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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책상과 밥상 사이> 19. '영끌과 티끌' '팬덤과 도그마'에 관한 단상

작성일 : 2021.02.08 02:39

‘영끌과 티끌’, ‘팬덤과 도그마’에 관한 단상

 미국 비디오 게임 유통업체 ‘게임스톱’ 사례가 수많은 ‘영끌들’을 흥분시켰다. 공매도에 나섰던 헤지펀드가 엄청난 손실을 보고 개인투자자들이 승리했다는 이야기다. 불개미의 맹공으로 주가가 급등하여 시간당 44억을 벌어 순식간에 돈방석에 올라앉은 어느 개인투자자의 기사를 보며 이 땅의 영끌들은 기대감에 부풀었만 최종 결말은 알 수 없다. 부동산과 주식에 ‘영끌 빚투’가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대박 스토리가 이어지면서 오랫동안 우리 의식 속에 금과옥조로 자리 잡고 있던 ‘티끌 모아 태산’이란 속담이 폐기될 위기에 처해 있다. 재래시장에서 콩나물값 일이백 원을 아끼려고 손을 발발 떠는 주부가 이제 칭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영끌’의 안중에 ‘티끌’은 없고, 거리에는 ‘대박’ 아니면 ‘쪽박’만 굴러다니고 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조차도 설득력을 잃고 있다. 처음이 미약하면 나중도 기대할 것이 없고, 시작이 거창해야 나중도 창대하게 되는 세상이다.

 ‘영끌’이란 말은 ‘영혼까지 끌어모아’의 줄임말이다. 처음에는 젊은이들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영혼까지 담보로 맡기고 주택 자금을 끌어모은다는 의미로 쓰였다. 지금은 모든 연령층에서 많은 사람이 주택과 부동산, 주식 투자를 위해 ‘영끌한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조차도 “영끌해서 집을 사면 큰 부작용에 부딪힐 수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제 ‘영끌’이라는 말은 장관,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구사하는 보편적인 단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영끌’이란 말속엔 ‘기존의 방법으로는 길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절망적인 몸부림, 막다른 골목’이란 뜻도 내포되어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독설과 독단, 극단이 지나치게 위세를 떨치는, 비정상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정치와 종교에서 특히 심하다. 정치란 흙탕물에서 연꽃을 피워내는 종합예술이다. 서로 다른 정치적 야망을 품은 사람들이 정치적 이상을 구현하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고 논쟁하면서도 상호 양보와 합의를 통해 결국은 한 송이 연꽃을 피워내야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 정치는 그렇지 못하다. 어느 한쪽에 줄을 서서 자신이 속한 패거리를 위해 상대를 적폐 세력으로 몰아붙이며 온갖 악담과 저주를 퍼부어야 한다. 

 팬덤(fandom)은 “광신자를 뜻하는 ‘퍼내틱(fanatic)’에서 유래한 ‘팬(fan)’과 ‘영지(領地)‧나라’ 등을 뜻하는 접미사 ‘덤(-dom)’의 합성어로, 특정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대중문화의 열렬한 ‘오빠 부대’가 팬덤의 시초로 여겨지는데 지금은 정치에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태극기 부대’, ‘문파’, ‘조국 수호 연대’ 같은 팬덤의 덫에 갇히면 객관적 사실은 중요하지 않고, 속한 무리의 주장과 믿음에 반하는 것은 모두 가짜 뉴스로 치부해 버린다. 팬덤 정치의 포로가 된 사람은 어떤 논리로도 설득할 수 없는 광신도와 비슷하다. 도그마(dogma)는 “이성적인 비판이 허용되지 않고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교리(敎理)나 교의(敎義), 독단적 신조”를 의미한다. 그래서 종교의 교리와 정치적 독단(political dogma)은 서로 궤를 같이한다. 팬덤과 도그마는 속성상 ‘이성’보다는 ‘감성’적 언어를 선호한다. 거기에 갇힌 사람들은 격렬하고 과격하며 후안무치와 적반하장격의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정치집회와 비정상적인 종교집회가 코로나19 방역의 최대 장애 요인이지만, 그 덫에 갇힌 사람들은 그들만의 도그마를 믿고 따를 뿐 방역 당국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것 아니면 저것’, ‘내 편 아니면 적’, ‘대박 아니면 쪽박’ 같은 이분법이 위세를 떨치는 사회에서는 상황을 지켜보며 합리적 대안을 찾으려는 사람은 무력감과 박탈감,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차근차근 다지면서 점진적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은 여전히 존중받아야 한다. 상식과 이성, 합리적 사고에 근거하여 현실을 인식하고, 아무 두려움 없이 다양한 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서로 다른 목소리를 기꺼이 경청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건강한 사회를 위한 의식 대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윤일현(시인, 대구시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