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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1.02 09:10 수정일 : 2021.01.02 09:21
나훈아, 영영
/이승주 시인
잊으라 했는데 잊어 달라 했는데
그런데도 아직 난 너를 잊지 못하네.
어떻게 잊을까 어찌하면 좋을까
세월 가도 아직 난 너를 못 잊어하네.
아직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나봐.
아마 나는 너를 잊을 수가 없나봐.
영원히 영원히 내가 사는 날까지
아니 내가 죽어도 영영 못 잊을 거야.
까맣게 잊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스파크가 일어나는 순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은 전등에 불이 들어오듯 순식간에 되살아난다. 기억은 결코 지워지거나 사라지는 그런 게 아니었다. 우리가 까맣게 잊었다고 믿었던 그 기억도 실상은 가슴 한 켠에 숨어 있었을 뿐.
세상사 한갓 사소한 일일지라도 내 뜻대로 온전히 이루어지는 건 아닌데, 내가 사랑하는 이는 날더러 “잊으라”고 한다. “잊어 달라”고 한다. 잊으라고 하고 잊어 달라고 하면 잊어 주면 그만이지만 기억은 잊는다고 잊어지는 그런 게 아니다. 그러한데, 너도 그런 것처럼 나도 너를 어떻게 잊을까. 잊어 달라는 마지막 그 말까지도 아직 나는 잊지 못하는데. “세월 가도” “영원히 내가 사는 날까지 아니 내가 죽어도 영영” 잊지 못할 것이라는 걸 너도 아는데, 잊으라는 말은 네가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 네가 네게 하는 말인 줄 너도 벌써 알고 있는데, 너도 아직 나를 사랑하고 있는데, “세월 가도” “영원히” 네가 사는 날까지 아니 네가 죽어도 영영 네가 나를 잊지 못할 것이라는 걸 내가 아는데, 너의 이름, 너의 눈동자, 너의 입술, 너의 미소, 너의 체온, 네가 바라보던 하늘, 네가 숨 쉬던 공기, 너를 바라보고 너와 함께 바라보던 행복한 시간들을 기억에서 “어찌하면” 지울 수가 있을 것인가.
남들은 님을 생각한다지만
나는 님을 잊고자 하여요
잊고자 할수록 생각히기로
행여 잊힐까 하고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잊으려면 생각히고
생각하면 잊히지 아니하니
잊도 말고 생각도 말아 볼까요
잊든지 생각든지 내버려두어 볼까요
그러나 그리도 아니 되고
끊임없는 생각 생각에 님뿐인데 어찌하여요
구태여 잊으려면
잊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잠과 죽음뿐이기로
님 두고 못하여요
아아 잊히지 않는 생각보다
잊고자 하는 그것이 더욱 괴롭습니다
―한용운, 「나는 잊고저」
정말, 잠들거나 죽으면 잊을 수가 있을까. “잠”이 다시 깰 수 없는 영원한 잠이고, “죽음”이 윤회를 초월한 해탈 아니라면? “아아 잊히지 않는 생각보다 잊고자 하는 그것이 더욱” 괴로운 건 잊고자 하는 그 마음 또한 버려야 할 집착으로 그 또한 크나큰 번뇌의 심지이니, 아, 어쩌자고 세월 가도 우리 ‘숙이’는 기억의 집에서 늙지도 않고 살고 있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