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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12.31 06:11
열 개의 손가락
/정성수
그렇지
나는 지금
열 개의 발가락으로
지구별 밀어내고 있지
그래
나는 이 순간
열 개의 손가락으로
우주 한 자락 끌어당기고 있지
그리하여
무한히 다가가는 것이다, 나는
지평선 너머 저쪽으로
가장 뜨거운 별
만날 때까지
하느님이
나의 알몸 포옹할 때까지
열 개의 손가락이
으스로지게 하느님 끌어안을 때까지
우리가 함께 허공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하나의 영혼이 될 때까지
-《시문학》2015,6월호
*정성수(경기도,양평군): 시인,소설가, 경희대학교 국문과 졸업,동 대학원 수료. 《월 간문학》 신인상(1979)으로 등단. 경희문학상, 동포문학상 , 한국문학 백년상 ,앨트웰 펜문학상 등 수상, 시집 『사람의 향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기호 여러분』 등, 경기도 PEN 회장 역임, 현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대학 재학시절인 1960년대 중반부터 기발하고 재미 있는 시를 창작하여 온 정 시인은 비록 늦게 데뷔하였으나 벌써 10권이 넘는 시집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소설도 쓰고 시비평도 왕성하게 한다. 10년 전에는 시집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2009,월간문학 출판부)를 내어 시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하였다. 그의 짧은 시는 일본의 단시 하이쿠를 능가하는 감동을 준다고 평가되기도 하였다.
이 시는 그의 또 다른 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우선 상상력의 공간이 우주적이다. 체험에 바탕을 두고 시를 창작하는 많은 시인들은 시의 배경이나 상상력의 공간이 지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그는 이 작품에서 지구를 벗어나 우주를 향하는 광대무변의 공간적 상상력을 전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적 화자 나는 발가락으로는 지구를 밀어내고, 손가락으로는 우주를 잡아당기고 있다는 기발하고 웃음을 자아내는 표현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시 속에서의 웃음은 가볍지 않다. 화자가 알몸으로 하느님과 포옹한다든지, 하느님과 함께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든지 하는 표현에서는 형이상학적 가치까지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육신의 사라짐과 영혼의 획득이라는 극히 종교적인 명제까지 시 속에 등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궁극적인 관심’은 같은 지면에 발표된 다른 작품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양왕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