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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대가야제국의 부활 (5)

작성일 : 2021.02.15 10:04 수정일 : 2021.02.15 10:08

대가야제국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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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하지태왕과 장수왕(5)

동아시아의 절대 패자 고구려와 이를 둘러싼 백제 금관가야 신라 세 나라의 움직임과 바다 건너 왜의 준동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고구려가 남하할 때마다 항상 고구려의 뒤통수를 쳐왔던 요하 건너에 있는 비려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았다.

초기 한반도에서는 상하 두 축이 늘 태극무늬처럼 맞물려 움직이고 있었다.

서해안의 백제는 한강 유역의 땅을 잃어버린 후 항상 백제 고토를 회복하려고 가야와 손잡고 서해안 쪽으로 밀고 올라가는 북진정책을 취했고, 고구려는 백제를 억제하면서 신라를 통로로 해 동해안으로 쳐내려오는 남진정책을 취했으므로 두 나라는 한반도에서 마치 어깨를 맞대고 샅바를 잡은 씨름선수처럼 자웅을 겨룰 수밖에 없었다. 왜는 그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백제 가야와 연맹을 맺고 부산 다대포에 있는 임나왜소(왜소: 왜명(倭名) 임나일본부. 임나일본부는 왜가 가야를 통치한 식민정부가 아니라 가야가 왜의 무역을 허락한 왜소이다. 조선 세종 때 개항한 삼포나 조선 후기의 초량왜관과 비슷한 성격의 반자치 무역항이다.)를 통해 대대적인 용병 수출을 감행했다. 그러면 가야는 어떤 위상을 가졌는가? 한반도 남단과 중원(충주)에 걸쳐 있던 가야는 강력한 지렛대의 움직임 속에서 가야는 늘 중요한 받침점 역할을 했다. 두 세력은 가야를 딛지 않고는 상대의 세력을 제압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령왕이 죽고 없는 대가야에서는 집사(총리) 박지가 긴급 조정회의를 소집했다.

박지가 조정회의를 소집하자 3품 이상의 대소신료들이 어라궁 대정전에 모였다.

대가야 관등의 품계는 신라의 골품제처럼 엄격하게 9품제로 나눠져 있었다. 고구려의 대대로, 백제의 좌평, 신라의 이벌찬에 해당하는 대가야 1품은 신지이다. 백제에 5좌평이 있듯 대가야에도 이신지, 호신지, 병신지, 법신지, 공신지 5신지가 있었다. 2품에서 9품까지의 내관직은 축지, 번지, 검말, 궁말, 패말, 읍차, 낙차, 소차이고 외관직 9관등은 상한기, 차한기. 한기, 주수, 거수, 인수, 대척, 중척, 소척였다. 관료들이 입는 관복의 색깔은 3품까지 붉은 홍색이었다. 3품에서 6품까지 청색, 7품에서 9품까지는 황색으로 관복의 색깔이 엄격하게 구별되어 있었다.

오늘 조정회의는 신지 축지 번지 등 3품까지만 참여하도록 허락되어 홍색의 관복을 입은 관료들로 인해 조정은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조정회의를 소환한 박지 집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 하해 같은 은택과 고상지 도독의 밝은 지도로 우리 대가야는 일취월장하고 있소이다. 그럼, 조정회의를 하기에 앞서 광개토대왕이 계신 고구려 환도성을 향해 망궐례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대정전에 모인 대소신료들은 일제히 북의 고구려 환도성을 향해 절을 올리며 망궐례를 했다.

광개토호태왕이시여, 만수무강하소서.”

광개토호태왕이시여, 만수무강하소서.”

망궐례 의식이 끝난 뒤 박지가 말했다.

아시다시피 지금 나라 안팎의 정세가 고양이 눈알처럼 불안하게 돌아가고 있소. 백제 아신왕은 관미성 패전과 수곡성 패전, 아리수 패전 등 잇달아 고구려에 패배해 한강변의 고토를 잃고서도 어리석게도 다시 한 번 대고구려와 전쟁 준비를 하고 있소이다. 이 와중에 금관가야는 12가야연맹체의 맹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먼저 우리와 내전을 벌이려고 하고 있소.”

