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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3.01 10:56 수정일 : 2021.03.01 11:04
조선 시대 궁중 연향
/제민이
2년 전 국립국악원은 세종 즉위 600주년을 맞아 세종 시대의 회례연(會禮宴)을 복원하여 공연하였습니다. 회례연은 정월과 동짓날 임금과 신하가 참여하는 연향입니다. 현대에도 회례연과 비슷한 행사는 있습니다. 청와대와 정부는 새해 첫날에는 시무식, 12월 마지막 날에는 종무식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노래와 춤 그리고 술이 동반하지 않습니다. 반면 1433년(세종 15년) 세종실록은 회례연에 악사와 무용수 400여 명이 출연하였다고 기록합니다. 회례연이 잔치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회식처럼 먹고 마시기만 하는 자리는 아닙니다. 궁중의 연향에는 일정한 절차와 격식이 있으니 시무식과 회식을 합한 것입니다.
서울대 규장각 책임 연구원 김종수에 따르면 궁중 연향은 설행목적에 따라 회례연(會禮宴), 양로연(養老宴), 사객연(使客宴), 진연(進宴) 등으로 나뉘고, 참여자에 따라 외연(外宴)과 내연(內宴)으로 구분됩니다(1). 여기서 내외(內外)는 내외한다고 할 때처럼 ‘내’는 여자, ‘외’는 남자를 가리킵니다. 여자가 잔치의 주축이면 내연, 그리고 남자가 중심이면 외연입니다.
회례연은 조선 시대에 매년 정조(正朝)나 동지(冬至)에 임금이 군신(羣臣)의 노고를 치하(致賀)하기 위하여 행하는 연회(宴會)입니다. 여기에 왕세자(王世子) 및 문무백관(文武百官)이 모두 참석합니다. 이것은 외회례연 즉 외회연(外會宴)입니다. 외회연이 벌어지는 그 시간에 중궁 또한 내전에서 왕세자빈과 내외명부(內外命婦)들을 위한 회례연을 설연(設宴)합니다. 이것은 내회연(內會宴)입니다. 명부(命婦)는 국가로부터 작위를 받은 여인들의 통칭입니다. 명부(命婦)는 내명부(內命婦)와 외명부(外命婦)로 구분됩니다. 내명부는 궁중의 여자이며 외명부는 궁궐 밖의 여자입니다. 여관(女官) 즉 궁녀들은 빈(嬪), 귀인(貴人), 소의(昭儀), 숙의(淑儀) 등으로 품계가 나뉘었고, 왕족이나 종친의 아내나 어머니, 그리고 문관과 무관의 아내나 어머니들도 남편의 직위에 따라 정1품 정경부인(貞敬夫人)같은 봉호를 받았습니다. 봉호(封號)는 제왕(帝王)이 사여하는 칭호를 말합니다.
양로연(養老宴)은 노인에게 왕과 중궁이 해마다 8월에 베풀었던 베푸는 잔치입니다. 서울에서는 임금과 왕비가 대궐에서 베풀고, 지방에서는 수령이 베풀었는데, 한 날 한 시에 남녀를 구별하여 내외(內外)로 나누어서 설행하였습니다. 양로연도 참석자가 남자이면 양로외연, 여자이면 양로내연입니다.
사객연(使客宴)은 중국, 일본, 유구국의 사신에게 베푸는 연회입니다. 중국사신 아극돈(阿克敦, 1685-1756)은 1717년에서 1725년 사이에 총 네 차례에 걸쳐 조선에 사신으로 왔습니다. 그는 제4차 귀국 직후인 1725년(영조 1) 6월에, 조선의 각종 행사 절차 및 풍속, 풍경을 담아 20장짜리 화첩, 봉사도(奉使圖)을 완성하였습니다. 그 중 18폭이 사신연 무동정재도(使臣宴 舞童呈才圖)인데 대청에서 무동(舞童) 2 사람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진연(進宴)은 조선시대 전기에는 ‘잔칫상을 올리다’라는 의미로 쓰였으나, 후기에는 규모가 작은 예연(禮宴)을 뜻하는 용어로 확립되었다. 경국대전에 의정부 육조에서는 단오, 추석, 행행(行幸), 강무(講武), 세자빈 탄신에, 충훈부(忠勳府)에서는 4계절의 중간 달에, 종친부 의빈부(儀賓府)에서는 매년 두 번, 충익부에서 매년 한번 진연을 올린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2). 행행은 군주가 궁궐 외부로 거둥하는 일종의 의례이며, 강무는 왕의 친림 하에 실시하는 수렵대회입니다. 충헌부는 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이나 그 자손을 대우하기 위해 설치하였던 관청이며, 의빈부는 왕과 왕세자의 사위에 관한 일을 관장했던 관서입니다. 경국대전에 규정되지 않았지만 왕과 중궁, 대비의 탄신에 연향이 벌어졌고, 정월 초하루에 임금이 대비전에 진연을 올렸습니다.
