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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2.22 09:25
대가야제국의 부활
김하기
제2부 하지태왕의 성장(1)
장화황후가 물었다.
“네 아버지는 누구시니?”
“후, 누, 장군이십니다.”
또박또박한 꺽감의 대답을 듣는 순간 여옥의 눈가에 이슬이 번졌다.
‘아, 꿈에도 그리던 내 아이가 맞구나. 하지만 실제로 네 아버진 대가야의 하령대왕이란다.’
수경아, 꺽감의 생명을 구해주고 길러주고 지켜주어 고맙다. 그런데 너는 네 아들을 칼로 죽인 원수 고상지와 함께 가야에서 이곳까지 올라와서 내정 장추전에 나란히 서 있구나.
나 또한 남편과 척족을 죽이고 내 아이를 죽이도록 명령한 태왕과 한 이불에 발 넣고 자고 있으니 이 무슨 얄궂은 여자들의 운명이란 말인가.
수경아, 참으로 고맙다. 바위틈에 떨어진 씨앗이 바위 틈새를 비집고 착근을 하고 줄기와 가지를 올리듯 꺽감도 그 척박한 가야 땅에서 이렇게 훌륭하게 자랐구나. 천길 낭떠러지 벼랑 끝 바위에도 희망의 나무는 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너의 사랑의 손길 없이 어떻게 자랐겠니.
여옥은 수경에게 무한애정의 애틋한 눈길을 보내는 반면, 수경은 그저 덤덤하게 꺽감의 손을 잡고 아이의 곁을 지키고 서 있었다.
장화황후가 고상지에게 물었다.
“고장군, 이 가야아이는 누가 맡아 키워야 하는가?”
“소인의 생각에는 소후마마가 키우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대가야의 도독으로서 대가야의 주인 내지는 후견인으로 자처하고 있는 고상지로서는 꺽감이 가야왕비이자 고구려의 소후인 여옥의 밑에서 커는 것이 장차 꺽감이 좋은 환경 아래 큰 인물로 자랄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무엇이? 이 아이를 여옥에게 맡긴다고? 너는 무슨 꿍꿍이속으로 이 아이를 소후에게 맡겨 어미 수경부인과 떼어 놓으려 하느냐!”
황후의 목소리가 완전히 비토라졌다.
소후 여옥은 광개토대왕의 총애를 독차지해 황후가 질투하는 첫번째의 대상이었다. 황후는 자신이 총애를 입지 못할망정 여옥만은 안 된다고 생각해 태왕의 침전에 다른 미색과 색향들을 수없이 밀어 넣기도 했으나 태왕은 한결같이 소후궁으로 밤 발걸음을 옮겼다. 왕의 총애를 여옥에게 빼앗긴 마당에 이런 준수한 가야아이까지 여옥에게 맡겨 두면 암코양이에 날개를 달아두는 형국이 될 것이다. 더욱이 자기 자식인 거련과 경쟁까지 벌인다면? 생각만 해도 장화황후는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장화황후가 이번에는 수경에게 물었다.
“수경부인, 이 가야아이는 누가 맡아 키워야 하는가?”
“제 아이니까 당연히 어미인 제가 키우겠습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 하는데 제 아이를 제손으로 키우기 위해 이 먼 길을 함께 온 것입니다.”
“호오, 과연 제 어미로다. 꺽감아, 네 어머니가 누구냐?”
장화황후가 다정하게 꺽감에게 물었다.
“바로 제 손을 잡고 있는 이 분이 제 어머니이십니다.”
꺽감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수경부인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그제야 고상지 도독은 장화황후의 뜻을 알아차리고 장화황후께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전 단지 가야왕비 소후가 아이를 더 잘, 아니 저의 생각이 어리석었습니다. 마마의 말씀대로 아이의 어머니인 수경부인이 아이를 더 잘 키우고 또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암, 아이는 당연히 지어미가 키워야지. 꺽감은 수경부인의 양육 하에 각 나라에서 온 볼모들과 함께 숙위궁에서 생활하되 특별히 꺽감은 동궁을 출입하며 태자 거련과 함께 수학하도록 하라.”
장화왕후의 명령이 떨어지자 모두들 ‘예’하고 읍한 뒤 물러났다.
