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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1.30 08:50
금과 은, 빗속을 둘이서
/이승주 시인
1
늘 일이 바쁘신 하느님
모처럼 짬을 내시어
인간세상을 청소하신다
비를 뿌려
국회의사당의 지붕을 닦고
아파트마다
황사로 얼룩진 창들을 닦으신다
앞산 뒷산을 닦고
마지막으로
풀썩풀썩 먼지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닦으시자
우리 눈의 화소수(畵素數)도
어느새 열 배쯤 높아졌다
세상이 본래대로
반짝반짝 깨끗해졌다
―이승주, 「하느님의 청소」
쨍쨍한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후두둑 굵은 빗발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교문을 나서던 아이들은 놀란 듯이 책보를 머리에 이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어떤 놈들은 문방구 속으로 뛰어들고 어떤 놈들은 남의 집 처마 밑으로 비를 피했다. 나는 그대로 소낙비를 맞으며 여느 때의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뛰어서 조금 빨리 집에 가나 천천히 걸어서 가나 집에까지의 거리는 달라질 리 없었다. 그 거리 동안은 어쩔 수 없이 비를 맞아야만 하니 서두를 일 아니라는 계산으로 재빨리 흩어지는 아이들을 내려생각했다. 교문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생각했으나 집에 닿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까지는 미처 생각이 못 미쳤던 초등학교 때 1학기 종업식이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비를 맞는 양은 ‘거리’뿐만 아니라 ‘시간’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식적으로, 체험적으로 배우고 난 이후에도 나는 방긋방긋 웃으며 피고지고 피고지는 비의 동그라미물꽃들을 무척 좋아하고, 날개를 단 맑은 실로폰소리의 빗소리의 화음을 좋아하고, 언제부턴지 ‘산성비’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는 비 맞기를 좋아했다. 비는 더러운 유리창 문이나 거리뿐만 아니라 풀썩풀썩 먼지 날리는 내 마음과 문명의 찌꺼기로 혼탁한 내 눈도 깨끗이 씻어준다고 생각했다.
2
너의 마음 깊은 곳에 하고 싶은 말 있으니
고개 들어 나를 보고 살며시 얘기하렴
정녕 말을 못하리라 마음 깊이 새겼던
오고 가는 눈빛으로 나에게 전해 주렴
이 빗속을 걸어갈까요 둘이서 말없이 갈까요
아무도 없는 여기서 저 돌담 끝까지
다정스런 너와 내가 손잡고
라라라라 라라 라라라라라
라라라라 라라 라라라라라
이 빗속을 걸어갈까요 둘이서 말없이 갈까요
아무도 없는 여기서 저 돌담 끝까지
다정스런 너와 내가 손잡고
라라라라 라라 라라라라라
라라라라 라라 라라라라라
사랑의 환희와 해후의 기쁨보다는 실연의 상처와 그로 인해 못 견디게 그리운 심정을 주로 노래하는 우리 가요에 있어 ‘비’는 대부분의 경우 「아마도 빗물이겠지」(이상열), 「눈물을 감추고」(위키리) 등에서 보듯 ‘눈물’과 동의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금과 은’의 「빗속을 둘이서」에서 비는 이별의 슬픔이나 사무치는 회한과 연모의 정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의 상관물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어지는 의례의 통로인 “아무도 없는 여기서 저 돌담 끝까지” 둘이서 말없이 손잡고 빗소리의 음계를 밟으며 내리는 빗속을 걸어감으로써 연인에게 “마음 깊이 새겼던” 마음을 이심전심하는 고백의 순간을 감싸는 성스러운 실로폰 화음의 은실(銀絲)이요, 그때 맑은 빗방울 하나 하나는 그 순간을 증언하는 수많은 눈동자가 된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말은 정녕 말로는 다 못하리라. 진정한 고백은 입의 말이 아니라 몸의 말씀이어야 하듯이, 사랑의 고백과 서약 또한 입의 말이 아니라 “눈빛”의 말씀이라야 진정이리라. 그리하여, 가장 진정한 고백은 가장 진정한 몸의 말씀이어야 하므로, 마음 깊이 새겼던 하고 싶은 말은 “오고가는 눈빛”이거나 다정스런 너와 내가 잡은 무언의 “손”의 전심(傳心)이 아니고는 안 되는 것이다.
한편, 「빗속을 둘이서」 이 노래는 “아무도 없는 여기” 이 외로운 우리가 외롭지 않게 우리네 일생의 길이 다하는 “저 돌담 끝까지” 세상의 빗속을 손잡고 함께 걸어가고 싶다는 청혼의 노래라 해도 어떨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시절과 사회 초년병의 시절을 지내오면서 여러 일로 이성과 만날 기회가 있을 때, 나는 그 이성과 두 번만 같이 걸으면, 특히 비가 내리는 날 우산을 같이 나눠 쓰고 어깨를 나란히 하여 걸어갈 때 그 이성은 모두 내 여자 같은 생각이 들곤 하였다. 모두 어여쁘고 사랑스럽고 무엇이든지 잘해주고 싶고 지켜주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때는 스스로 그런 사랑의 결핍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였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