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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대가야제국의 부활 (1)

작성일 : 2021.01.19 10:59

대가야제국의 부활 /김하기

<연재를 시작하며>

고대가야의 역사는 기원전부터 6세기 중반까지 600여년이나 된다. 백제 700, 신라 1000년이지만 고려가 450, 조선이 500년이라고 볼 때 가야의 명맥은 우리 역사에서 상당한 기간을 차지한다. 하지만 고대국가 중 가장 먼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바람에 잊혀진 제국이 되고 말았다.

문예타임지에 연재를 시작한 소설 대가야제국의 부활은 역사서에 간단하게 언급된 가야사를 바탕으로 대가야의 하지왕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그가 동아시아를 무대로 보여준 활약상을 소설적으로 풀어낼 작정이다.

연재소설 대가야제국의 주인공 하지왕은 중국으로부터 본국왕[삼한(三韓)의 제왕]’이라는 관작을 받았던 실존인물이다. 영호남을 아우르는 영토 확장으로 대가야의 최절정기를 구가했고, 12(후대에는 25국으로 확대) 연맹체의 수장으로 인정받았다. 그를 중심으로 5세기 전후 100년간의 고대사를 스펙터클하게 전개하고 싶다. 북으로는 대륙을 가르는 육로 실크로드, 남으로는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외교와 무역, 전쟁의 대서사를 펼치겠다.

역사 전문가와 함께 답사팀을 만들어 20여 년간 낙동강과 지리산 일대를 답사하면서 가야사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과거 소설에서 단편적으로 가야사를 다루었지만, 오로지 가야사만을 위한 독립된 대하장편을 미처 쓰지 못해 언제나 큰 숙제를 안고 사는 것 같았다. 이제 문예타임즈에 숙제를 해결할 자리를 찾게 되어 마음이 기쁘다.

하지(荷知)왕은 역사 속에 묻힌 위대한 대가야의 정복군주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백제의 근초고왕, 신라의 진흥왕에 비견될 만한 왕이다. 지금도 고령(현재 해ᅟᅣᆼ정명을 대가야로 개칭함)의 지산동 가야 고분군에 가보면 신라의 고분군보다 더 큰 고분군이 나온다. 그중 가장 큰 44호 고분이 하지대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가야 12국 연맹체의 각기 다른 방언을 하나의 양식으로 통일하려한 상징물인 가야금과 우륵의 일화도 심도 있게 다룰 예정이다. 또 당시의 고대 언어가 상당부분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된 흔적을 발견, 매회 소설마다 소설 속에 사용된 단어를 지정해 그에 대한 어원을 탐구하는 각주도 달 것이다.

<소설의 줄거리>

하지대왕은 한반도 고대국가 중 가장 미약하고 조그만 국가였던 고령의 가야왕족으로 태어나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전쟁에 휘말려 처음엔 어린 시절 대부분을 신라에서 보내다 대가야로 귀국했으나 400년 광개토왕의 종발성(부산) 진출로 인해 고구려로 끌려 가 볼모로 잡혀 지내게 된다. 400년 광개초대왕의 종발성 진출은 전기 금관(김해)가야 시대를 끝내고 후기 대가야(고령) 시대를 여는 분기점이 된다.

하지왕은 고구려에서 살면서 원수이지만 위대한 광개토대왕의 정복 위업을 알게 되고, 고구려의 최전성기를 이끈 장수왕과 함께 형제처럼 자라며 제왕학에 눈을 뜬다.

그는 자신과 같이 인질로 잡혀 온 백제 공주 다해와 사랑에 빠지지만 장수왕에 의해 고구려 공주 상희와 정략결혼을 올린 뒤 대가야로 돌아온다.

대가야 왕이 된 하지는 대가야 12국 연맹체를 건설해 한반도 3국 시대를 4국시대로 재편하고 신라와 백제보다 더 큰 영토를 확보한다. 이후 금관가야 수로왕의 육상 실크로드와 그의 아내 허황후가 들어 온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한반도에서 중국, 중앙아시아, , 안남, 인도, 아리비아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교역을 펼쳐 동아시아의 맹주로 우뚝 서며 대가야제국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하지왕을 주인공으로 하고 당대 5세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지만 내용은 금관가야의 수로왕부터 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까지 통사를 다룰 작정이다.

