말년에는 용병술의 귀재인 광개토왕을 두려워하여 아예 그와의 전투는 무조건 회피하며 술독에 빠져 살았다.
진사왕 8년(392년), 아신은 숙부 진사왕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참패하고 돌아와 구원의 행궁에서 술과 여색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호시탐탐 숙부를 노리고 있던 아신은 지금이야말로 왕권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신은 외숙부 진무와 이복동생 부여홍과 손잡고 구원 행궁을 공격해 진사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던 것이다. 이후 아신왕은 진무를 병관좌평에 부여홍을 내신좌평에 임명하고 근초고왕이 정복했던 대제국의 고토를 회복하려는데 전념했으나 하필이면 광개토라는 미친 개 같은 대물을 만나 지금까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으나 이제야말로 그 뜻을 이룰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은 것이다.
아신왕이 진무 장군과 함께 망루에서 내려오려는데 내신좌평 부여홍이 급히 망루로 올라와 보고했다.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가야군이 왜의 용병과 함께 신라로 쳐들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아신왕은 전쟁발발의 소식을 듣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번 전쟁은 가야와 신라의 싸움이 아니라 나와 미친개 광개토와의 싸움이다. 한반도의 사국통일을 누가 먼저 이루느냐 하는 건곤일척의 전쟁이다. 만약 신라 땅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고구려군만 잡는다면 내가 사국통일을 이루는 최초의 군주가 될 것이다. 하지만 먼저 작은 전리품은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아신왕은 병관좌평 진무장군에게 군사 3만을 주어 즉각 대가야를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사두장군에게는 남해안 국경수비대를 동원하여 상다리를 비롯한 옛 마한 땅 가야6국을 정복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백제의 작은 전리품은 이사품왕이 비워놓고 떠난 가야땅의 일부이었다.
금관가야의 왕 이사품은 대장군 김품지에게 출전명령을 내렸다.
“고구려의 개가 된 내물 마립간을 쳐서 신라 땅을 접수하라!”
“예, 마마.”
김품지는 용기도 있고 명민했으나 눈동자가 혼탁했다. 사람을 살피는 데는 눈동자를 보느니만 한 것이 없다. 가슴 속이 바르면 눈동자가 밝고 그렇지 못하면 눈동자가 어둡다. 젊었을 때는 그의 패기에 의존해 난관을 뚫고 나아갔으나 나이가 들자 그의 총명과 판단이 때로는 길을 잃었다. 하지만 이사품왕은 김품지를 믿었다. 김품지는 금관가야에서 철기군과 종발성에 집결한 왜의 용병을 거느리고 낙동강을 타고 삽라국(경남 양산)으로 쳐들어갔다. 금관가야의 문장인 바람개비 깃발과 왕실의 상징인 쌍어문 깃발을 낙동강 바람에 드높이 휘날렸다. 왜의 용병들이 왜검을 들고 진격했으나 신라의 최전방 정예군인 삽라군의 저항이 만만히 않았다. 삽라군의 강력한 쇠뇌와 창의 공격으로 앞장선 왜군들이 짚단처럼 쓰러졌다. 김품지는 살아남은 병사들을 모아 간신히 대열을 갖춰 낙동강을 등에 엎고 배수진을 쳤다.
승기를 잡은 삽라의 기마병들이 가야군을 일거에 낙동강으로 밀어 넣기 위해 파도처럼 밀려왔다.
“가야놈들을 낙동강에 수장시켜라!”
하지만 백전노장의 김품지는 결코 녹녹한 장수가 아니었다.
배후와 좌우에서 가야 철기군과 창기병들이 삽라군의 등과 옆구리를 찌르며 들어왔다. 미리 김품지와 군호를 맞춘 미리미동국(밀양) 병사와 독로군(동래) 병사들이었다. 배수진을 친 가야군들도 좌우로 갈라졌다. 삽라군의 등위를 향해 화살이 빗발치듯 쏟아졌고, 가야의 철기군이 창을 들고 해일처럼 삽라군을 덮쳤다. 삽라군들은 미처 돌아서서 싸울 틈도 없이 그대로 낙동강으로 뛰어들어 물에 휩쓸리고 말았다.
첫 전투에서 삽라국의 병사를 격파하고 대승한 가야의 철기군들은 파죽지세로 신라의 수도 서라벌을 향해 치고 올라갔다.
내물 마립간은 신라장군 김계림을 다급하게 불렀다.
“계림장군, 이를 어쩌면 좋소? 믿었던 삽라국의 군대가 짚단처럼 무너지고 가야군와 왜군이 턱밑에까지 당도했소이다. 400년 신라사직이 풍전등화에 놓여 있소.”