박지의 말에 조정의 대소신료들이 술렁거렸다. 하령왕의 죽음 이후 한동안 평안했던 가야 땅에 다시 금관가야가 맹주자리를 노리며 남쪽 하늘에 핏빛 전운을 띄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400년 동안 12가야 연맹체의 수장은 사실상 대가야가 아니라 금관가야였다. 금관가야의 초대왕 김수로왕 이후 지금 이사품왕까지 12가야는 가야산 정견모주보다는 신어산 김수로왕의 정통성을 중심으로 단결해서 연맹체를 결성해온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다만 대가야의 금림왕과 하령왕 때 잠시 부흥기가 있었으나 그 짧은 기간의 대가야의 상승 기운도 고구려와 맞서다 순식간에 불침 맞은 여우꼬리처럼 사그라진 꼬다리가 되었다. 결국 박지가 주장한 내용의 골자는 우리 대가야는 고구려와 맞서지 말고, 다가오는 전쟁에선 마음 편히 강한 고구려편에 붙어 금관가야와 싸우자는 것이다.

그래서 고구려 태왕께서는 우리 대가야가 금관가야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펴 보고하라는 하명서를 내렸소. 이제부터 각 부별로 세작활동을 강화하고, 특별히 군신지 후누 장군은 금관가야 첩보 수집에 주의를 기울임과 동시에 군사를 잘 조련시켜 금관가야의 침입에 만반의 준비를 다 해야 할 것이오.”

후누는 읍을 하며 박지의 명에 순종했으나 속으로는 안타깝고 화가 났다. 가야12연맹체는 단결해도 힘이 부족한 판에 늘 이렇게 내전으로 분열해 서로 싸우니 여섯 쪼가리가 아니면 열두 쪼가리가 나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지 못하고 늘 이웃나라의 밥과 찬거리가 되고 만다고 생각하니 열불이 났다. 언제 제대로 대내외적으로 우리 가야가 일치단결해 하나가 되어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12가야연맹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고구려에 붙었다, 백제에 붙었다, 심지어 바다 건너 왜에 붙었다 하니 할 짓이 아니었다.

박지는 아무런 고민도 없이 고구려 광개토왕에 붙어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있다. 하긴 광개토왕은 승승장구하여 한반도를 통일하려 하고 있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의 명호는 대제국을 건설한 동아시아의 전설이 되고 있었고 그의 이름과 문양, 부조와 인장이 각종 그릇과 기둥, 기념비와 묘지석에도 새겨질 정도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후누 자신도 부르기에도 숨찬 이 긴 이름의 왕에게 빌붙어 충성을 맹세하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지만, 메뚜기 이마빡만한 정말 보기에도 누추한 이 작은 땅 대가야 상가라도에 왜 이리 집착하는지, 이 나이에 아직 자기의 정체성도 모르는 어린 군주 꺽감에게 자신의 아이까지 바쳐가며 모욕스런 충성을 맹세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그냥 대가야에 이런 바보 같은 충신 하나쯤은 남아 있어야 가야 400년 역사가 덜 부끄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이 모든 것이 가야를 지탱할 강력한 수장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니 고구려와 맞서다 돌아간 하령왕이 더욱 그리웠다.

박지는 금관가야에 대한 첩보와 세작활동 강화를 지시한 뒤 신료들에게 말했다.

중요한 사안이 하나 더 있소. 고구려 태왕께서 가야를 신하국이 아니라 형제국으로 여기시어 태자 거련(장수왕)과 동무할, 가야아이의 입양을 원하셨소.”

박지 집사의 말을 들은 신료들이 수군거리며 얘기를 나눴다.

이건 가야아이를 입양해 새로운 대가야의 왕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오?”

나도 그런 소문을 들었소.”

박지가 엥엥거리는 염소소리로 말했다.

다들 조용히 하시오잉. 고상지 도독님과 내가 3수위 이상 씨품 중에 거련 태자와 나이가 같은 또래아이를 일일이 물색한 결과, 갈만한 아이가 없었소이다. 어렵사리 나의 아들인 박구야를 설득해 고구려로 보내기로 힘들게 결정했소. 이 사안에 대해 반대가 있습니까? 반대가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표해 말해 보시오.”