김하기 소설가/ 약력

1958년 울산시 달동에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부산대, 부경대 등에서 가르쳤다. 1989년 단편 살아 있는 무덤’(창작과 비평, 가을호)으로 소설가로 등단했으며, 이후 완전한 만남” “은행나무사랑” “식민지 소년” “독도전쟁등의 책을 썼다. 수상경력으로는 제1회 임수경통일문학상, 10회 신동엽 창작기금 등을 수상했다. 현재 소설가, 칼럼니스트로 역사소설과 한국인의 창의성에 관심을 가지고 전 방위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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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제국의 부활

김하기

1부 하지태왕과 장수왕(1)

광개토대왕 4(394) 6월에 두 아이가 태어났다. 한 아이는 신과 인간의 축복을 받고 고구려 왕궁에서 태어났고, 한 아이는 신과 인간의 저주를 받아 가야의 움집에서 태어났다.

고구려 국내성 왕궁에서 태어난 아이는 광개토대왕의 아들 거련(장수왕)으로, 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신기에 도취된 신녀의 축복이 반복적으로 내렸고, 아기가 태어날 때는 황금자명고가 저절로 울리고 군사들이 도열해 뿔 나팔을 불었으며, 산파는 번쩍이는 황금가위로 탯줄을 잘랐고, 아버지 광개토호태왕은 전국에 대사면령을 내려 옥중에 갇힌 모든 죄수들을 풀어주고-물론 사형수는 석방시키지 않고 무기수로 감형시켰다-전국의 가가호호에 곡물을 한 자루씩 나눠주었고 수도인 국내성에 사는 주민에겐 귀한 미역을 선물로 내렸다.

반면에 우리 역사의 주인공 하지는 마치 베들레헴 마굿간에 태어난 예수처럼 대가야(고령)의 움집의 외양간에서 죽음의 칼 아래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다급한 나머지 탯줄을 이빨로 물어뜯어 잘랐으며 소똥이 묻어 냄새나는 짚단으로 아이를 둘둘 말아 똥간 밑으로 던졌다. 아이가 태어나기 한 달 전에 아버지는 참수되었으며 어머니는 아이를 낳자마자 아이의 아버지, 남편을 참수한 원수의 첩으로 들어갈 운명이었다.

하지만 두 아이 모두 우각성(右角星, 장군별)의 별자리 기운을 받고 태어났다. 우각성은 서양에서는 청순하고 수줍은 처녀자리 스피카에 해당하지만 동양에서는 위대한 장군이 되어 병사를 지휘하고 중원을 누비는 장군별이다. 장차 이 두 아이는 우각성의 기운을 받아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서로 자웅을 겨루면서 광개토대왕 근초고왕 진흥왕 못지 않는 정복군주가 된다.

장수왕 거련은 신인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아이였는데 태몽이 없었겠는가. 광개토대왕이 어느 날 꿈을 꾸는데 고구려의 시조 주몽을 만난 것이다. 주몽은 그에게 커다란 항아리를 주면서 말했다.

광개토야, 너는 늘 전쟁을 하느라 내게 제사 올리는 것을 게을리 하는구나. 내가 이 항아리를 줄 터이니 이제부터 제사를 까먹지 말도록 하여라.”

, 알겠사옵니다.”

광개토가 주몽에게서 받은 항아리는 하늘에 곡식을 담아 제사 지내는 신성한 호련(瑚璉)이었다. 그가 이상하게 생각해 호련 안을 들여다보니 용이 한 마리 누워 있다 하늘로 승천해 깜짝 놀라 꿈에서 깨었다.

광개토대왕은 꿈을 깬 뒤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장차 태자를 얻을 길몽이로다. 꿈에 거대한 호련을 보았으니 이름을 거련(巨璉)이라 하리라.”

태왕은 태몽 이후 태비가 회임한 것을 알고 아이의 이름을 거련으로 지어준 뒤, 이번에는 이끼가 웃자란 동명성왕 사당을 지나치지 않고 정성껏 주몽에게 제사를 지내고 남으로 출정을 떠났다. 꿈에서 제사를 게을리 했다는 시조의 질책도 질책이지만 이번 전쟁은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할 건곤일척의 중요한 싸움이었다.

이번엔 아신왕 이놈을 살려주지 않고 아작을 내버려야겠다!’

2년 전 백제의 아신왕은 고구려와 아리수(한강) 회전에서 광개토에게 패배한 뒤 월의 구천과 오의 부차처럼 와신상담, 절치부심을 했다. 아신왕은 외교를 능수능란하게 하는 좌평 목라근자를 보내 대가야의 하령왕, 신라의 내물왕과 삼국동맹을 맺게 해 북쪽의 불곰 같은 고구려가 한 발짝도 남으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건곤일척의 남북 대회전을 준비했다.