내물 마립간은 신라의 호족세력을 혁파하여 중앙집권제를 강화한 내치에 성공한 인물이었다. 박석김으로 돌아가는 왕위를 오로지 경주 김씨만의 세습제로 만든 최초의 왕이자 왜구의 침입에도 지혜롭게 대처한 왕이기도 했다. 364년 4월 왜의 군사가 대거 침입했다는 소리를 듣자 왕은 풀로 허수아비 수천 개를 만들어 병사처럼 옷을 입히고 토함산 아래 줄을 세워놓는 동시에 병사 1천을 부현(斧峴)의 동쪽 들판에 숨겨놓았다. 토함산에 신라군사가 많다고 믿은 왜인은 곧바로 들판으로 직진해 왔다. 들판에 숨어 있던 신라 병사들의 뜻하지 않은 공격을 받은 왜병들은 대패하여 도주하였고 이들을 추격하여 거의 모든 왜군들을 죽였다. 그러나 이후 끊임없는 백제와 왜, 가야의 외침(外侵)으로 군사대국 고구려에 사대(事大)하여 고구려의 똥과 방귀도 향기롭다고 하니 나라가 온전하게 남아나질 못했다. 내물 마립간은 재위 초기에는 왜에 대해 허수아비 군사전술로 성공하였으나 말년에는 고구려의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말아 판단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마마, 염려하지 마소서. 가야의 이번 전쟁 목적은 우시산국의 달천 철장을 차지하려는데 있습니다. 틀림없이 곰마을(웅촌)을 거쳐 태화강으로 올라올 것입니다. 그러려면 곰마을에서 태화강으로 올라오는 유일한 관문인 산치고개를 반드시 넘어올 터, 산치고개 좌우에 우시산국 병사들을 매복시켰다가 적들이 올라와 영마루를 넘을 때 포위 공격하여 전멸시키겠습니다.”
계림장군이 계책을 내놓자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던 마립간의 얼굴이 다소 밝아지며 김계림의 두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
“좋은 계책이오. 오로지 계림장군만 믿겠소.”
김계림은 신라 6부에서 차출한 최정예 철기군을 이끌고 우시산국으로 내려와 우시산국 병사와 함께 산치고개 좌우에 병력을 매복시켰다.
김품지 장군은 계림장군이 신라의 최정예군을 이끌고 금성에서 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품지는 신라의 철기군이 산치고개에 도착하기 전에 빨리 관문인 산치고개를 넘고자 부지런히 병사들을 독려해 곰마을까지 진군했다. 곰마을에서 김품지 장군은 정찰병을 보내 산치고개에 매복병이 있는지를 정찰하게 했다.
정찰병이 보고했다.
“우리 군진이 더 빨리 도착했습니다. 산치관문에는 신라병사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신라군은 이제야 태화강을 건너고 있답니다.”
산치고개 일대에 납작하게 엎드린 채 매복한 신라군사들이 영마루로 바쁘게 올라오는 김품지와 가야병사들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라의 김품지 장군은 마갑을 두른 백마를 타고 번쩍이는 환두대도를 높이 쳐들고 산치령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화랑 월풍이 김계림 장군에게 말했다.
“장군님, 저놈, 김품지의 목은 제가 베겠습니다.”
“왜인가?”
“어제 가야군에게 목이 베인 삽라국의 장수가 저의 동복 형입니다. 저놈을 죽여 가문의 원수를 갚고야 말겠습니다.”
월풍이 이를 부드득부드득 갈며 말했다. 동복 형은 아버지는 다르지만 어머니가 같은 형제간이었다.
김계림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월풍, 고작 동복 형이란 말인가. 어제 김품지에게 효수된 삽라의 주수는 나의 친형이네. 놈들이 우리 형의 목을 장대에 꿰어 성문에 걸어 두고 짐승 같은 모욕을 가했지. 김품지의 목은 반드시 내가 베겠네.”
김계림의 눈가에 이슬이 잔잔히 맺혀 있었다. 김계림 장군은 원래 원수 갚는 일에 목숨을 걸고 보복에 인생을 거는 속 좁은 인간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인간이나 세상의 법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기 때문이다. 성군 요순에도 실수가 있고 폭군 걸주에도 취할 점이 있으며, 멸망한 나라의 법에도 따를 점이 있고, 흥왕하는 나라의 법에도 비난받을 만한 점이 있는 법이다. 따라서 오히려 용서가 장부의 큰 길이라는 걸 아는 인간이었다. 삽라의 주수 정도는 최고의 적장이다. 적어도 현의 현령이라도 목을 베어 묻어주거늘 별 저항도 하지 않은 태수급의 주수를 잡아 효수하여 짐승 같은 모욕을 가하는 것은 전쟁의 법이 아니었다. 하늘이 도와 김품지를 잡으면 직접 자신이 참수를 해서 땅에 고이 묻어줄 것이다.