기영회(耆英會)는 조선시대 예조(禮曹)의 주관으로 고급 관료나 공신으로 나이 많은 사람들을 임금이 초청하여 베푸는 일종의 양로연입니다. 선조조 기영회도(宣祖朝 耆英會圖)는 1585(선조18)년에 있었던 만70세 이상, 2품 이상의 관직을 지낸 원로 기신(耆臣) 7인의 기영회 장면이입니다. 대청 안에서 7인의 인사가 각자 상을 받고 앉았으며, 대청 중앙에 2명의 여기(女妓)가 춤추고 있습니다. 대청 안에 있는 여기는 16명인데, 그 중 2명은 중앙에서 춤을 추고, 2명은 술잔을 들고 권유하는 듯하고, 나머지 12명은 대청 안 탁자를 중심으로 6명씩 대칭으로 앉아 대기하고 있습니다. 뜰아래 왼편에는 청화백자에 술이 담겨 있고, 그 옆에 악공들이 횡으로 열을 지어 앉아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악기는 왼쪽부터 초적(草笛), 대금, 교방고, 당비파, 해금, 박, 대금, 거문고 또는 가야금, 장구, 장구, 피리입니다(3).
고려시대의 기로소((耆老所)는 2품 이상의 원로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면서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의결기관이었습니다. 조선 개국 이후, 기로소 모임에 태조가 참가하면서 사적 모임에서 공적 모임으로 성격이 변화되었습니다. 기로회에 정2품 실직을 가진 문관은 70세가 되지 않았더라도, 종 2품의 실직자는 70세 이상이어야 입소할 수 있었습니다. 임금도 일정한 나이가 되면 기로소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조선 숙종은 59세인 1719년에 기로소에 들어갔습니다. 입회 기념으로 숙종은 경희궁 편전인 경현당에서 친림하여 기로신들에게 석연(錫宴)을 베풀었습니다. 석연은 임금이 내려주는 잔치입니다. 이때 숙종이 은배(銀盃) 즉 은으로 만든 술잔을 하사하자 영의정 김창집이 은배를 가지고 기로소에 들어가서 연회를 계속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숙종은 음악과 주찬을 보내 연회를 열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바로 이 기로소에서의 연회를 그린 것이 기사사연도(耆社私宴圖)입니다.
그림은 술과 음악, 춤이 공존하는 화락한 연회 장면을 묘사합니다. 차양이 설치된 당내에 기로신들이 동서로 서로 마주 향해 앉았습니다. 설연관 자격으로 참가힌 행호조판서 송상기와 그로부터 조금 간격을 두고 기로신의 자제 5명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숙종이 내린 은배는 붉은 보자기에 싸여 북벽 가까이 놓여 있고, 화면 중앙 오른 편 섬돌 위에는 법주가 담긴 청화백자 항아리 두 동이 놓여 있습니다. 당내에서는 흑색 옷을 입은 2명의 무동이 춤추고 있으며, 마당에서 백황청적의 옷을 입은 무동 8명이 좌우로 4명씩 나뉘어 춤출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마당에서 홍색 도포에 흑화를 갖춘 악공의 연주에 맞춰, 청, 황, 홍, 백, 흑색 무복을 입은 무동 5명이 처용무를 공연합니다. 흥겨운 연회를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구경하고, 화면 아래 오른편에 노인 두 명이 마당에 뛰어들어 덩달아 춤을 춥니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는 조선 전기 신숙주(申叔舟)와 정척(鄭陟) 등이 오례의 예법과 절차 등을 그림을 곁들여 1474년(성종 5) 편찬한 책입니다. 오례는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군례(軍禮)·흉례(凶禮)입니다.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속편(續編)입니다. 『국조오례의』가 시대에 뒤쳐져 부적합한 부분이 생기자, 수정하고 보완해 1744년(영조 20)에 완성하였습니다. 『국조오례의』가 조선 전기의 의례를 대표하는 것이라면, 이 책은 조선 후기의 의례를 대표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연향의 절차는 국가 국조오례의와 국조속오례의에 실려 있습니다. 조선은 연향을 단순히 마시고 즐기는 놀이가 아니라, 국가 통치의 필수 요소로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종은 다음과 같이 전교(傳敎)합니다. “정조 회례연(正朝會禮宴)은 군신 상하가 연음(宴飮)하며 통정하는 것이라 지극히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에 내가 행할 만한 것이라 생각했다.”(4) 조선시대에 연향은 임금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던 것입니다.
(1)김종수. 조선시대 궁중연향과 여악 연구. 민속원. 2003. 개정판 1쇄. 42-44쪽.
(2)김종수. 위의 책. 60쪽.
(3)김 종수. 위의 책. 25쪽.
(4)正朝會禮宴 君臣上下宴飮通情 至爲美事 故予以爲可行
정조회례연 군신상하연음통정 지위미사 고여이위가행
(중종실록. 중종12年, 권 31. 丁丑年, 明 正德 12年. 윤12월 壬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