장화황후는 대국의 국모답게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었으며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궁중의 암투와 십수 해에 걸친 권력투쟁 속에서 때론 겨울 쇳덩이처럼 차갑고 냉랭하게 변했으며 그와 그의 핏줄이 어떻게 하면 생존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외부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되 어떤 외부적 상황도 그녀가 스스로 규정해 놓은 일의 절도를 결코 넘을 수 없도록 엄격히 조처하였다.
여옥은 자기 아들을 보고도 키우지 못하는 서러움을 참지 못해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꺽감아, 별이 길 없는 하늘에서도 소리 없이 제 자리를 찾아가듯 너도 머나먼 하늘을 둘러 둘러 어머니의 별자리로 찾아왔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비록 한 방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지는 못하나 이제 헤어지지 말고 먼발치에서나마 서로 보기만 해도 얼마나 귀하고 좋은가. 또 이 생어미보다 더 좋은 양어미가 너를 키우니 내 마음이 놓이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주위에서 네가 보이지 않아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늘 따르며 마음의 눈으로 너를 지켜볼 테니 부디 내가 본 꿈처럼 봉황으로 자라 가야하늘로 훨훨 날아가시게. 그녀는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으며 꺽감을 보고 또 보며 소후전으로 물러났다.
꺽감은 숙위궁에서 수경과 함께 생활했다. 수경은 고상지와 여옥의 관계를 까밝힐 박지의 탄원서가 도착할 날만 기다렸으나 끝내 박지의 서신은 도착하지 않았다.
‘그 탄원서만 도착하면 고상지의 목은 떨어진다.’
하지만 고구려 국내성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수경은 어쩌면 장화황후에게 보내는 박지의 서신이 차라리 없는 게 더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원수인 고상지를 죽이겠다는 일념에 너무 성급하게 판단을 내린 것은 아닐까. 자칫 잘못하다 아이 바꿔치기에 관여한 자신도 꺽감도 모두 희생될지도 모른다. 고상지란 빈대 하나 잡고자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상지 도독이 내려갈 때까지도 박지의 서신은 국내성에 도착하지 않았다.
한편 박지 집사는 수경의 겁박과 미인계에 얽혀 장후황후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쓰고 있었다. 그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아직도 삭이지 못한 분노와 아쉬움이 남은 쾌락의 붓대를 들어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장후황후님께
긴히 대가야에 주재하고 있는 고상지 도독에 대해 보고 드립니다.
고상지 도독은 말을 타고 대륙을 누비던 습관을 아예 잊어버리고 이곳 비좁은 가야에 도독으로 눌러 앉은 지 어언 수년, 주지육림에 빠져 허벅지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두꺼워져 왜의 씨름선수처럼 변을 누고도 혼자 닦지 못해 변을 전문적으로 닦아주는 뽕아를 옆에 데리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가 받은 뇌물은 두 창고에 가득 차 있는데 그 뇌물의 목록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첫째 창고에는 쌀과 철정이 산더미처럼 쟁여져 있고, 둘째 창고에는 융단, 비단, 유향, 호추, 황금, 은자, 옥, 자기, 종이, 술, 서각(물소뿔), 상아, 각종 무구류 등이 천장 꼭대기까지 쌓여져 있습니다. 열두 가야 가야뿐만 아니라 중국, 왜,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도 청탁의 끈을 달고 들어온 뇌물들이 가득합니다.
특히 고 도독은 미색을 산해진미보다 좋아하는데다 일녀일회주의(一女一回主義)를 고집해 그의 성적 취향과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저희 가야 관리들이 날마다 새로운 여인을 고르느라 여간 번쇄하고 수고스럽지가 않습니다. 모든 업무 중에 으뜸이 도독의 하룻밤을 즐겁게 맞추는데 잡혀 있을 정도입니다. 대가야에서 보내는 그의 대부분의 시일은 온갖 종류의 죄와 악행으로 낭비되고 있으며 우리 가야인들에게는 많은 고통과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도독의 가장 큰 악행은 바로 대왕의 명을 정면으로 거역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광개토대왕께서 여옥소후가 낳은 아이를 반드시 죽여 대가야의 종통을 끊어라고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고상지 도독은 여옥과 사통한 후 여옥이 낳은 아이와 수경이 낳은 아이와 서로 바꿔치기해 수경이 낳은 아이를 죽이고 여옥이 낳은 아이는 살려서 꺽감이라는 이름으로 가야 종통을 보존한 채 지금 고구려 국내성에 가야아이로 보낸 것입니다. 이것은 대왕의 명을 거역한 기군망상이자 용서치 못할 반역죄입니다.
