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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왕용의 시읽기 19> 김석규의 봄을 기다리며

작성일 : 2021.02.13 09:48 수정일 : 2021.02.13 09:51

봄을 기다리며

김석규

 

나무들 사이로 언뜻언뜻 봄이 비친다

이마에 칼자국 남아 있는 북풍

이제 성엣장에 실려 냇물을 건넜고

새파랗게 저물어 오는 하늘 끝

붉은 놀 아아라한 연봉 헹가래칠 때

귀로에 오르는 새들의 걸음이 가볍다

해토머리 흙냄새를 맡았는지

해종일 양지뜸에 소색거리는 꽃씨

언제쯤 꽃 피울지 점장이 찾아가고

내처 가는 봄이 그리도 아쉬웠던 사람

달력에다 꽃의 생일을 받아 놓는다

 

-월간 시문학20162월호

 

 

*김석규(부산, 서구) 1941년 경남 함양 출생, 196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현대문학에 청마 유치환 추천으로 등단, 현대문학상, 경상남도 문화상(문학부문), 부산시 문화상(문학부문) 등 수상. 시집파수병(1967)을 출간한 이래 시월은 다시 돌아와 (2015 등 매년 한권씩 50권에 가까운 시집을 내고 있음.

 

 

김석규 시인은 부산에 얼마 되지 않는 등단 50주년을 넘긴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경남과 울산에서 교사와 전문직을 거쳐 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교육자이지만 부산에 집을 두고 출퇴근하면서 부산에 정착한지 오래 되었다. 그는 경남교육청에서 장학사로 혹은 장학관으로 근무할 때 지방 출장이 잦았는데 그 때마다 차창 밖의 풍물이 한 편의 시가 되곤 했다. 요즈음도 그는 하루 한 편씩 시를 쓴다고 한다. 이렇게 시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이 거의 1년에 한 권 꼴의 시집을 발간한 원동력이 되었다.

여러 해 전 필자는 그의 출장길의 풍물시를 월평에서 언급한 바 있다. 봄을 기다리며는 앞에서 밝힌 대로 20162월호 시문학그리운 겨울소한 무렵이라는 겨울 시편 둘과 함께 발표한 시이다. 겨울 시 2편이 모두 시인의 고향인 경남 함양에서의 유년기의 풍경과 체험이 육화되어 있는데, 이 작품은 그 시절의 어느 겨울 끝자락 혹은 이른 봄이 시적 공간이 되어 있다. 따라서 물리적 시간으로는 70년이 훨씬 넘는 오래된 체험이 시의 모티브이다. 그런데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체험은 아주 미세하여 바로 지금 느끼고 있는 것과 같이 실감난다. 추운 겨울바람이 물러가고 강 건너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에 새들의 날개짓조차 가볍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감각적 이미지의 극치는 해토머리 흙냄새를 맡았는지/해종일 양지뜸에 소색거리는 꽃씨라는 부분이다. ‘해토머리라는 방언은 해빙되어 땅이 부드러워질 무렵이라는 뜻이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독자들은 땅이 해빙되면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새 순이 돋아나는 봄날 양지쪽에서 놀던 때가 생각날 것이다. 따라서 오래 전의 체험이라도 지금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이런 시간구조를 서정시의 시간 구조 즉 영원한 현재라고 하는데 이 작품은 그러한 점에서 전형적인 서정시이다.

문제는 감각적 이미지로 끝나면 감동이 감하여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감각적 이미지로만 끝나지 않고 내처 가는 봄이 그리도 아쉬웠던 사람의 행위 즉, 꽂이 언제 필지를 점쟁이에게 찾아가서 알아내어 그날을 미리 달력에다 적어 놓는 행동에서 사람 냄새를 풍겨 더욱 감동적이게 한다.(양왕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