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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수프 20>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작성일 : 2021.02.05 12:23 수정일 : 2021.02.05 01:13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양선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는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쓴 일종의 승리(勝利)소설이다. 나는 기계는 오래 견디고 동물은 생존한다. 그러나 오직 인간만이 숭리할 수 있다라는 윌리엄 포크너의 말(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을 좋아하는데, 소설 중에서도 그런 테마를 가진 것들을 골라서 따로 승리소설이라고 부른다. 물론 내 멋대로 붙인 이름이다.

미국의 젊은 대학 강사 로버트 조던은 스페인 내란에서 반()프랑코파의 게릴라 부대에 의용군으로 참가한다. 조던은 거기서 마리아라는 여인을 만나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마리아는 내전의 상처가 깊었던 열아홉 살의 소녀인데 조던을 만나 참혹한 상흔을 딛고 열정적인 사랑을 경험한다. 한편 그들은 군사적인 요충지인 산중 대철교의 폭파 임무를 부여받고 그 지역의 사정에 밝은 여성 집시 지도자 필라의 도움을 받아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다. 그러나 퇴각하던 과정에서 조던은 적군의 포격으로 부상을 입는다. 조던은 떨어지지 않겠다는 마리아를 설득하고(필라가 강제로 그녀를 데리고 간다) 자신은 홀로 남아 기관총을 쏘며 동료들의 탈출을 돕는다. 소설은 이들 남녀 주인공이 이 폭파 임무를 수행하는 3일 동안의 불꽃같은 사랑과 투쟁의 궤적을 그린 것이다. 헤밍웨이는 자신이 터득한 행동의 깊이를 소설로 옮긴 작가로 유명하다. 이 작품 역시 자신의 참전 경험이 바탕이 되어 쓰여진 것으로 격변기의 인간들의 사랑과 투쟁이 행동의 구체성을 담보한 채 생동감 있게 묘사되고 있다.

외우(畏友) 이재태 경북대 의대 교수가 종소리, 세상을 바꾸다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종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낸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였다. 그 이유는 이렇다. 소년 시절부터 궁금했던 것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이 소설 제목이 지닌 함의(含意)였다. 제목에 사용된 종이 조종(弔鐘)이고 묻지 마라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느냐고,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린다라는 뜻이라는 설명이 있기는 했지만, 선뜻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 궁금증이 시원하게 풀리지는 않았다. 작가가 자신이 쓴 이야기에 제목을 붙이는 일은 이를테면 화룡점정(畵龍點睛)에 비견될 수 있다. 제목을 제대로 붙이면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독서대중의 눈에서 벗어나 범작(凡作) 취급을 받고 영영 무관심 속으로 사라진다, 그만큼 제목의 힘이 크다. 독서의 첫걸음이 바로 제목의 의미가 작품의 어느 부분에서 결정적으로 해명되는가를 아는 일이니 독서대중의 제목에 대한 편애를 탓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제목의 함의는 작품을 통틀어 최소한 절반 이상의 비중을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라는 제목의 뜻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결국 내가 그 소설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했다는 말이 되는 셈이었다. 그렇게 무지몽매(無知蒙昧)한 상태로 수십 년을 보냈는데 이번에 계시가 내려왔다. 이교수의 종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매달 배달되는 그의 깊고 친절한 종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어떤 주관식 답안지같은 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서 기록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 줄로 요약하기 어렵지만, 우리의 삶은 늘 갱신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고, 그것은 희생과 헌신, 조건 없는 사랑을 통해서 구현될 수 있으며, 지상의 모든 종들은 그것을 일깨우는 하나의 표상이다, 대강 그런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제목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구원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 ‘사랑 없는 구원도 가능한가’, ‘악은 어떻게 극복되는가’, ‘행동 없이도 선의 실현은 가능한가등등의 구구한 물음들을 이라는 상징을 사용해 일괄 총체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제 한 몸으로 감싸는 상징이었다.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순전히 내 멋대로 쓴 주관식 답안지였지만.

종소리, 세상을 바꾸다는 네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울리고, 깨우고, 밝히고, 바꾸는, 종의 신호로부터 상징에 이르는,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종과 그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깊이 있게 서술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종의 인문학이다. 하나의 종이 탄생하기까지에는 우리가 기억할 만한 역사적, 철학적, 문화적 배경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물론 단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그런 앎을 통해 우리가 도달해야 할 윤리적 귀착점이 어디쯤인가를 넌지시 가리키는 것도 이 책은 잊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의 종 이야기를 접하면 다음 종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절로 일어난다. 내 안의 욕망, 내 안의 희열, 내 안의 좌절, 내 안의 믿음 등 다양한 나의 이야기들이 그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붉은 유리 종으로 손잡이는 여왕의 반신상 모습을 하였고 드레스의 스커트는 붉은 유리이다. 1813년경 폴란드에서 만든 것으로 추측되며, 유리에 붉은 에나멜 칠을 하고, 손으로 그린 구름 모양의 흰색-푸른색 무늬가 에나멜 칠 위에 그려져 있다. 손잡이는 왕관을 쓰고 정장을 한 순은제 여왕queen이다. 영어로 Queen은 여왕뿐만 아니라 왕비를 말하기도 하므로 폴란드의 왕비이거나, 또는 이 시기 폴란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였던 나폴레옹1세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마리 루이사를 모델로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본서 4-1 ‘폴란드의 왕비’)