광개토대왕이 자랑하는 평양의 보기군을 이끌고 남으로 내려와보니 아리수 건너 백제, 가야, 신라가 삼국이 동맹을 맺고 군진을 치고 있었고, 아리수 하구에는 아신왕이 백제의 신국(臣國)인 왜까지 불러들여 왜선 100척이 들어와 있었다.

이젠 아신이 신라와 가야와 왜까지 불러들인 거야? 지난번에 아신을 사로잡았을 때 똥구멍에 장물을 내고 죽였어야 했거늘...내 이놈들을!”

광개토대왕은 말고삐를 잡고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그는 어디를 먼저 공격해야 할지를 잘 알고 있었다.

광개토대왕은 먼저 고상무 장군에게 국경수비대를 통솔해 약한 고리인 아리수 상류의 신라진영을 쳐라고 명령을 내렸다. 고상무 장군은 국경수비대 병력만으로 충분히 신라를 제압할 수 있었다.

후진국인 신라는 왕인지 마립간인지 이사금인지 아직 최고 존엄의 존호조차 분명치 않은 마당에 사돈국인 백제의 간청에 못 이겨 억지 춘향격으로 출병했다. 더욱이 고구려가 볼모로 잡고 있는 내물왕의 아우 실성을 여차하면 왕으로 책봉해 신라로 내려 보내면 내물왕은 당석에 목이 떨어질 지경이다. 때문에 광개토는 신라가 서둘러 전의를 포기하고 항복하리라는 것을 꿰뚫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상무가 진격하자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신라는 항복하고 내물왕은 백제와 왜와 가야를 치는데 선봉에 서겠다고까지 했다.

그럼, 마립간은 약한 고리인 가야를 치시오. 우린 보기군을 이끌고 백제와 왜를 치겠소.”

알겠나이다, 대왕마마.”

광개토대왕은 주력군인 백제와 왜를 고구려의 평양 주둔군인 보기군으로 제압했다. 아신왕을 생포해 목을 치려고 했으나 이번에도 아신왕은 광개토대왕의 영원한 노객(奴客, 신하)’임을 거듭 밝히며 목숨을 구걸했다. 광개토왕은 불같이 화가 났지만 항복하는 자에게는 너그러웠다. 제갈공명이 맹획을 칠종칠금(일곱번 사로잡고 일곱범 놓아줌)했듯이 광개토대왕도 아신왕을 지금까지 2, 앞으로 3, 5번 싸워 모두 이겨 오종오금한데서도 알 수 있듯이 적장들에게 관대했고, 자신에게는 엄격했다. 왜선은 한강수전에서 90척을 격침시키고 나머지 왜인들은 10척을 겨우 건져 꽁지 빠지게 일본으로 도망갔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서 끝까지 저항한 적은 뜻밖에도 대가야의 하령왕이었다. 하령왕은 신라 마립간 군대를 격파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국경수비대마저 괴롭혔다. 하령왕은 아리수 남쪽의 관악산을 등지고 버티다 밤에 고구려 국경수비대를 기습하여 광개토대왕의 오른팔인 고상무 장군을 잡아 목을 베었다. 심복을 잃어 대노한 태왕은 중국대륙을 휩쓴 고구려 정예기병 5천을 이끌고 대가야까지 쳐들어가 하령왕과 왕족의 삼족까지 모두 사로잡았다.

광개토대왕이 직접 장도를 빼어 하령왕의 목을 치기 전 말했다.

마지막 할 말은 없는가?”

패장은 말이 없다.”

짐은 용맹하고 지략이 있는 그대를 살려 나의 고굉(股肱, 팔다리)으로 삼고 싶다.”

대국이라면서 작은 우리 가야를 모조리 도륙한 네 놈을 용서할 수 없다. 절반의 백성을 잃은 수장으로서 어찌 도척 같은 네 따위에 목숨을 구걸한단 말인가!”

전쟁에서 사람이 죽는 것은 가을바람에 낙엽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거늘 무슨 원망과 회한이 있단 말인가. 옆에 있는 네 아내가 회임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에도 할 말이 없는가?”

우리를 욕보이려는가.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베어라.”