화랑 월풍은 계림장군의 말에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월풍은 여전히 분을 삼키지 못하며 말했다.
“가야 놈들은 정말 간사한 놈들입니다. 종자도 말도 다른 간악한 왜놈과는 찰떡같이 손을 잡은 반면, 같은 김씨 종친이고 골육지친인 우리 신라와는 늘 배척하면서 전쟁을 하려고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월풍의 말에 계림장군이 나무랐다.
“월풍, 가야가 적이지만 그런 말 하지 말게! 애당초 가야 김수로왕과 우리 신라 김알지왕은 흉노왕자 김일제의 8세손으로 한 형제인 건 사실이네. 하지만 가야가 먼저 왜와 손잡은 것은 아닐세.”
중국에서 같은 시기에 내려온 두 형제는 각각 금관(김해)과 금성(경주)로 들어가 터를 잡고 가야과 신라를 건국하고 서로 돕고 사이좋게 지냈으나 어느 순간부터 둘이 서로 해상주도권과 철산지, 곡창지대를 차지하려고 끊임없이 분쟁과 전쟁을 벌였다. 이 와중에 왜가 교묘히 끼어들어 둘 사이를 이간질해서 가랑이 사이를 벌인 것이지 가야가 먼저 왜와 손잡은 것은 아닌 것이다.
김계림이 월풍에게 말했다.
“왜놈들만 준동하지 않아도 한반도 남부가 덜 시끄러울 텐데. 비록 오래 전의 일이지만 우리 신라가 절멸 위기에 놓인 가야를 왜로부터 구해준 일도 있었지.”
포상팔국의 난 때 해상 8개국이 연합해 금관가야를 공격했다. 백제와 왜까지 포함한 포상팔국군은 가야군사 5천명을 포로로 잡고 금관가야를 점령했다. 금관가야왕은 왕궁을 버리고 신라 금성까지 도망을 와 도움을 요청했다. 신라의 나해 이사금왕은 6부의 군대를 보내 포상팔국군을 쳐서 금관가야를 되찾아 주었지만 이들 8국의 난을 완전히 진압하는데 무려 6년의 세월이 걸렸다.
월풍이 계림장군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속담은 이걸 두고 말합니다. 골육지친의 정과 혈맹의 은혜도 모르고 저 가야놈들을 지금 당장 제가 찢어발기겠습니다.”
계림장군은 흥분한 월풍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전쟁은 사적인 보복과 분노로 하는 것이 아니야. 촉의 유비가 오나라 손권에 의해 관우가 죽자 사감으로 오나라와의 동맹을 깨고 오히려 급히 오를 응징하려다가 되레 망한 사실을 모르는가. 일단 가야군의 선두를 지나보내고 놈들의 후미가 산치고개에 완전히 들어왔을 때 공격한다. 알겠는가?
“예!”
월풍은 분노를 억누르며 대답했다.
삽라군을 낙동강에 수장시키고 승리감에 도취한 김품지는 빨리 산치고개를 넘어 태화강을 건너 우시산국의 달천 철장을 점령하고 싶었다.
김품지는 막 전투를 치러 피곤한 가야군사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독촉했다.
“뭣들 하느냐. 신라 졸개들이 산치고개에 도착하기 전에 빨리 이 영마루를 넘어야 한다. 빨리 빨리 행군하라!”
가야군의 마지막 후미대열마저 산치고개로 완전히 접어들자 백마를 탄 계림장군이 칼을 빼어들고 소리쳤다.
“공격하라! 가야놈들과 그 졸개인 왜놈들을 모조리 진멸하라!”
산치고개 양 언덕에 깊숙이 매복해 있던 신라 병사들이 계림장군의 신호에 맞춰 일거에 뛰쳐나와 활을 쏘고 창으로 찔러댔다. 장군의 독촉에 빠른 걸음으로 산치고개를 오르다 지친 가야병사들은 철갑옷을 벗어 말에 걸치고 무기마저 수레에 실은 형국이었다. 무방비상태로 불시에 매복공격을 당한 가야군사들은 물벼락을 맞은 개미행렬처럼 맞아 죽거나 뿔뿔이 흩어졌다.