조정의 신료들은 박지 앞에서 반대를 했다간 바로 목이 달아나는 상황이라 드러내놓고 말은 못하고 나지막하게 속살거렸다.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반대는 왜 묻지?’

박지 집사가 잔꾀가 많은 자기 아들을 태왕의 자식으로 입양시켜 장차 대가야의 왕으로 삼을 작정이군.’

결국 고구려에 볼모로 가는 건데 아이를 잡혀서라도 자신의 영달을 누리고 싶은 게지.’

언제 씨품 3수위 이상의 아이들을 물색했다는 거지? 제 혼자 결정한 주제에.’

대가야에도 골품(骨品)과 두품(頭品)제도가 엄격했던 신라사회처럼 신라의 골품제와 비슷한 씨품제가 있었다. 타고난 씨품은 상수위, 2수위, 3수위, 4수위로 나눠져 있었다. 대가야 왕족인 뇌질주일씨는 상수위(1수위), 금관가야 왕족인 뇌질청예씨는 2수위, 그밖에 신라 알지씨와 갈성씨 등 대성은 3수위, 백제 부여씨 허씨 등 소성은 4수위로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관등을 보면 상수위는 1품 신지까지 전 품직을 다할 수 있고, 2수위는 2품 축지까지, 3수위는 4품 검말까지, 4수위는 7품 읍차까지만 관등 상승이 가능했다. 과거에는 씨품의 수위 이동은 단단한 바위벽처럼 고정되어 불가능했지만, 고구려의 침입 이후로 사회의 변동이 일어나, 하수위인 박씨, 고씨가 상수위가 되어 1품직에 오르는가 하면 상수위인 뇌질씨가 4수위로 족강되는 등 씨품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박지가 말했다.

그럼, 반대가 없는 고로 만장일치로 제 아들 구야를 고구려로 보내는 것으로 결정하겠소.”

예잇.”

대소신료들이 눈치껏 반대 없이 그 안을 통과시켰다.

그때 대정전의 휘장 뒤에서 돼지 멱따듯 큰 소리가 들렸다.

누구 맘대로 박구야를 고구려에 보내? 고구려에는 후누 군신지의 아들 꺽감을 보내겠소.”

휘장을 걷고 나온 사람은 비만한 몸을 이끌고 나온 대가야의 도독 고상지였다.

박구야 대신 꺽감을 고구려로 보내겠다는 고상지 도독의 말에 박지와 대소신료들은 놀랐고, 아이의 양아버지인 후누 장군마저 놀라 어리둥절했다.

 

대가야를 떠나기 전날 꺽감은 어리지만 자신의 운명의 축이 다시 한 번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가야의 밤이 깊었다. 뒷산의 부엉이도 울다간 끝에 새벽 박명이 까만 어둠의 천을 한 꺼풀 벗겨냈다. 양아버지 후누는 꺽감을 깨워 저택의 방 한 칸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황금갑옷과 철투구, 환두보검이 걸려 달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후누는 꺽감에게 말했다.

꺽감아, 이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가야의 병사들이 사용하는 무구입니다.”

맞아. 그런데 이 무구들은 특별하단다.”

후누는 황금갑옷 미늘과 보검 장식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하령 선대왕께서 쓰시던 것이지. 나는 이 옷을 입은 선왕과 함께 가야 철기군을 이끌고 열두 가야를 평정하고 고구려와 싸워 이기기도 했지.”

지금은 우리 대가야가 고구려의 땅이지요.”

고구려의 지배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대가야의 정신이 묻어 있는 땅이란다. 너는 이제 적국 고구려로 간다. 그곳에서 가서도 대가야인의 기상을 잃지 말아라.”

, 아버지.”

이 황금갑옷과 신검, 철투구와 대가야의 융성을 이루었던 하령대왕을 생각하며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뎌야 하느니라.”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

꺽감은 후누에게 절을 했다.

후누는 꺽감의 절을 받으며 오히려 마음속으로 큰 절을 올렸다.

