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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11.23 10:38
2-8. 해방일지
/양선규
해방일지(解放日誌)가 유행입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JTBC, 2022)가 뭇 여성들의 심금을 울리더니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 창비, 2022)가 나와서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습니다. 두 작품 다 건성건성 봤습니다만 참 좋은 해방일지들이었습니다. 작품을 보다가 부모님, 형제들 생각에 코끝이 찡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어쨌든 해방이라는 말을 들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그 단어를 많이 들었습니다. “해방되기 전에는...”, “해방이 딱 되니까...”로 시작하는 신세한탄 겸 지나간 한 시절의 무용담을 많이 들었습니다. 주된 요지는 “우리는 해방과 함께 몰락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어릴 때에는 해방이라는 말이 별로 좋은 어감을 가진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만 없었으면 천형(天刑)과 같은 가난을 겪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나중에서야 그것이 우리 집안의 특별한 경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북에서 친일 반동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의 운명을 한순간 갈라놓은 것이 바로 해방이었던 것입니다.
언젠가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신세한탄 중에서도 아버지는 항상 객관적 화자의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해방 그 자체도, 토지개혁을 하고 친일세력을 숙청한 자들도, 아버지는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 끝에는 항상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말로 가난을 타고난 어린 자식의 불평지기를 다독이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문학을 하게 되면서 해방이란 단어를 애용하게 되었습니다. 문학은 인간해방을 위해 기여하여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젊어서 책 한 권을 내게 되었는데, 그 제목을 《문학, 상상력, 해방》으로 정했습니다. 그때는 신간이 나오면 총장실로 찾아가서 인사를 하는 게 관례였는데 총장님이 제 책 제목을 보더니 갑자기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씀이, “거 참, 문학한다는 사람들은...”이었습니다. 평소에 젊은 사람들과 소통이 원만하시던 분이라 고개를 갸웃하며 나왔는데 나중에 선배 교수에게 그 연유를 들어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해방 통에 행불(行不)이 된 아버님 때문에 그러실 거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십분 이해가 되었습니다. 우리 작단(作壇)에서는 일찍부터 해방 통(6.25 전후)에 행불된 아버지를 소재로 한 걸출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문구, 김원일, 김성동, 이문열, 임철우 작가가 그 방면에서 좋은 작품을 남긴 작가로 기억됩니다. 모두 그 시절의 해방일지를 공들여 적은 작가들입니다.
어쨌거나 해방된 지 80년이 가까워지는 이즈음에 들어서 ‘해방일지’들이 독자(시청자)들의 열광적인 환대를 받고 있는 것은 참 반가운 현상입니다.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 중에 “왜 저기는?”이라는 의문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경제, 문학, 영화, 스포츠, 클래식 공연 예술, K-Pop 등이 전 세계를 압도하고 누비는 판국에 유독 한 군데만 ‘해방’이 안 되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정치판이 바로 그곳입니다. 제 주변에서는 “뉴스는 안 본다”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이전투구의 정치판 뉴스를 보면 공연히 짜증이 돋는다고 합니다. 독자(유권자)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권부의 독선적 권력행사와 오토 에로티시즘을 바탕으로 구태의연한 저항 이데올로기를 끝내 고집하는 야당을 보면 엄청난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정치가 누구를 위해야 하는지, 가히 오불관언 안하무인입니다. 권력을 두고 다투는 것은 정치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그 싸움이 본분을 망각하고 민신(民信)을 잃었을 때는 너나없이 다 죽는다는 게 공자님 말씀입니다. 부디 숙고하시어 해방하시기를 빕니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