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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2.24 12:14
형이상학, 아 골치 아퍼!
/배학수
대학원 시절 저는 경기도 판교에 있는 한국 정신문화 연구소에서 연구 조사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때 예술 연구실에서 근무했던 동료는 내가 칸트의 형이상학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이마를 치며 그렇게 놀렸습니다. 철학도 고리타분한데 형이상학이라니?
어원상으로 형이상학(metaphysics)은 자연학(physics)을 넘어선(meta) 학문입니다. 이 용어는 기원전 1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을 편찬한 로도스의 안드로니코스(Andronicus of Rhodus)가 만들어내 말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자연학은 오늘날 물리학이나 화학처럼 가설과 실험의 방식으로 자연을 탐구하는 자연 과학이 아니라, 자연의 일반적 특성에 대한 사변적 연구였습니다. 사변이란 직관 또는 추측을 의미합니다. 자연학이라는 저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연구하는 사람은 자연적 대상의 목적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때 그는 별다른 검증의 과정 없이 자연 세계에 목적이 존재한다는 것을 추측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용어를 사용하면, 그의 자연학이란 자연적 대상에 대한 존재론인 것입니다.
형이상학은 존재 일반을 탐구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형이상학의 탐구 대상은 자연의 사물이 아니라 일반적 존재(being in general)입니다. 일반적 존재란 사실 주변에 없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대상은 모두 별, 사과 나무, 사슴처럼 특정한 존재이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냥 존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존재 일반이란 특정한 사물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대상이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일반적 관점을 의미합니다. 어떤 존재이든 특정한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모두 무시하고, 대상을 오로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존재로서의 존재(being qua being)로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예로 들자면,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남자 아니면 여자이지 인간 일반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남자에서 남성의 특징을 보지 않고, 여자에게서 여자의 특징을 제거하고, 오로지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남자와 여자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인간 존재 일반에 대한 연구를 확대하여, 존재 일반에 대한 연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종류의 탐구를 철학의 철학이라고 생각하여 제일철학(First Philosophy)라고 불렀습니다. 형이상학의 최초 규정은 존재에 대한 특수한 관점을 넘어서서 일반적 시각에서 존재에 접근하는, 존재에 대한 일반적 탐구입니다.
형이상학은 초월계에 대한 탐구이다
철학사의 전개 과정에서 형이상학에 대한 이해는 변화합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전통 형이상학이 종교의 교리처럼 선언만하고 입증은 없다고 보고 그것을 교리(독단) 형이상학(dogmatic metaphysics)라고 조롱했습니다. 당시의 형이상학적 연구를 칸트는 신, 영혼불멸, 내세 같이 경험의 영역을 완전히 넘어선 초자연적 세계에 대한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계에 창조자가 있다는 주장은 증명이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맞는지 틀렸는지 합리적 토론을 통하여 밝혀낼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형이상학의 개념에는 부정적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형이상학이란 초자연적 대상에 대한 쓸데없는 토론에 불과하다는 칸트의 형이상학 비판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형이상학은 전체에 접근하는 진정한 철학이다.
헤겔은 정신 현상학 서문에서 두 종류의 철학, 생동하는 진정한 철학과 그렇지 못한 철학을 구별합니다. 서로 다른 철학적 이론들의 차이를 구별하고 분류하는 데에 머물고 있는 철학 활동은, 헤겔의 비유를 들자면, 생명체의 부분 부분을 연구하고 그것을 다시 모으는 해부학적 탐구와 같습니다. 생명을 부분으로 나누면 이미 그것은 죽어 버렸기 때문에 부분의 지식을 다 모아도 생명 자체는 드러낼 수 없다고 헤겔을 생각합니다. 이러한 헤겔의 견해를 철학 연구에 적용해 본다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론(이데아론)이 어떻게 다른지를 밝혀내는 탐구는 아직 진정한 철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플라톤은 형상을 개별 존재 외부에 존재한다고 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이 개별자 안에 있다는 식으로 두 사람의 차이를 이해한다고 해서 형상론의 전체가 드러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면, 생동하는 진정한 철학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두 사람은 형상 이론을 왜 제출하였는가? 형상론은 어떤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것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형상이론이 초월성과 내재성의 차이가 있다는 식의 탐구는 아직 형상이론을 고안하게 한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단편적 연구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철학은 물음과 해답의 과정인데, 형상 이론은 일종의 해답입니다. 형상이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떤 물음에 답하기 위해 형상이론이 제시되었는지를 탐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해 이론을 그것이 들어있었던 원래의 맥락 속으로 넣어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헤겔은 철학을 부분의 이해에 머무는 오성의 탐구와 전체의 파악을 지향하는 이성의 탐구로 구별합니다. 저는 여기서 형이상학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형이상학이 전체에 접근하려는 진정한 철학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형이상학에 대한 세 가지 견해를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특수한 관점을 넘어서서 일반적 시각에서 존재를 탐구하는 자세이며, 두 번째는 경험의 세계를 넘어선 초월적 대상에 대한 탐구이며, 세 번째는 단편적 이해를 넘어서서 전체를 파악하려는 열정입니다. 첫 번째 규정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두 번째는 칸트에게서, 그리고 세 번째는 헤겔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흔히 형이상학을 초월적 세계에 대한 고담준론(高談峻論)이라고 여깁니다. 이것은 옳지 못합니다. 그런 생각은 형이상학에 대한 두 번째 견해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형이상학은 새롭게 자신을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경성대 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