꺽감 왕자님, 제 아들의 목숨과 바꾼 것을 아십니까? 가야의 흥망이 오로지 왕자님의 두 어깨에 달려 있습니다. 부디 대어가 되어 다시 낙동강 모천으로 돌아오십시오.’

다음날 아침 고상지 도독과 수경은 꺽감을 데리고 대가야 어라성을 나와 고구려 국내성으로 향했다. 대가야에서 고구려로 가는 길은 해로와 육로 두 갈래 길이 있었다. 해로는 대가야에서 회천과 낙동강 수로를 타고 남으로 내려가 금관가야에서 남해안과 서해안의 연안해로를 따라 압록강의 국내성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육로는 금산재를 넘어 성산가야(성주)와 달구벌(대구)을 지나 국원(충주)으로 가서 아리수(한강)를 건너 고구려 국도를 타고 들어가는 길이다.

말타기에 익숙한 고상지는 주로 육로를 이용해 국내성에 들어갔으나 이번에는 해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말을 달리는 육로는 빠르지만 몸이 피곤했다. 하지만 해로는 한꺼번에 많은 사람과 물화를 실을 수 있었다. 특히 가야배는 흘수가 깊은 평저선이라 안전하고, 좌우의 노가 일본과 중국 배보다 두 배가 많아 속도가 빨라 좋았다. 무엇보다도 수백 년 동안 해상강국이었던 가야에는 노련한 뱃사공과 방향을 잡는 조타수가 많았다.

배는 대가야의 회천나루를 떠나 낙동강 칠백 리 물길을 따라 금관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상지는 용선 선실 안의 호화로운 침대에 앉아 수경에게 말했다.

수경부인, 당신은 미인에다 현명한 여자야.”

도독의 말에도 수경은 말없이 선창으로 지나가는 낙동강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바야흐로 배는 낙동강 물줄기를 타고 내려와 하류 삼각지인 금관항을 지나고 있었다. 해는 서산에 머물다 지는 순간이어서 낙동강 물결은 온통 금가루를 뿌린 듯 반짝였다. 소나무와 갈참나무 숲은 수묵화처럼 그윽했고, 삼각주 갈대밭에서는 시원한 갈대바람이 불어왔다.

고상지는 수경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박지 아들이 물먹은 꼴을 보니 속이 다 후련하군.”

칠뜨기 같은 박지 아들 구야를 거련 왕자의 동무로 데리고 가면 가야의 망신이에요.”

박지 집사의 말로는 구야가 보통 똑똑한 아이가 아니라던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 한다고 하지요.”

수경은 고상지에게 미인계를 써서 결국 조정회의에서 박지의 뜻을 꺾었던 것이다.

고상지는 배안에서도 수경을 소유하려고 했다. 고상지는 그녀를 완전히 소유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그가 손으로 지분거릴 때마다 소름이 끼치며 몸을 움츠리며 우웩우웩 토하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 난 왜 이리 배멀미가 심할까요.”

놈의 더러운 손이 닿을 때마다 칼로 내 아이를 벤 책임을 네 놈에게 반드시 묻겠다며 뼈아프게 확인을 하고 또 했다.

용선의 이물에는 거대한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고 고물에는 가야 특유의 네 날개의 바람개비 문양이 장식되어 있었다. 용선은 순풍을 만나 강에서 바다로 미끄러져갔다. 고상지는 배가 정박할 때마다 금관가야와 포상팔국(포상팔국: 전기가야 때 낙동강 하류와 경남의 남해안 일대에 있었던 8개의 소국으로 골포국, 칠포국, 고사포국, 사물국, 고자국, 보라국 등이 이에 속한다.)에 풀어놓은 세작들로부터 첩보를 수집했다.

도독으로서 밥값을 한 유일한 일이군. 조금만 기다려라. 이제 고구려에 도착하면 네 모가지는 떨어질 것이야, 어리석은 놈!’

수경은 도독을 보며 말했다.

꺽감과 고구려로 떠나기 전날 밤, 수경이 박지의 저택에 은밀히 찾아가, 수경을 보고 길길이 날뛰는 박지에게 말했다.

집사님, 고상지보다 내가 더 밉지요?”