네 놈은 짐의 성격을 모르는가. 신라왕과 백제왕처럼 나에게 무릎을 꿇는 자는 노객(奴客,신하)으로 삼지만, 거란의 모용처럼 끝까지 반항하는 자는 목을 치고 삼족을 멸했다.”

하령왕이 핏발 선 눈으로 광개토대왕을 노려보며 말했다.

과거 너희 구려놈(고구려인을 비하하는 말)들은 나의 조부를 참수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능욕했다. 살려달라고 그렇게 빌었건만 결국 참수당한 모습을 보았다. 차라리 깨끗하게 저승길로 가겠다.”

하령, 백제의 아신과 신라의 내물은 거짓으로 항복하여도 짐이 관용을 베풀어 종통과 사직을 보존하게 했다. 짐에게 거짓으로라도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하여라. 그러면 너와 네 왕비를 살리고 종통을 잇도록 하겠다.”

구차하게 노객으로 사느니 이대로 죽어 중음신을 떠도는 원귀가 되어 네 놈의 사대육신과 혼백을 뜯어먹을 것이다.”

으음, 과연 네 놈의 방자함이 어디까지 가는지 한번 보자.”

하령왕의 말에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뚫린 광개토왕은 하령왕의 삼족 스무 명을 대가야성의 대정전 뜰에 무릎을 꿇렸다.

족간이 먼 놈부터 목을 치되, 네 놈의 입으로 그만할 때까지 벨 것이다.”

하령왕의 조····손 스무 명이 포승줄에 묶여 하령왕의 목전에서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베어라!”

광개토대왕이 참수의 명을 내리자 망나니가 칼을 휘둘렀다. 하령왕 종조부의 손자의 목이 뎅겅 날아가 땅에 뒹굴었다. 숙질의 아들, 백부의 손주들, 백숙과 형제들의 목이 차례대로 잎처럼 뚝뚝 떨어져 대정전 앞 품계석은 붉은 핏물로 작은 시내를 이루었다. 척족 중에 목숨에 미련이 남은 자들은 광개토대왕에게 목숨을 구걸하거나 하령왕을 원망했다. 사랑하는 여동생 보옥이 두려움에 온몸을 떨며 오빠, 제발 그만이라고 말해. 나 살고 싶어.’라고 말할 때 하령왕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러나 하령왕은 처연한 눈으로 바라만 볼 뿐 끝내 완고한 혀끝에 붙은 말을 삼키고 입술을 깨물었다. 망나니의 칼에 18개의 수급이 품계석 위로 떨어진 뒤 마침내 임산부인 여옥왕비의 차례가 되었다.

광개토대왕이 하령왕에게 말했다.

네 놈이 가야의 야만적인 순장풍습 때문에 수많은 족척의 죽음조차 파리 목숨처럼 하찮게 여기는 건가? 임산부인 네 아내의 죽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인가?”

대가야 왕비 여옥은 죽음 앞에서도 위엄과 품위를 잃지 않았다. 동백꽃은 떨어지기 전 가장 아름답듯 왕비의 모습은 더욱 처연한 우아함을 발산했다.

망나니가 칼을 번득였다.

그만!”

그만!’이라는 말에 내려치던 망나니의 칼이 왕비의 목등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췄다. 그만이라고 말한 자는 하령왕도 광개토대왕도 아닌 여옥 왕비였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누구보다도 품위 있게 죽으려던 그녀는 배 안에 있는 아이를 생각하니 결정적인 순간에 마음에 약해졌다. 어떤 굴욕과 수치를 당하더라도 뱃속의 아이만은 살리고 싶었다. 이 아이는 대가야의 시조 정견모주 이래 수백 년을 이어온 대가야의 종통이자 씨앗이며 희망이었다.

여옥은 여왕의 위엄과 품위를 내던지고 약한 지어미의 모습으로 울먹이며 말했다.

천지의 주인이신 광개토대왕이시여, 부디 자비를 베풀어 제 부군과 저의 목숨과 뱃속의 아이를 살려 사백년 대가야의 종묘사직을 보존하게 해 주십시오.”

그녀는 포승줄에 몸이 묶인 채로 무릎걸음을 걸어 광개토대왕 앞으로 나아가 엎드려 절했다.

나도 자비를 베풀고 싶다. 하지만 저 놈은 끝내 짐에게 굴복하지 않지 않느냐.”

태왕은 하령왕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하령, 네 처가 짐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더욱이 회임한 몸, 처자식을 살리고 네 목숨을 살려 대가야의 종통을 살릴 것인가 아니면 둘 다 내 칼에 죽을 것인가?”

