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국악 다가가기
작성일 : 2021.01.21 07:37
왜 국악인가?
/제민이 가곡전수자
왜 국악을 해야 하는가? 음악은 세계의 공통어이므로 그냥 음악을 하면 되는 것이지 특별히 국악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국악을 하는 사람들도 이런 물음에 대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하거나, 신토불이라고 하면 너무나 공허하게 들립니다.
지금부터 1500년 전 가야국 가실왕은 음악과 말의 연관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나라의 말이 각기 다르니 성음이 어찌 하나일 수가 있겠는가 하고 악사 우륵에게 악곡을 짓도록 명령하였습니다(1). 가실왕은 당나라의 악기를 본 따서 악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노래는 그렇게 만들면 안 된다는 점을 알고 우륵에게 우리말에 맞는 악곡을 작곡하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언어가 다르면 음악이 달라야 한다는 점을 가실왕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언어와 음악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사훈 교수는 ‘예수 따라가며’(When we walk with Lord)라는 찬송가를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2).

가사는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입니다. 이 가사로 작곡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 ‘복음’, ‘우리’, ‘주를’ ‘순종’ ‘주가’ 같은 단어가 강조되어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여기에 강박이 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문장을 종지하는 단어 ‘네’ 와 ‘라’는 약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가사와 악곡은 맞지 않습니다. 강박으로 강조해야할 단어들이 모두 약박으로 처리되고 있고, 약박으로 해야 문장의 종지 단어가 강세를 받고 있습니다. 가사를 이렇게 웅변하면 얼마나 이상하겠습니까?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 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 오페라 레치타티보(recitativo)에서 억양이 우리말과 맞지 않아서 웃음을 자아내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라 트라비아타에서 집배원이 비올렛타에게 편지를 전달하며 “편지왔오”라고 끝말 ‘오’를 높여 말합니다. 우리말은 하향하며 종지하는데 이렇게 올려 버리면 웃기는 말이 되어 버립니다.
서양언어와 한국어는 구조가 다릅니다. 나아가 한국어 내에서도 지방에 따라 억양이 차이가 납니다. 각 지방의 언어는 방언의 억양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최종민 교수는 찾아냅니다(3). 음악을 광주 학생들은 ‘으마아악’하고 말의 꼬리가 생기도록 뒤로 밀어서 부드럽게 발음하지만, 부산 학생들은 ‘어막’하며 처음을 억세게 뒤를 흐리게 발음합니다. 이런 방언의 차이는 민요에 반영됩니다. 진도 아리랑은 ‘무운경 새재에느은 몇 구우우우빈가’처럼 부드럽게 밀어 올리거나 꺾어 내리면서 소리 내는데 반해, 밀양 아리랑은 ‘날 좀 보소오 날 좀보소오’로 처음을 억세게 노래합니다. 노래에 전라도와 경상도 방언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전라도 민요는 대개 3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궁 즉 중심음은 라이며, 하2는 미, 상1은 도(시)입니다. 미는 떨고, 라는 곧게 내고, 상1은 ‘도시’로 꺾어 내립니다. 다음 진도 아리랑의 악보를 봅시다.

‘아리아리랑’에서 기울임체로 쓴 아는 떠는 소리로 발성하고, ‘리랑’은 그냥 곧게 평성으로 내고, ‘아라리가났네“는 ‘아라리가아나아ㅆ네”로 꺾어 내립니다. 전라도 이외 지역 사람이 이 노래를 부른다면 일부러 ’미‘는 떨고, ’도시도시‘는 꺾어 내리도록 연습해야 하지만, 전라도 지역 사람들에게는 이런 식의 창법이 자연스럽다고 합니다.
미스 트롯 송가인은 전라도 민요의 창법으로 '한 많은 대동강‘을 부릅니다. 원래 이 노래는 1958년에 남성 가수 손인호가 불렀습니다. 송가인은 손인호와 몇 군데를 다르게 발성합니다.