위의 사실이 한 터럭의 거짓도 없는 것임을 꺽감과 동행한 양어미 수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드시 진실을 밝혀 고상지 도독과 여옥소후를 처벌해 주시길 탄원합니다.
대가야 집사 박지 올림
박지는 이렇게 서신을 써놓고 고구려의 장화황후에게 보내려고 발빠른 전령을 불렀다. 그리고 전령을 세워놓고 잠시 머리에 휴식을 주며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 내 아들 구야 일만 제외하면 고상지 도독과 나쁜 사이도 아닌데 굳이 이 서신으로 고상지를 칼 지옥으로 보낼 바보 같은 이유가 무엇이 있나? 내 머리가 마치 나무통처럼 아둔하지 않다면 굳이 지금 이 탄원서를 장화황후에게 올릴 이유가 없다!’
노회한 박지는 차라리 이 편지를 장화황후 대신 고상지에게 보내는 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위와 같은 고상지의 약점을 잡아 이용하는 게 여러모로 대내외적으로 실익이 있다고 판단했다.
‘존귀한 잣대는 집사인 나 박지에게서 나온다. 한낱 더러운 창녀에 불과한 수경이가 영명한 판관 노릇을 하려고 하다니! 너의 겁박 따위에 의해 내가 장화황후에게 이런 서신을 보낼 쏘냐. 약점이 많은 고상지는 언제든지 적당한 때에 처단할 수 있고, 내가 그의 명줄을 쥐고 있음을 보여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이왕 꺽감이 고구려 국내성으로 올라간 것, 우선은 고상지와 함께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대가야를 현상태로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작은 나라 집사가 고구려 상층부를 잘못 건드렸다간 게도 구럭도 다 잃게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박지는 편지를 봉인하고 발 빠른 전령에게 주며 말했다.
“이 편지를 고상지 도독에게 전해주되 도독께서 읽는 즉시 찢어버리라고 말씀드려라.”
꺽감과 수경이 머무는 숙위궁에는 고구려의 속국과 신국에서 올라온 왕자와 볼모들이 고구려 숙위궁에 머물면서 황제를 호위하는 의장대에 편입되어 있었다. 숙위궁에는 신라의 내물마립간의 아우인 실성왕자, 백제 아신왕의 딸인 다해공주, 왜왕의 아들, 후연 모용성의 아들, 비려, 말갈, 거란, 숙신, 부여, 북위 등의 자제들이 모인 것이다. 말이 ‘의장하고 친위한다’는 의장대이고 숙위이지 실제로는 고구려가 기미정책(羈縻政策, 말의 굴레, 쇠고삐를 뜻하는 말로 이민족을 통제하는 방법)에 따른 복속국가의 인질, 질자로서의 인간 담보물에 불과한 것이다.
꺽감은 고구려의 마방에 배정되어 마감이 되었다. 마방의 마감(馬鑑)은 미천한 직 같긴 하지만 말을 중시하는 고구려에서는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광개토대왕은 명절 때마다 말을 검열하였고, 검열 때는 태왕과 태자, 후비빈들도 함께 찾아와 말을 구경했다. 꺽감은 마감으로서 왕족이 타는 말들이 탈이 없나 잘 살피고 조련하는 일을 하면서 신중함과 통솔력, 용맹무쌍함과 때를 알아차리는 분별력을 쌓아갔다.
숙위궁이 갑자기 소란스러웠다. 태자 거련이 여동생인 상희와 함께 숙위궁에 행차한다는 것이다. 숙위들이 부지런히 궁을 청소하고 의관을 갖추었다.
태자가 좌우에 호위무를 거느리고 상희와 함께 숙위궁을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꺽감은 마침내 거련 태자, 아니 동무인 거련과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다. 꺽감은 태자와 공주에게 예를 갖추고 정중히 맞아들였다.
첫눈에 거련은 잘 생긴 얼굴이나 희고 창백했으며 몸은 마르고 병약해보였다. 그의 용모나 걸음걸이 어디에도 광개토대왕의 적자로서의 위엄과 후광이 보이지 않았으나 하얀 이마와 총명한 눈만은 반짝이며 빛이 났다. 거련은 아버지를 닮은 고구려형 무골이 아니라 어머니를 닮아 어딘지 문약해 보였다. 장차 후대에 97년을 장수해 장수왕이란 시호를 얻었고 재위기간만 79년에 이르는 한국사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장수한 왕으로 기록된 왕의 유년 시절은 이처럼 병약한 모습이었다.