광개토대왕이 직접 환두대도를 빼어들고 말했다. 광개토대왕은 하령왕이 굴복하기를 바랐다. 장화황후도 지금 회임한 몸인데 회임한 가야의 왕비를 죽이는 것이 꺼림칙했다. 그러나 하령왕은 죽음 앞에서도 태산처럼 의연했다.

그는 이글거리는 두 눈으로 광개토대왕을 쏘아보며 말했다.

한갓 갈대와 같은 아녀자의 말에 내가 네 놈에게 무릎을 꿇을까 보냐. 구려놈에게 목숨을 구걸한 자는 더 이상 내 아내도 대가야인도 아니다. 베어라!”

하령, 어리석고 잔인한 놈! 너희 둘을 내가 직접 베어 대가야의 종통을 진멸하겠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광개토대왕은 장검을 내리쳐 참수했다. 먼저 베어진 수급은 여옥이 아니라 하령왕이었다. 하령왕의 머리통이 피를 뿌리며 여옥 앞으로 굴러 떨어졌다. 하령왕의 부릅뜬 두 눈이 여옥을 보았다. 성난 두 눈이 점점 부드러워지면서 잠시 처연하게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목에서 흘러나온 하령왕의 피는 대정전의 품계석 위로 흐르다 가야의 속으로 스며들었다.

광개토대왕은 피가 뚝뚝 흐르는 칼을 들고 왕비를 보았다. 왕비는 회령의 죽음을 보고 넋을 잃고 쓰러졌다.

광개토대왕이 직접 왕비를 흔들어 깨우자 여옥은 가늘게 눈을 뜬 채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한 차례 죽음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고 나니 태왕의 눈에 비로소 전리품인 여인의 자태가 들어왔다. 서리가 내린 듯한 새하얀 이마, 함박눈이 내리면 걸릴 듯한 긴 속눈썹, 그 아래 박우물 같이 해맑게 젖은 눈동자, 눈물이 흘러내려 뚝뚝 떨어지는 오뚝한 코끝.

회임한 여자가 이토록 아름답다니, 죽이기엔 참으로 아까운 여자로다.’

광개토대왕은 여옥에게 말했다.

네가 짐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말했느냐?”

그러하옵니다. 태왕이시여. 제 뱃속에 있는 아이를 살려주소서.”

내가 보기에 어리석고 강퍅한 하령과는 애당초 어울리지 않는 인연이었다.”

광개토대왕은 여옥에게 겨눴던 칼을 거두고 이번 전쟁에서 하령왕의 칼에 죽은 고상무의 동생 고상지를 불렀다.

고상지 장군!”

, 폐하.”

고상지! 네가 대가야의 도독을 맡아 가야 십이국을 다스리되, 이 왕비를 가야의 국모로 모셔라. 장차 왕비가 출산하면 아이는 반드시 죽이고 왕비는 고구려의 국내성으로 보내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광개토대왕이 즉위한 지 4년 그동안 백여 차례 전투에서 태왕의 보기군은 백전백승했으나 단 한 번 가야의 하령왕의 군대에게 패했다. 용맹한 하령왕과 지혜로운 왕비의 뱃속에 있는 아이마저 살리면 가야의 범이 자라 장차 양호지환을 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태왕은 하령의 목을 대정전 궐문에 높이 건 뒤 모여든 가야의 문무백관과 백성에게 말했다.

너희 가야인들은 들어라. 짐의 은택은 위로는 황천에 미치고, 짐의 위무는 북으로는 숙신부터 남으로 삼한까지, 서로는 거란부터 동으로는 예맥까지 사해에 떨친다. 누구든 짐을 존숭하는 자는 살리고 짐에게 거역하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 대역죄인 하령처럼 짐과 고구려를 능멸하는 자는 참수해 장대에 매달되, 여옥 왕비처럼 짐에게 복종하는 자는 대대에 은전을 베푼다. 모두 대가야 도독 고상지와 국모 여옥 왕비를 짐을 섬기듯 하고, 함부로 고구려를 능멸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

대가야의 백성들은 일제히 광개토대왕에게 엎드려 절했다.

 

광개토대왕은 남방원정에서 대승하고 고구려의 국도 국내성으로 개선했다. 국도의 북쪽에 위치한 왕궁 환도성에는 태왕과 만조백관과 궁인들과 고구려인들이 장화황후의 출산을 기다렸다. 태왕이 만삭이 된 황후를 보니 가야의 왕비 여옥이 생각났다.

