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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11.19 01:23
대입, 다양한 선발 방식 생각할 때다
/윤일현
해마다 수능시험 치는 날 전후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오늘은 출퇴근 시간이 조정되고, 듣기 시험에 지장을 줄까 봐 비행기 이착륙도 제한받는다. 수험생이 있는 가정은 아침부터 시험이 종료되는 순간까지 초긴장 상태로 하루를 보낸다. 자녀가 어린 젊은 부모는 목전에 전개되는 수험생과 학부모의 긴장과 불안을 보며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양육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가를 생각한다. 대학에 다니는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는 수능시험에 의해 희비가 엇갈리던 그 순간을 기억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 하거나, 그때 한 문제만 더 맞혔더라면 하면서 여전히 지나간 일을 두고 아쉬워한다. 직장인은 우리 사회에서 학력과 학벌이 아직도 얼마나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확인하며 자신의 행운에 감사하거나 씁쓸한 마음을 혼자 조용히 달래기도 한다. 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사람들은 그 모든 순간을 젊은 날 보았던 전쟁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담담히 돌아보기도 한다.
우리는 많은 분야에서 패자 부활전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대학입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무수한 경쟁 중에 가장 치열한 단판 승부다. 초등부터 고교 3년까지,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수능 점수가 잘못 나오면 그 모든 것은 허사가 되고 만다. 현행 수능시험은 운전 면허 필기시험처럼 일정 점수 이상을 받으면 모두에게 동일한 자격을 주는 자격시험이 아니다. 수험생을 성적에 따라 한 줄로 세워 놓고 대학 서열에 따라 끊어먹기식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현행 대입전형 방법은 소수에게는 더없는 기쁨과 성취감을 준다. 합격선 안에 들지 못한 학생들은 심한 패배감과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제 수능과 대학입시의 관계를 좀 더 냉정하게 바라봐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우리는 지금 대학 신입생 모집 정원보다 수험생이 모자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의예과를 비롯한 일부 취업 유망학과와 인기 학과는 수능시험을 두세 번 치러야 입학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전체 수험생 중 상위 20% 안에 드는 학생들은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입학하기 위해 수시와 정시에서 피 말리는 눈치작전을 전개해야 한다. 반면에 상당수의 지방 대학은 정원 미확보로 존폐의 갈림길에 몰려있다.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지방 중하위권 대학의 비인기 학과는 모집 요강 자체가 필요 없다. 대학이라는 체면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모집 요강을 그냥 ‘선착순’이라고 해도 된다. 전체 수험생의 절반 정도는 수능성적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 학생들을 뽑아야 하는 대학은 수능 전 과목을 요구하지 말고, 그 학과 공부에 필요한 자질을 판단할 수 있는 면접만으로 정원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수능 과목 외의 자질이 훨씬 더 중요한 학과도 많을 것이다. 수학이 중요한 학과에 국어가 당락을 결정하거나, 국어가 필요한 학과에 수학 점수가 당락을 좌우하게 해서는 안 된다. 대학과 학과가 자율적으로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수능이라는 단일 잣대는 필연적으로 수능 점수에 따라 대학을 서열화한다. 다양한 전형 방법으로 선발하면 다양성이 부각되어 대학의 위상과 학생의 자존감은 높아질 것이다.
교육이 경화되어 유연성을 상실하게 될 때 기존의 선망 받는 직업에 모든 인재들이 벌 떼처럼 달려든다. 의사 지망생과 각종 고시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사회가 그만큼 경직되어 있다는 증거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가 도전과 모험보다는 안정된 직장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큰가를 반영한다. 한정된 자리를 위해 치열한 소모적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스스로 새로운 ‘자리’를 창조하려는 분위기가 가득할 때 사회는 젊음과 탄력성을 유지하게 된다.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탐하기보다는 자신의 ‘햇볕’을 지키고 즐길 수 있는 디오게네스적인 인간형이 존경받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자리를 창조하고 그 공간을 의미 있게 확장할 줄 아는 열정적인 삶의 본보기를 제시하고,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경쟁과 긴장을 즐길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오늘 아침 고사장으로 가는 수험생들이 너무 긴장하지 말고, 수능시험은 성장 과정에서 누구나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모든 수험생이 아쉬움 없이 실력 발휘를 할 수 있길 기원한다.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