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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12.26 08:59
김상진, 고향이 좋아
이승주 (시인)
오늘날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 고향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아마도 신유목민의 시대라 그런지는 몰라도 고향의 시샘(詩泉)은 많이 마르고 메워진 까닭인지 모른다. 그리고 가요에 있어서도 예전의 흘러간 가요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가 많았지만 요즘 신세대들의 노래에서는 고향을 찾기 힘들다. 시에서도 노래에서도 고향이 자취를 감춘 걸 보면 우리 마음에도 어느덧 고향이 사라지고 없는 건 아닌지.
고향 상실은 곧 우리의 정서가 뿌리 닿을 곳이 없음을 의미하며, 그로 인해 타향살이 거친 세파에 시달릴수록 우리 가슴은 위안 없는 고독이 된다. 그래도 예전에는 외로울 때는 달을 쳐다보고 고향 노래를 부르며 고향의 뒷동산을 그리워했지만 이제는 그리워할 뒷동산도 불러볼 노래도 아마 없다.
타향도 정이 들면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말을 했던가 바보처럼 바보처럼
아니야 아니야 그것은 거짓말
향수를 달래려고 술에 취해 하는 말이야
아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
타향도 정을 두면 정을 두면 고향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말을 했던가 바보처럼 바보처럼
아니야 아니야 그것은 거짓말
님 생각 고향 생각 달래려고 하던 말이야
아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
향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해방 이전에는 신산한 유랑의 삶 속에서 일제에 빼앗긴 고향에 대한 향수요, 6․25 이후에는 분단과 이산으로 인한 향수로 꿈에서나 보는 고향이요, 70년대 이후 산업사회의 도시화에 편입되면서는 수출 역군과 산업 전사가 되어 명절 때나 고향을 찾는 귀성객이 된다.
김상진의 「고향이 좋아」는 정 붙이지 못하는 타향살이에서 향수를 달래려고 술이 취해 타향도 정 들면 고향이라고 말해 보지만 그래도 타향은 타향일 뿐 타향이 고향과 같을 수는 없음을 노래한다. 고향은 타향이 전제될 때 고향이 된다. 타향이 없으면 고향도 없다. 향수는 타향이 전제될 때 향수가 된다. 타향이 없다면 향수도 없다. 고향은 시공간적으로 타향으로부터 멀리 있을수록 더욱 고향이 되고 향수는 고향이 시공간적으로 타향으로부터 멀리 있을수록 더욱 향수가 된다. 시공간적으로 타향으로부터 멀리 있을수록, 타향살이가 시리고 각박할수록 고향은 그만큼 더 따뜻한 안식처가 되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님 생각”처럼 깊어진다.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씨를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 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백석, 「고향」
백석의 「고향」은 타지 북관(北關)에서 만난 의원을 통해 고향이라는 것이 타향과 같을 수가 없는 까닭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그것은 동향(同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초면의 낯섦을 허물고 빙긋한 웃음을 띠게 하며, 맥을 짚는 손길에 단번에 따스하고 부드러운 인정을 통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향의 원형질이며, 백석의 「고향」은 고향에 대한 원형질을 보여주고 우리가 잊고 있는 고향과 그 인정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부모님을 따라 내가 나고 그때까지 유년의 시절을 보낸, 지금 행정구역명으로 대구시 동구 신평동 안태고향을 떠나 침산동으로 나왔다. 어린 나이에 안태고향을 떠나 남은 기억은 적고 희미하지만, 대문 앞과 뒤뜰에 감나무가 서 있고 그때 생각으로는 마당이 무척 넓어 마당을 질러가려면 종아리를 쪼는 장닭을 살펴야 했다. 고샅길 끝 철길 건너기 전 공터에 거인처럼 서 있던 느티나무에는 그네를 매었으며, 능금꽃 향내가 날리는 능금밭을 지나면 흰 비단을 푼 듯 물 맑은 금호강이었다. 동촌비행장이 멀지 않은 곳이라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무시로 보았으며, 혼자 심심할 때는 대청 뒷문으로 저 멀리 언덕을 기어 넘는 기차의 차량을 손을 꼽으며 헤아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얼마쯤 한 뒤 나는 문득 그 고향집이 그리워 그곳을 찾았는데 안타깝게도 집 앞으로 큰 신작로가 나면서 마을도 없어지고 우리 집도 낯 설은 교회로 바뀌어 있었다.
개발시대와 더불어 고향의 원형은 이제 많이 사라졌지만 고향은 아무래도 재개발보다는 영원한 보존의 개념이다. 산업사회 이후로 물리적 고향의 느티나무는 하나둘 점차 사라졌다 해도 우리 가슴 속에 근원적인 향수로 살아 있는 정서적 고향의 붉은 감나무는 사라질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