검은 가라말을 탄 계림장군은 용천검을 빼어들고 백마를 탄 김품지 장군을 향해 달려 나갔다. 용천검은 달천 철장에서 백 번을 벼린 강철보검이다. 칼날 위로 머리카락이 떨어져도 잘라질 정도로 예리하지만 쇠막대기와 부딪쳐도 이가 상하지 않는 강한 검신이다.
백마를 탄 김품지 장군은 잠시 당황했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아뿔사, 적의 매복에 걸렸다. 다시 곰마을로 후퇴하라!”
김품지 장군은 긴 사모창을 꼬나들고 달려오는 계림장군의 목을 꿰려 덤벼들었다. 장 구척인 이 사모창으로 삽라국 주수의 목을 단번에 산적처럼 꿰어버렸던 게 엊그제 일이다. 달려오던 계림장군이 아슬아슬하게 김품지의 창끝을 피하며 용천검으로 내려치자 사모창의 목이 뎅겅 날아갔다. 사모창을 버린 김품지는 이번엔 무거운 철퇴를 들고 계림장군의 머리 위로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철퇴는 방패와 갑옷과 뼈를 통째로 부숴버리는 위력적인 무기였다. 계림장군의 용천검이 허공에 번뜩이자 오히려 철퇴 줄이 툭 끊어졌다. 허공으로 날아간 철퇴는 가야군의 머리통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렸다. 무기를 잃은 김품지는 분한 표정을 짓더니 말머리를 돌려 고개 아래 곰마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형을 죽인 놈! 넌 이제 독 안에 든 쥐다!”
계림장군은 철맥궁에 쇠냇대를 장착해 턱밑까지 당겼다. 천보나 나가는 철맥궁은 계림장군에게 가보로 대물림된 것이다. 김품지의 목을 겨냥한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계림장군의 철맥궁은 가문의 숨결과 기상이 서려 있는 활이었다. 계림장군은 철맥궁에 쇠냇대를 장착해 활시위를 힘껏 당겨 쏘았다.
“가문의 원수! 죽어랏!”
쉬잉. 시위를 떠난 화살은 날카로운 파공성을 내며 계림장군의 쇠비늘 갑옷을 뚫고 심장을 관통해 등 뒤로 빠져나왔다. 김품지는 말 위에서 붉은 동백꽃잎처럼 툭 떨어졌다. 계림장군은 칼로 김품지의 목을 잘라 높이 쳐들었다. 적장이 쓰러지자 신라군이 만세를 부르며 기세를 올렸다. 신라군들은 산치고개에 가야군을 몰아넣고 활과 창과 칼로 섬멸했다. 일부 살아난 가야군들은 산과 계곡으로 뿔뿔이 흩어져 패잔병이 되었다.
신라군들은 깃발과 무기를 흔들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계림장군 만세!”
“신라만세!”
월풍이 계림장군에게 말했다.
“장군, 쇠뿔도 단 김에 빼라고 이대로 낙동강까지 밀어붙입시다. 잃었던 삽라 땅을 되찾아야지 않겠습니까?”
“전략가는 지지(知止, 멈추는 것을 아는 것)를 알아야 하네. 삽라 땅에는 이미 가야군이 또아리 틀고 방어벽을 치고 있을 터, 우리 지친 병력으로 쳐내기 힘들 것이다. 일단 곰마을까지 내려가서 숨고르기를 좀 하자구. 병사들도 쉬어야 하고.”
“알겠습니다.”
계림장군은 김품지 장군의 시신을 산치고개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신라군들이 개선의 노래를 부르며 산치고개를 내려가는데 영마루에서 병사 하나가 급하게 달려 내려왔다. 서라벌에서 온 전령이었다.
전령은 계림장군에게 읍하고 숨을 할딱이며 말했다.
“큰일 났습니다.”
“무슨 큰일이 났다는 게냐?”
“서라벌이 적군에 점령되고 왕은 포로가 되셨습니다.”
“뭣이? 우리 대왕께서 적의 포로가 되셨다고?”
“그렇습니다.”
적은 동해안 동해구에 상륙해 동악을 넘어 서라벌로 쳐들어와 왕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여기로 오는 길에 적들이 배를 타고 태화강으로 들어와 달천 철장을 점령한 것도 보았습니다.”
“달천까지 적들이 점령했다? 그럼, 우리의 배후지는 모두 적들의 땅이 된 게 아닌가?”
“그렇습니다.”