거련이 마방으로 와 꺽감을 찾았다.
“얼마 전 가야에서 온 장군의 아들 꺽감이군.”
“그러합니다.”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로부터 좋은 동무가 왔다고 말을 많이 들었네.”
“태자마마에 비하면 많이 부족합니다.”
“꺽감, 우리 오늘 말을 타고 성 밖으로 놀러가 볼까?”
“좋습니다, 태자마마.”
“상희, 너도 가자!”
거련, 꺽감, 상희공주 셋은 말을 타고 환도성 밖 주작대로를 달려 국내성 저잣거리로 향했다. 상희공주는 준수한 꺽감에게 끌려 시종일관 꺽감으로부터 그녀의 시선을 떼지 못했다. 국내성에는 고구려의 축제인 동맹이 시작되고 있었다. 떡방앗간, 푸줏간, 과일가게, 대장간, 옷가게, 신발가게, 그릇가게에는 장사치들과 붐비는 인파들로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씨름판에서는 황소를 걸고 씨름이 벌어지고 있었고, 검술경연장에는 챙챙거리는 칼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거련이 모래가 쌓인 씨름판에서 하마해 꺽감에게 말했다.
“꺽감, 우리도 여기서 한 판 놀아보자.”
“좋습니다.”
둘은 웃통을 벗고 씨름을 했다.
꺽감은 신라와 가야에서도 전통놀이를 많이 접했다. 외할아버지 박판수는 꺽감의 스승이자 멘토였다. 철소의 총대장 골편수인 박판수는 최고참이면서도 마음은 항상 젊었다. 선배대접 받기보다 황당할 정도로 젊은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려하고 어울리려는 성격이었다. 특히 어린 외손주 꺽감에게는 그의 오장육부를 다 내주어도 아까워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는 신언서판이 뚜렷하고 하는 말마다 조리에 닿고 행동이 정확해 모든 사람들에게 엄격한 귀감이 될 터수였지만 다만 영감이 약주를 좋아하는 애주가라 늘 코끝부터 눈자위부분이 불그스레하고 눈은 반쯤 조는 듯이 감겨 있어 사람이 무람없이 좋아보였다. 박판수는 자신이 다루는 철과 관련한 검, 창, 활, 방패 등 모든 무기에 관한 기술을 꺽감에게 전수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명절이나 절기 때마다 꺽감을 데리고 전통놀이를 구경시키며 씨름, 말타기, 축국 등도 잘할 수 있도록 직접 가르쳐 주었다.
10월 상달제에는 사자탈을 쓰고 사자춤을 함께 추기도 하고 각저(씨름), 활쏘기, 말타기, 수박을 하고 그러나 힘이 부치면 오동나무 그늘 아래서 꺽감과 함께 이들을 구경했다. 특히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씨름을 많이 했는데 씨름을 각저(角觝)라 하고 씨름 벽화가 나오는 무덤을 각저총이라 함은 ‘다툴 각(角)’ ‘닿을 저(觝)’로 겨루는 두 사람이 서로 몸을 대고 다투기 때문이다.
힘과 기술에서 거련은 꺽감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꺽감은 이미 배지기 들배지기 등지기 딴족거리 등 손기술과 발기술을 외할아버지 박판수로부터 충분히 익혔기 때문이었다. 꺽감이 거련의 몸의 중심을 무너뜨리며 손으로 슬쩍 옆무릎을 치니 거련은 옆으로 나가떨어져 엉덩방아를 찍었다. 그래도 거련은 마냥 웃으며 즐거워했다. 검술 경연장에서는 둘이 목검을 들고 칼싸움을 했다. 몇 합을 겨루지 않아 거련의 칼이 공중을 날며 땅에 떨어졌다. 거련과 꺽감은 승부에 관계없이 마냥 검술이 즐거웠다. 상희는 놀이를 보며 좋아라고 깔깔거리며 박수를 쳤다. 하지만 멀찍이 따라가며 지켜보던 장화황후의 눈빛이 칼날처럼 번쩍였다.