개인적으로 이 책에 소개된 종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 폴란드 왕비에 대한 설명이다. 손잡이는 여왕(왕비)의 상반신을, 종 몸체는 풍성한 치마를 배치한 종인데 상하의 에나멜 색감의 대비가 너무 좋다. 주인공을 특정하는 저자의 설명도 유연하다. 여왕인지 왕비인지, 폴란드 왕비인지 마리 루이사인지 단정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상상을 소개할 뿐이다. 독자는 저자의 그런 부드러운 안내를 따라서, 그 종을 만든 장인은 누구일까? 이 아름다운 종은 맨 처음 누가 소지했을까? 그리고 이 종을 소지하면서, 가까운 곳에 두고 보면서, 한 번씩 통랑한 종소리를 듣고자 했던 그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색감의 정조(情調)들이 흘렀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러면서 세속의 먼지들이 가득 내려앉아 있는 내 책상을 툭툭 한 번 털어본다.

무릇, 인간이 만든 기물(器物)에는 길흉화복, 예외 없이 인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 도깨비 이야기에는 쓰다 버려진 기물들이 도깨비로 변해 길흉화복의 전달자로 활약하는 장면이 곧잘 등장한다. 그런 내용 속에는 우리 주변의 기물들을 허투루 보지 말라는 어떤 사려 깊은 권고가 담겨 있다. 인생에는 어느 것 하나 하찮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허투루 보지 않기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인간이다. 이교수가 종을 모으는 행위를 수집이란 물건에 다시 혼을 불어넣는 행위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그러한 가리지 않는 인간사랑의 실천에 대한 환유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인간 이재태도 좋아하고, 그의 종도 좋아하고, 그의 종 이야기도 좋아한다.

마지막으로, ‘나를 울린 종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면서 이 팬레터 쓰기를 마치기로 한다. 얼마 전에 집사람과 함께 <검은 사제들>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배우 김윤석과 강동원이 구마(驅魔, 마귀를 몰아 내쫓음) 전문 사제로 나와 열연한 영화였다. 이야기 전개가 속도감이 있고 장면 묘사가 리얼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본 영화다. 너무 몰입이 되었는지, 목숨을 걸고 마귀와 싸우는 주인공들을 보고 나오면서 갑자기, 신심도 없는 주제에, “세상의 악을 없애시는...”이라는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내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이거든!”이라고 면박을 주기도 했었다. 면박을 받으면서도 속으로는 그게 그것 아닌가?”라고 반발했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열심히, 재미있게 본 영화가 <검은 사제들>이었다. 그런데 영화의 클라이맥스 때 사용된 종(구마의식의 필수 도구)이 바로 이교수가 제공한 종이라는 거였다.

....영화사로부터 구마 의식의 클라이맥스에서 사제가 종을 울리며 귀신을 쫓는 장엄한 장면에 잘 맞는 종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기독교 모티브의 묵직한 청동 종 몇 개를 소품담당 직원에게 챙겨주며 감독과 상의해보라고 했더니, 감독은 그 중에서 복음 전도자(evangelist)의 종을 선택하였다. 영화에서는 고대 수도승들이 영()이 들린 동물이 있는 숲을 지날 때 쳤다고 전해지는 프란체스코의 종으로 소개되었다. 이 종에는 예수의 행적을 그린 신약 성서의 4 복음서를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성인의 이름과 그들의 상징인 날개 달린 사람, 성 마르코의 사자, 성 누가의 날개 달린 황소와 독수리가 새겨져 있다. 펠리칸이 새겨진 전도자의 종도 있다. 펠리칸은 자기의 옆구리를 쪼아서 피가 흘러내리면 그 피로 새끼를 살린다고 알려져 있다. 성서에는 로마병사의 창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옆구리를 찔러서 피와 물이 솟구쳤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펠리칸은 십자가에 박혀 피를 흘려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의 상징으로 믿어진 것이다. 중세 이후에 제작된 많은 기독교 예술품에는 예수의 상징으로 펠리칸이 묘사되어 있다.(이재태의 종 이야기 51 프란체스코종과 마녀사냥)

영화 속 구마의식의 정점에서 강동원이 흔들던, 화면 전체에 클로즈업되던, 바로 그 종이었다. “어둠은 물러가고 이제 그의 날이 올 것이다라는 주문과 함께 화면 전체를 울리던 그 종소리, 오래되어 친숙했던 그 통랑한 소리를 잊을 수 없었다. 그 종이 이교수의 종이었다니, 그 장면에서 걷잡을 수 없는 전율을 느꼈던 나에게는 정말 짜릿한 소식이었다. 내게 가까운 것들 중에 그렇게 높이 된 것이 또 있었던가? 먼저 영화를 보고 그 소식을 접한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면서 지금 영화를 다시 보고 있다. 그 장면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전에 못 보았던 것들이 새롭게 눈을 즐겁게 한다. 그 단아하고 무겁고 거룩한 종 모양이 이제야 비로소 확연하게 자태를 드러낸다. 표면의 무늬들조차 선명하다. 종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에서는 거역할 수 없는 전율감마저 감돈다. 느낀다. 주문을 타고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내 몸을 마구 흔든다. 정말이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다.

< 소설가 /대구교육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