능구렁이 이사품왕은 애당초 세 갈래 길로 신라를 전면 공격했다. 낙동강 삽라 방면, 동해 태화강 방면, 동해 동해구 방면이었다. 사실상 김품지 장군의 삽라 방면군은 전쟁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을 뿐 버리는 골패짝이었다. 낙동강 삽라 전선에서 계림장군이 승리한 것을 제외하고 모든 전선에서 신라군은 무참하게 무너진 것이었고 금관가야의 대승리였다.
광개토대왕은 아도화상과 함께 영명사에 머물고 있었다. 영명사는 태왕이 즉위와 동시에 평양에 불사를 시작한 9개의 절 중 가장 위용이 크고 아름다운 절이었다. 좌우로 펼쳐진 기와지붕들이 황새처럼 날개를 쭉 펴고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광개토대왕은 신녀들의 점술보다 스님들의 법문과 강론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광개토대왕은 청년 담덕일 때부터 마음이 갈급할 때마다 고구려의 고승, 순도를 찾아갔다. 순도는 소수림왕 때 전진의 부견이 사신으로 파견한 승려였다. 순도는 고구려에 불상과 경전을 들고 와 자비와 불살생, 평화의 도를 전했다. 순도는 고구려에 귀화하여 국내성에 초문사를 짓고 불교의 초전 전파에 힘썼으며 소수림왕은 이에 감복 받아 불교를 공인하게 되었다. 광개토대왕이 태자 담덕인 시절, 처음 노승 순도를 찾아 초문사로 갔을 때는 한창 팔팔한 나이였다.
순도화상은 태자를 한참 바라보더니 눈을 감고 염주알을 굴리며 장탄식을 했다.
“아, 눈빛에는 칼날이 번뜩이고, 가슴에는 탐진치(貪瞋痴)의 욕망이 들끓으며, 발에는 아수라로 가는 길이 열려 있구나.”
젊은 담덕은 순도의 말을 듣자마자 매우 기분이 나빴다.
“감히, 태자인 나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무엄하구나. 고구려 무장들은 당신을 전진에서 파견한 세작이라고 말하고들 있네. 전쟁에 능하고 무예를 숭상하는 고구려에 문약한 노예사상인 불교를 퍼뜨려 호전적인 상무정신을 무장해제하고 있다고 말이야.”
“태자마마, 불도에는 계급이 없으며 부처님 앞에는 만인이 평등합니다. 불살생의 자비만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 영혼을 맑게 해 마음의 안식을 누리게 합니다.”
담덕은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순도의 절방문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대신 비슷한 시기에 동진에서 파견한 아도화상이 창건한 이불란사 발걸음을 옮겼다.
아도화상은 담덕을 보자마자 예언을 하듯 말했다.
“태자를 보니 인도의 전륜성왕 아육왕의 환생을 보는 듯합니다. 반드시 한반도를 통일하고 불법을 크게 흥왕케 할 대군주가 되실 분입니다.”
담덕은 아도화상의 말에 기분이 좋아 자주 이불란사를 찾았다. 아도화상은 한반도 불교의 전파에 정력적이고 정치적 야망도 있었다. 그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사국을 두루 다니며 불도를 전파하면서 각국의 정보를 수집하여 담덕에게 전달했다. 광개토대왕은 즉위한 이듬해에 아도화상을 고구려의 왕사로 삼음과 동시에 평양에 9개의 절을 창건하고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게 했다.
말하자면 순도는 정치에 비판적인 이판승이고, 아도는 정치에 긍정적인 사판승이었다. 하지만 태왕은 피비린내 나는 전투 현장에서 숱한 주검과 살생의 업보를 보면서 점점 그의 발걸음은 속세와 먼 청정한 이판승이 있는 초문사로 향했고, 그의 영혼은 순도화상의 순수한 불법 아래 무릎을 꿇게 되었다.
그러나 전쟁과 한반도 4국통일을 앞두고 있는 지금, 아도화상과 평양 9사를 순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왕이 있는 영명사 강학소 대청마루에는 신라에서 군사적 도움을 요청하는 파발이 잇달아 올라왔다. 가야와 왜의 침략으로부터 구해달라는 신라사신들의 연이은 요청에도 태왕은 아도의 삼론종 강론을 듣다가 고개만 끄덕일 뿐 행동은 느긋했다.
‘아직 사신들의 등급을 보니 발품이 급하지 않은 모양이군.’
골품제로 따지는 신라다. 5,6두품이 와서 뭘 보내달라고 하니 보내주겠는가.
‘해우소가 그다지 급하지 않은 모양인가 보군. 실성군이 맨발로 뛰어와 군사를 요청할 때 비로소 짐의 구원병은 내려 보낼 것이다.’
그때 실성군이 실성을 한 듯 맨발로 강학소 대청마루로 뛰어들어왔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