꺽감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고구려 문화를 빨아들였다. 꺽감에게 이런 일은 두 번째로 첫 번째는 외할아버지 박판수 아래서 신라 문화를 해면이 먹물을 빨아 들이듯 빨아들인 일이었다. 하지만 신라문화와 가야문화 사이에는 그다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북방의 고구려는 일찍이 중국과 서역의 문화를 받아들여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면서 진보적이어서 폐쇄적이고 보수적이고 완고한 남방문화와는 많이 달랐다. 꺽감은 거련과 함께 태학에 입학했다. 태학은 소수림왕 2년에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으로 왕족과 귀족의 자제들이 배울 수 있는, 4국 최초의 교육기관이었다.
꺽감은 만약 자신이 가야에 있었더라면 이런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으리라 생각했다. 고구려의 태학, 신라의 국학, 백제의 경학박사가 있다면 아직 가야에는 마땅한 교육기관이 없었다.
‘남다른 혜택을 받는 만큼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익히리라. 그래서 반드시 대가야로 돌아가 조국을 되찾고 중흥시키리라!’
꺽감은 거련과 함께 무예인 마상술, 활쏘기, 창검술을 익혔고, 유교경전인 사서삼경과 중국의 문학작품, 고구려의 역사, 법, 전통문화를 체계적으로 학습했다.
제왕이 지녀야 할 성품들을 가르치는 제왕학에도 흥미를 느꼈다.
태학교수가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토포악발(吐哺握髮)이란 주공이 밥을 먹다가도 얼른 뱉고 나가 손님을 맞고 머리를 감다가도 얼른 걷어올리고 나가 손님을 맞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인재를 잃지 않기 위해 애쓰고 노력했기 때문에 주나라 삼백 년의 건국 기틀을 닦을 수 있었던 거야.’
유익하고 흥미로운 과목이 많았고 꺽감은 서가를 들락거리면서 수불석권(手不釋卷,손에서 책을 놓지 않음)했지만 가장 관심이 많았던 책은 역시 병서였다. 강태공의 육도와 장량의 삼략, 손오병법과 사마양저의 사마법을 암기하다시피 했고 병서 중에서 가장 열심히 읽었던 것은 상앙의 농전(農戰)이었다. 왜냐하면 농전은 둔전을 경영하며 병사들을 무적의 전사로 만드는 부국강병 이론의 총서로 가야의 실정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꺽감의 학습능력은 뛰어나 태학의 박사들이 신동이라며 칭찬이 자자했다.
“감은부를 지었는데 소년부의 작품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감은부라는 시는 광개토대왕을 찬양하는 오언절구의 시였다. 고구려 태학에서 감은부라는 발제의 과장을 열어 시를 잘 짓는 자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했다. 꺽감은 당석에서 시부를 지었는데 뛰어난 문장과 딱딱 들어맞는 율이 태학박사들을 놀라게 했고, 이후 꺽감이 신동이라며 주위에 소문이 퍼졌다.
거련도 참석한 과장에서 미천하고 작은 정복 식민지의 가야장군 아들이 감은부를 지어 상을 받은 것은 많은 고구려인들의 질투심을 불러 일으켰다. 꺽감은 멋도 모르고 아버지를 죽인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찬양한 감은부를 짓고 칭찬을 받았지만, 고구려 천하의 국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고구려인들은 변방에서 미천한 가야아이를 질시의 눈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어린 거련과 꺽감, 상희와 다해는 어른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며 지냈다.
제 맘대로인 상희는 꺽감을 드러내놓고 좋아한다며 따라다녔다.
“꺽감 오빠, 난 꺽감 오빠가 활쏘기 할 때가 제일 멋있어. 난 오빠한테 시집갈 거야.”
“고구려 공주가 가야 사람한테 시집오면 안 될 걸.”
“내가 시집가겠다는데 왜 안 돼? 반대하는 사람은 내가 다 죽여 버릴 거야.”
상희는 공주답지 않게 선 머슴애처럼 구는데다 꺽감을 오빠라고 부르면서도 마치 동생처럼 다루었다. 상희는 간섭하는 것만큼이나 꺽감에게 귀한 먹거리를 곰상스럽게 챙겨주고 값비싼 선물도 했다. 하지만 상희가 자기의 수말하고 마방의 암말하고 접을 붙여 망아지를 얻자며 부랄이 덜렁덜렁한 수말을 몰고 올 때는 꺽감은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
꺽감은 백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숙위궁에 자주 놀러갔다. 거기엔 볼모로 잡혀온 백제공주 다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살결이 가무잡잡하고 성격이 보리처럼 억센 상희와 달리 다해는 얼굴이 해끔하고 피부가 쌀알처럼 투명하게 비칠 정도였다. 눈이 호수처럼 크고 맑고 성격이 다소곳해 질자로 끌려온 남자애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꺽감도 다해를 보면 괜히 가슴이 새가슴처럼 콩닥거렸다. 하지만 백제공주 다해 옆에는 늘 거련이 왕처럼 군림하면서 곁을 내주지 않았다.