“모 란 봉아”를 송가인은 “모 라아ㄴ 봉아”로, ‘을밀대야’을 ‘으을밀대야’로 부릅니다. ’란‘과 ’을‘에서 한번 구른 다음, 즉 전성(轉聲)하여 상행하는 창법을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립구나’를 “그리입구나”로 발성합니다. ‘구’에서 한번 구른 다음, 즉 전성하며 하행하는 창법을 씁니다. 그 외 우리말에 어울리는 박자도 송가인은 구사합니다. “대에 동 강 아”를 송가인은 “대-에 도-옹강 아”로 부릅니다. "대에'는 동일한 8분 음표. "동 강"은 동일한 4분 음표인데, 송가인은 앞 음을 길게 하고 뒤 음을 짧게 소리냅니다. 이런 박자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냅니다.
만약 송가인이 위의 “예수 따라가며”를 부르면 다음처럼 곡조를 바꿀 것입니다. 6째 소절 ‘우리 행 할길’은 ‘우리 행하알길’로 전성하며 상행하고, 두 번째 소절 ‘따라 가며’의 끝 음 ‘가’(D)에서 ‘며(C)로 하행할 때, 그리고 4번째 소절 ’순종하면‘에서 끝 음 ’하‘’(F)에서 ‘면’(E)로 하행할 때, ‘따라 가아면’, ‘순종하아면’처럼 ‘가’와 ‘하’음을 끌어내리는 퇴성(退聲)을 쓸 것입니다.
전라도 민요에는 3가지 기법이 있습니다(4). 그냥 소리내기 즉 평성, 떨기 즉 요성, 그리고 끌어올리거나 끌어내리기. 이 셋을 송가인은 대동강에서 적절하게 씁니다. 그녀는 그냥 원곡 가수 창법을 모방하지 않습니다. 송가인은 전라도 민요 창법으로 대중가요를 불러서 원래노래 보다 더 우리말에 어울리게 만들었습니다.
‘한 많은 대동강’ 노래는 가사가 현실성이 풍부합니다. 이 노래는 1958년에 나왔습니다. 그 시절에는 6.25때 월남한 이북사람이 많이 살았습니다. 이북출신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정서에 공감하여 대동강 노래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반면 오리지널 판소리나 민요는 가사가 현실성이 없어서 아무리 잘 불러도 히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판소리나 민요의 창법은 한국어의 발성에 잘 어울려도, 판소리와 민요 악곡에 현대성이 없어서 그것들은 인기가 없는 것입니다.
김영동의 조각배는 현대에 새로 만든 소위 국악가요입니다. 가사를 이렇습니다.
성난 물결 파도위에 가냘픈 조각배
이내 설운 몸을 싣고 하염없이 가는 여인아
봄바람 꽃바람 속삭임도 역겨워
깊숙한 늪으로 덧없이 갈껀가요
선율은 아름답지만, ‘가사는 한 많은 대동강’과 달리 현대성은 없고 공허합니다. 작곡자는 오늘 날 아무도 쓰지 않는 말로 노래를 만든 것입니다. 현재 국악가요의 개념은 잘못되었습니다. 국악 풍으로 작곡된 노래를 가수가 국악 풍으로 불러도 가사에 현대성이 없으니 노래에 듣는 사람이 공감할 내용이 없습니다.
“노래는 말을 길게 하여 율에 맟추는 것이다.”(歌 所以永言而和於律). 악학궤범 서문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노래에 쓰이는 말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어야 현대인에게 호소력이 있습니다. 만약 그 말이 옛날 사람이 쓰는 것이라면, 현대의 대중은 공감하지 못합니다. 트롯 같은 대중가요는 현대어로 가사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사의 내용은 현대인이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현대성을 갖춘 가사의 악곡을 우리말의 구조를 잘 살리는 민요풍으로 부르니 송가인의 노래가 히트하는 것입니다. 김영동의 국악가요가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송가인의 트롯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악학궤범 서문에 “물(物)이 생기면 감정(感情)이 있게 되고 감정이 발하여 음(音)이 된다“(物生有情 情發爲音)는 구절도 나옵니다. 여기서 물은 사건입니다. 인간이 어떤 사건에 싸이면 감정이 일어나고 감정으로부터 음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공허한 가사로 된 노래는 듣는 사람에게 어떤 사건도 연상케 하지 못합니다.
국악 성악의 창법은 한국어의 구조에 어울립니다. 그런데 전통 국악 노래가 현대성이 없어서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대중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현대에 새로 창작된 국악가요도 전통 국악 악곡과 마찬가지로 가사가 공허합니다. 그래서 국악은 인기가 없는 것입니다. 국악을 대중화하려면, 현대적 가사에 국악의 선율을 입혀 국악 창법으로 불러야 합니다. 진정한 국악가요는 현대의 말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1)羅古記云 加耶國嘉實王見唐之樂器而造之 王以謂諸國方言各異 聲音豈可一哉
乃命樂師省熱縣人于勒造十二曲. 삼국사기(三國史記)』 악지(樂志).
(2) 장사훈. 최신 국악총론. 세광음악출판사. 1885. 30-32쪽
(3)최종민. 한국 전통 음악의 미학 사상. 집문당. 2005년 1판 2쇄. 129-130쪽.
(4)최종민, 위의 책. 1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