여옥도 지금쯤 출산을 하겠지.’

태왕은 매정하게 출산하자마자 갓난아이를 죽이라고 한 것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혹시 그일 때문에 거련의 출산에게도 영향을 미칠까봐 일말의 염려가 생겼다. 그러나 영락4(394) 615일 환도성 교상전에서 태자가 건강하게 태어나니, 태왕은 뛸 듯이 기뻐했다. 광개토대왕은 갓난아이를 안고 말했다.

거련, 우룰룰루. 네가 태어난 오늘이 내 생애에서 가장 기쁜 날이구나. 아비는 천하를 정복할 테니 너는 천하를 경영하여라. 고구려 왕실과 사해 신민의 복이 실로 너에게 달려 있도다.”

 

광개토대왕의 첫아들 거련(장수왕)은 만인의 축복 속에 태어났다. 태왕은 남방원정과 득남에 기뻐하여 열흘 간 잔치를 베풀었고 고구려의 역사를 기록하는 태사를 불러 남방원정 개선을 기록하게 했다.

태사는 사서에 기록했다.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渡海朝貢百殘加羅新羅 破三國以倭爲臣民

백제와 신라는 예로부터 짐의 속민이어서 조공을 해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 가야 신라에 조공하자 짐은 삼국을 격파하고 왜를 신민으로 삼았다.’

 

영락 4(394) 6월 대가야의 국모 여옥왕비의 출산이 임박했다. 대가야 도독 고상지는 광개토대왕의 명령대로 아이를 죽여 대가야의 종통을 끝내기로 했다. 대신 먼 혈족이자 대가야의 집사(승상) 박지를 가야왕으로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고상지가 여옥에게 말했다.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시지요.”

너무하십니다. 하령왕의 가문 삼족을 멸하고도 모자라 뱃속의 아이까지 죽이려하다니.”

여옥이 도독의 옷자락을 잡고 울부짖으며 간청했다.

아이를 낳자마자 죽이다니 차라리 이 어미도 함께 죽이세요.”

마마는 장차 천하의 주인인 광개토대왕의 소후가 되실 분, 뱃속의 아이에게는 일절 미련을 두지 마십시오.”

도독, 자비를 베푸시어 정견모후와 뇌질 가문의 씨앗 한 점이라도 보존하게 하소서.”

안 됩니다.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지엄하신 폐하의 명입니다.”

여옥은 뱃속의 아이를 살릴 가망이 없음을 알고 마지막으로 간청했다.

그렇다면 이 아이를 제 친정인 적화에서 낳게 해 주세요.”

적화는 고령에서 삼십 리 떨어진 마을로 그곳은 여옥이 첫아이를 유산해 태를 묻은 안태고향이었다.

안됩니다. 제가 지켜보는 이곳 교태전에서 낳으셔야 합니다.”

첫 아이를 유산해 친정 뒷산에 묻었습니다. 그 옆에 이 아이를 묻고 싶습니다.”

고상지는 잠시 고민하더니 왕비에게 말했다.

도중에 아이를 빼돌리거나 다른 계략을 부리면 왕비도 죽고 저도 죽습니다.”

결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고구려의 소후가 되면 장군의 호의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좋습니다. 친정으로 가는 길은 제가 직접 호위하겠습니다.”

고상지는 중무장한 호위병 열을 거느리고 직접 왕비를 가마에 태우고 적화로 이동했다. 삼십리길 이동 중에 아무런 방해나 공격을 받지 않았다. 친정인 적화에 도착했을 때 화려하고 웅장했던 저택은 이번 전쟁으로 불에 타 없어졌고, 어린 시절 왕비를 돌보던 유모와 찬모가 어두운 움막 속에서 짐승처럼 기거하고 있었다. 왕비가 움막 안에 들어가자 양수가 터지고 몸을 틀었다. 기나긴 산고 끝에 마침내 건강한 사내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고 세상에 태어났다.

고상지가 칼로 갓난아이의 뒷다리를 잡고 참수하자 400년 대가야의 뇌질 왕가 종통이 사라졌다.

태어나자마자 목이 잘린 갓난아이는 적화 뒷산 태아무덤 옆에 묻혔다.

여옥은 소복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뒤 작은 두 무덤을 끌어안고 주야 열흘을 통곡하며 울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