소꿉놀이, 전쟁놀이, 사냥놀이에서 다해는 거련태자의 공주였고, 상희는 꺽감의 공주였다. 하지만 꺽감은 왠지 상희가 부담스러웠다. 태왕의 딸이자 거련의 여동생인 상희와 자신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가로놓여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은 거련과 꺽감 사이에 놓여 있는, 아니 고구려와 가야 사이에 흐르는 아리수와 같은 깊고도 넓은 강이었다.
거련과 함께 장난을 치며 뒹굴다가도 꺽감이 거련의 위로 올라가면 지켜보던 호위무사들이 ‘저, 미천한 것이 감히 태자를.’ ‘저 미개한 가야자식이’라며 욕설을 하며 수군거릴 때는 거련과 상희는 동무가 아니라 범접할 수 없는 고구려 태자와 공주였다.
꺽감은 상희의 눈 밝은 감시에도 불구하고 다해를 보러 백제 숙위궁에 자주 놀러 갔다. 꺽감은 억센 상희의 간섭이 심할수록 다해 같은 고즈넉한 소녀상에 더 깊이 몰두하게 되었다. 쟁을 다루는 다해의 길고 가녀린 손가락이 줄 위에서 뛰놀면 꺽감의 가슴도 마구 방망이질을 하며 뛰었다. 꺽감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연주하는 하늘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
‘아, 이 추운 고구려 땅에서 늘 찾던 가야의 따뜻한 집과 어머니의 품속을 이 쟁소리에서 느낀다.’
꺽감과 다해는 산뜻한 햇살이 비치는 숙위궁 대청마루에 나란히 앉았다.
그날따라 다해는 꺽감에게 유난히 다정하게 굴었다.
“난 너가 여기 놀러와 줄 때마다 기뻐.”
“뭘, 나도 여기 오면 기분이 좋은데, 뭘.”
바람에 쟁그랑거리는 처마의 풍경소리는 주위의 고요를 더욱 깊게 했다. 그 소리는 꺽감의 그리운 마음을 울리는 소리였다.
“백제와 가야는 가까우니까 그렇지.”
“그래, 우리는 둘 다 이 나라에 볼모로 잡혀왔어.”
꺽감의 마음속으로는 ‘다해, 너가 있으니까 내 기분이 좋은 거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남몰래 짝사랑하는 구원의 소녀상이 한 명씩은 있지 않을까. 그녀만 있으면 이 지옥 같은 세상도 기분 좋은 하늘나라로 바뀐다. 마음으로 음심을 품는 것조차 죄스럽게 생각되는 절대 순수의 소녀다. 꺽감은 백제공주 다해하면 늘 ‘하얀 옷을 입고 쟁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천사’로 상상했다. 그런 은밀한 상상은 지상의 꺽감을 초라하게 하면서도 무한한 행복감에 젖게 했다.
다해는 쟁을 타면서 꺽감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보기란 노래로 남부지방 하기문과 상기문(지금의 전라도 남원, 상기문은 번암과 임실로 비정된다)의 민요였다. 다해와 꺽감의 목소리는 청실과 홍실처럼 두 음색이 엮여져 잘 어울렸다. 대청마루의 공간이 다해의 몸에서 울려나오는 쟁소리로 가득 차 꺽감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꺽감아, 너에게 부탁이 하나 있어.”
“뭔데?”
“거련이한테 이기려하지 마.”
꺽감은 다해가 밤하늘의 별을 따달라면 별을 따주고 그걸로 목걸이를 만들어달라면 만들어줄 기분이었다. 그러나 다해의 이 한 마디 말에 하늘까지 뻗쳐오르던 풀이 그만 꺾여버렸다.
동맹 축제의 마지막 날 여옥은 오랜만에 소후궁으로 수경과 꺽감을 불렀다. 궁에 들어온 지 하 세월이 지났건만 여옥은 수경과 꺽감을 풍문으로만 들었지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여옥이 꺽감과 수경을 바닥 모를 애정과 애잔한 눈으로 보았다.