간밤에 무슨 야료를 부렸는지 하루아침에 자신의 아들 구야 대신에 꺽감을 고구려에 데려가게 만든 수경이 때려죽일 정도로 미운 건 사실이었다. 그동안 박지는 수경과 몇 차례 관계를 가졌으나 화간이 아니라 겁박에 의한 교접일 뿐이었다. 박지는 하령왕의 아들이 살아있다는 유언비어를 조사하면서 왕비의 아이를 받았던 수경을 잡아들여 고문했다. 수경은 끝까지 부인했지만 박지는 그것을 빌미로 호시탐탐 노렸던 수경의 몸을 늑간(勒姦)했던 것이다.

늑간을 당했던 여인이 제 발로 찾아오자 박지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강약이 부동이다. 이미 자식의 고구려 유학은 물 건너 간 것이고 새로운 상황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현명한 법이다.

수경은 침대의 하얀 휘장을 걷고 들어가 스스로 옷을 벗고 투명한 물잠자리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미인계인가? 한번 이 길로 접어드니 두 번째는 자연스럽고 별로 두려운 게 없었다. 미인계는 사실 높은 수준의 지능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지저분하고 확고한 의지로 효율을 극대화 시킬 것을 요구할 뿐이다. 거기에는 도대체 기쁨도 없고 고통도 휴식도 진정성이나 해학도 없었고 오직 목적과 계략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남녀간의 교접에서 오는 만족감이 전혀 없지는 않았으나 칼질한 생선회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처럼 토막 맛이었다.

박지도 서둘러 옷을 벗었다. 앞가슴이 훤히 비치는 옷 너울에 비치는 그녀의 몸매는 황홀했다. 호리호리하게 깡마른 염소 얼굴의 박지 아랫도리에서는 약근이 발끈했다. 박지가 뒤에서 수경의 물잠자리 날개옷을 걷어 올리자 미끈한 엉덩이가 드러났다. 박지가 염소수염을 쓰윽 한 번 쓰다듬더니 몽실한 젖무덤을 움켜잡고 뒤에서 교접했다.

수경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도독은 어떻게 할 거예요?”

어떻게 하면 좋겠나? 난 정말 이번 기회에 도독을 다른 곳으로 쫓아버렸으면 좋겠어. 그동안 내가 바친 뇌물이 얼만데 나에게 그따위 통수를 치다니.”

염려 놓으세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두 창고 안에 가득한 뇌물 목록만 태왕께 바쳐도 도독 직에서 해임될 거예요.”

, 그렇겠군.”

박지가 뒤에서 움직이며 말했다.

그것만으로는 안 돼요. 보고서엔 고상지가 왕비와 사통하고 태왕의 명을 어기고 내 아이와 바꾸어 죽였다고 적어야 해요. 그래야 왕명을 기만한 것으로 도독과 왕비가 죽게 될 거예요.”

, 수경! , 이제야 아이를 바꾼 것을 자백하는 거야?”

부드러운 염소의 목소리가 놀라 와들와들 떨리고 옥문 안에 들어 있던 박지의 약근이 전율을 일으키다 석 죽어버렸다. 수경은 도독과 왕비까지 죽여 버리고 자신이 꺽감의 어미가 되어 왕비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했다.

박 집사, 짐작하고 있었으면서 뭘 그리 놀라시는 거예요? 아이를 바꿔치기 한 것과 뇌물에 관한 보고서는 집사님이 직접 쓰셔야 합니다. 파발마로 달려 국내성에 도착하되 보고서는 반드시 장화황후 앞으로 전해져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집사에서 해임될 거예요.”

수경, 미인의 혀 밑에는 독이 들어 있다는 옛말이 거짓이 아니군. 당신은 예쁘지만 정말 무서운 여자로군.”

박지는 누구보다 노회했지만 수경에게만은 옴쭉달싹할 수가 없었다. 또한 그의 이름 박지가 박쥐와 닮았듯이 어떤 외부적 상황이 그가 스스로 규정해 놓은 일의 절도를 헝크러뜨릴 수는 없는 자는 아니었다.

용선은 연안해로를 타고 북상하여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 마침내 국내성 나루에 도착했다. 가야에서 온 일행들은 고구려의 왕궁인 북쪽 환도성으로 들어갔다.