‘핏덩이를 수경에게 맡기고 얼마나 통곡했던가. 모진 풍파를 겪고도 이리도 건강하고 늠름하게 자라다니.’
수경이 여옥에게 인사를 한 뒤 냉정하게 말했다.
“오래 있지는 못합니다. 태학에서 고구려 소년들의 활쏘기와 말타기 경기가 있어서요.”
“응. 수경이가 아이를 돌보느라 고생이 많구나. 그 경기에 거련 태자도 참석하느냐?”
“예. 하지만 우리 꺽감이 태자를 이길 것입니다.”
“무슨 소리! 꺽감아, 거련 태자를 이겨서는 아니 되느니라.”
여옥이 귀고리인 곡옥을 출렁거리며 황급히 앞으로 나아와 꺽감을 안으며 말했다.
“왜요, 마님?”
수경은 어떤 경기든 반드시 꺽감이 거련을 이겨야 속이 후련했다. 물론 장화황후가 이것을 보고 무척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언젠가 장화황후의 불 같은 질투심을 이용할 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꺽감아, 태자님은 장차 광개토대왕의 자리를 이으실 분, 그 분보다 앞서서는 결코 안 된다. 항상 태자 앞에서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하고 겸손함을 배워야 하느니라. 그래야 이곳에서 쫓겨나지 않고 생명이 보전되느니라. 알겠느냐?”
여옥이 꺽감에게 단단히 이른 뒤 수경에게도 경계의 눈빛을 멈추지 않았다.
“수경아, 장화황후가 꺽감을 대하는 움직임이 예사롭지가 않다. 꺽감에게 예의염치를 잘 가르치도록 해.”
“꺽감이 아이답지 않게 예의가 바르고 눈치도 빠릅니다.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네가 아이를 맡으니 얼마나 고맙고 든든한지 모르겠다. 차라도 한 잔 대접해야 하는데.”
“아니 되옵니다. 지금 총총걸음으로 나서야 합니다.”
여옥이 꺽감과 작별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손을 흔들고 떠나가는 꺽감의 얼굴뿐만 아니라 걸음걸이와 뒤태마저도 얼마나 하령왕을 닮았는지. 꺽감아, 너와 함께 한 시간은 꽃그늘처럼 짧고, 그리움과 한숨으로 뭉친 세월은 만리장성처럼 길구나. 너를 떠나보낼 때마다 억장이 무너져 죽을 것만 같구나. 마음은 화살처럼 날아가 너를 뒤따르고 싶지만 선 채로 이 자리에서 망부석으로 살아야 하는 몸이구나. 차라리 빗물이라도 되어 네 몸을 적셨으면. 계절에 따라 각자 홀로 꽃이 피고 지듯 이렇게 헤어져 살면서도 언젠가 시절 인연을 쫓아 너와 함께 한 이불을 덮고 잘 날이 있으리라.
수경과 꺽감이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앞마당이 소요했다. 화려한 자색 황후복에다 금 귀걸이와 목걸이를 한 장화황후가 시녀와 비빈들을 이끌고 소후궁으로 왔다.
황후가 여옥의 허름한 차림새를 훑어보더니 말했다.
“소후, 안녕하신가?”
“예, 마님의 은총 덕분에 무탈합니다.”
“오늘 동맹 축제의 마지막 날, 태학에서 소년들의 활쏘기와 말타기 경연이 있다고 해서 나섰네. 폐하도 참석해 관람하신다고 하니 선걸음에 함께 가세.”
“미천한 저까지 초청해주시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태학 앞 넓은 경연장에는 돌로 만든 둑방 같은 석대가 쌓여 있고, 석대 위에는 보좌와 의자들이 가지런히 배치되어 있었다. 경연장에는 오색 깃발들이 나부끼고 석대 위에는 고구려 문장인 삼족오의 깃발이 펄럭였다. 태학에 다니는 고구려 왕족과 귀족 자제들의 무예 경연을 보기 위해 대대로, 태대형, 울절에서 미관말직인 저형, 선인, 자위까지 대소신료들과 성주와 외국사신, 두메산골에 있는 하호들까지 상경해 경연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윽고 광개토대왕과 황후가 보좌에 앉자 고구려 국악이 울리고 군무가 벌어졌다. 경연장에는 태학 학생들의 씨름, 검술, 창술, 격구, 활쏘기, 마상재, 말타기 등이 펼쳐지고 있었다. 경연장에서 성적은 무예 점수에 반영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안간힘을 다해 최선의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고구려 황실이 관심이 쏠린 곳은 오로지 거련 태자의 무예 경연이었다.
황후가 태왕에게 말했다.
“저기 태자를 보세요. 갈수록 당신을 닮아 씩씩하고 늠름하지 않습니까?”
“천신녀의 말이 맞소. 꺽감과 동무가 된 뒤로 건강을 되찾고 성격도 많이 활달해졌소.”
태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머리에 쓴 조우금관이 햇빛에 번쩍였다. 경연은 장년부, 청년부, 소년부로 나눠지지만 모든 행사는 소년부 거련 태자를 중심으로 짜여 있었다. 거련은 소년부 씨름, 검술, 창술, 마상재에서 압도적으로 수위를 해 따라올 자가 없었다. 다만, 꺽감이 멀찍하게나마 차위를 유지한 채 거련을 서서히 따라잡고 있었다. 거련이 승리할 때마다 풍악이 울리고 황후와 비빈, 신료들의 웃음꽃이 만발했다. 그러나 경연이 진행될수록 광개토대왕은 말이 없어지고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하게 앉아 있었다.
장화황후가 태왕에게 말했다.
“폐하는 우리 아들 거련이 승리하는 데도 즐겁지 않습니까?”
“아직 중요한 활쏘기와 말타기 경연이 남아 있으니 좀 더 지켜봅시다.”
꺽감은 다해와 소후의 당부대로 지금까지의 무예 경연에서 일부러 거련에게 져주었다. 활쏘기에서도 꺽감은 거련에게 조금씩 앞서 나가다 마지막 세 발을 모두 과녁에 빗맞혔다. 거기한량이 연달아 ‘실!’,‘실!’ ‘실’이라고 외쳤다. 반면에 거련의 마지막 세 발을 모두 과녁에 명중해 거기한량이 깃발을 높이 들고 ‘거련 태자님, 일시, 이시, 삼시 모두 명중이오!’라고 외치며 춤을 추었다.
마지막 말경주가 남아 있었다. 꺽감은 마지막 말경주에서만은 꼭 거련을 이기고 싶었다.
‘지금까지 내가 다 져주었으니 말 경주에서 내가 이겨도 뭐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출발선에는 위풍당당한 한혈마 설모를 탄 거련과 초라한 박모를 탄 꺽감과는 애당초 경쟁이 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꺽감은 마감으로서 마방에서 말과 더불어 살면서 말을 다루는 기술을 익혔기에 자신이 있었다. 박모의 출발은 늦었으나 꺽감이 힘껏 채찍을 휘두르고 박차를 가해 거련의 설모를 따라잡고 마침내 추월했다. 꺽감이 마지막 전력질주를 위해 채찍을 휘두르려는 순간 석대석에 앉은 소후와 다해를 보고 말았다. 소후는 꺽감을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다해는 안된다고 도리질을 쳤다.
태학교수의 말이 문득 꺽감의 뇌리에 떠올랐다.
‘誠이란 무엇인가? 언과 성을 합성한 데서 알 수 있듯이 한번 내뱉은 말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꺽감아, 비록 손해를 보더라도 성실한 사람이 되어라.’
꺽감은 치기어린 욕심을 누르며 조용히 보이지 않게 말고삐를 당겼다. 박모는 숨을 헐떡일 뿐 점점 주력이 떨어지더니 결승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설모에게 뒤처지고 말았다. 거련이 승리하자 경연장에 풍악이 울리고 오색 깃발이 나부끼면서, ‘호태왕 만세! 거련태자 만세!’ 소리가 하늘 높이 메아리쳤다.
그러나 광개토대왕만은 건성으로 박수를 치며 중얼거렸다.
‘나의 매 눈은 속일 수 없지. 오늘 동맹 축제의 승리자는 거련이 아니고 꺽감이다. 내가 가야산의 호랑이 새끼를 데려와 키우고 있군.’
남의 눈에 띠지 않은 것을 보아내는 재간,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꿰뚫어 보는 능력 그것은 고통스러운 재능인 동시에 징벌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모든 이들이 ‘호태왕 만세! 거련태자 만세!’를 부르는 동맹의 축제의 마지막 장마당에서 광개토만은 아니라며 스스로에게 마음의 징벌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