광개토대왕은 북방영토에 순수하러 가서 없고 대신 장화황후가 환도성 내정에서 가야에서 온 일행을 맞아주었다.

내정에 있는 장추전 보좌에 앉은 장화황후는 아름다움보다 위엄이 승한 여인이었다. 고구려의 거족인 절노부 출신의 장화왕후는 여자로서는 큰 키에 엄한 눈매와 날카로운 콧날, 일매진 입술이 첫눈에 범접할 수 없는 범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얹은머리에 이글거리는 불꽃형 금관식을 꽂고, 날아가는 용무늬의 자색 저고리와 치마를 입었으며, 허리에는 요령을 매달린 금구혁대를 하고 있었다.

고상지와 수경, 꺽감은 보좌에 앉은 장화황후에게 절을 하였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허리띠에 매달린 요령들이 딸랑거리며 소리를 내었다.

장화왕후는 고상지와 수경이 데리고 온 꺽감을 보고 말했다.

이 아이가 무예가 출중하고 총명하다는 가야 아이 꺽감인가?”

고상지가 장화황후에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마마. 대가야의 군신지 후누 장군의 양아들 꺽감입니다. 건강하고 총명할뿐더러 아이답지 않게 배려심도 깊어 거련 태자의 동무로서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장화황후는 광개토대왕이 정벌한 각나라 왕들의 자제를 볼모로 잡아온 아이들의 면면을 보면 한결같이 용모가 단정한데다 건강하고 활달해 병약한 거련과 비교되어 늘 마음이 상했다.

황후가 고상지에게 비꼬듯 말했다.

태자의 동무로서 손색이 없다? 그래봤자 가야의 아이 아닌가?”

예상 밖으로 튀어나온 황후의 말에 고상지는 잔뜩 움츠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가야 땅에서 무슨 인물이 나겠습니까? 그저 태자마마의 말등자나 되어주고 잔심부름하는 일을 하러 온 아이입니다.”

꺽감아, 우리 태자와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겠느냐?”

꺽감이 고개를 숙이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 마마. 거련 태자님과 사이좋게 지내겠습니다. 하지만 고상지 도독의 말처럼 태자마마의 말등자나 되어주고 잔심부름 하는 일을 하기 위해 이 먼 길을 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태자마마와 장유유서의 형제관계이지 주종관계는 아니라 생각하고 올라왔습니다.”

오호, 어린 것이 참으로 맹랑하고 똑똑한 아이로구나. 그래 네 말이 맞다. 주종관계로 비루하게 자라서도 안 된다. 천신녀의 말에 태자가 이 가야아이와 함께 있어야 건강이 좋아진다 하니 형과 아우관계로서 좋은 말벗과 어깨동무가 되어야 한다. 그럼, 가야왕비였던 갈성소후를 들라하라.”

장화왕후의 명령이 떨어지자 여옥이 장추전으로 들어와 황후에게 예를 갖췄다.

소후, 자네 뜻대로 똘똘한 가야의 아이 하나가 왕경에 왔네. 인사 하시게.”

소후는 고상지 도독과 수경, 꺽감을 보고 인사를 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수경이의 손을 잡고 있는 꺽감을 보며 가까이 다가갔다.

네가, 수경부인의 아들인 꺽감인가?”

총명하게 빛나는 눈빛과 오똑한 코, 야무진 입과 늠름한 기품이 하령왕을 빼닮았다. 낳자마자 젖을 채 물릴 틈도 없이 헤어진 아이지만 첫눈에 자신의 아이라는 걸 직감하자 자기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여옥은 자기의 아이를 대신 희생한 수경이 너무나 고맙고 반가워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애써 참다 참다 참지 못해 어깨를 들먹거리며 눈물을 흘리며 수경을 잡고 포옹했다. 수경도 여옥의 손을 잡고 포옹했다.

여옥과 수경의 포옹이 끝나고 여옥이 꺽감의 손을 잡으려 하자 수경이 여옥의 손을 손등으로 탁 쳐내며 인사를 했다.

소후마마, 그동안 강녕하셨는지요? 제 아이 꺽감은 그동안 제가 건강하게 잘 키웠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