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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12.26 08:54 수정일 : 2020.12.28 11:11
본래의 계면조는 민속악에 남아있어
-계면조는 원래 서름조이다
/제민이<가곡전수자>
영화 대부 1의 서두는 명암의 대비로 유명합니다. 어두운 방에서는 대부에게 한 남자가 딸을 폭행한 남자를 죽여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때 바깥에서는, 태양이 환히 비치는 정원에서는 대부의 딸 결혼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어둠과 밝음은 인간 세상을 구성하는 상반된 두 국면입니다. 이런 양면성은 음악에도 나타납니다. 인생의 밝고 어두운 면은 서양음악에서 장조와 단조로, 그리고 국악에서 평조와 계면조로 표출됩니다. 장조와 평조는 즐겁고 화평한 분위기를, 계면조는 슬프고 서러운 분위기를 자아내어 음악은 인간 세상의 양면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악에서 이런 양면성이 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조선 중기부터 계면조는 변질되어 정악에서는 본래 특성인 애절함이 다 없어졌습니다. 음악이 슬프기만 해도 부담스럽겠지만, 모두 화평하기만 해도 재미없습니다. 정악은 탈계면조함으로써 인생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음악은 공허하고 지루합니다. 그런데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본래의 계면조는 민속악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정악(正樂)은 영산회상이나 가곡처럼 궁정과 상류사회의 음악을 가리킵니다(1). 정악과 반대 개념은 민속악입니다. 향악은 당악과 대비되어 우리 고유의 악을 지칭합니다. 그리고 아악은 고려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중국의 궁정악입니다.
계면조는 슬퍼서 아프게 한다.
평조와 계면조는 옛날부터 내려온 대표적 두 향악조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부터 비롯한 것인지 분명치 않습니다. 시용향악보등에 기록된 악곡들의 악조 명을 보고 고려시대에도 평조와 계면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평조는 삼국사기에 나타납니다. 반면 계면조라는 악조명은 문헌상 세조실록 1권의 기록이 처음입니다(2).
“일찍이 달밤에 세조가 영인(伶人) 허오(許吾)에게 지시하여 피리로 계면조(界面調)(우조는 속악에서는 계면조라고 한다)를 불게 하였더니, 이를 듣고 슬퍼서 가슴 아프지(哀傷) 않는 자가 없었다.”(3)
영인(伶人)은 악공입니다. 세조가 악공에게 피리로 계면조 악곡을 불게 하였더니 모두가 슬프고 가슴 아팠다는 것입니다. 우조는 아악의 5조 중 하나인데, 이것을 속악에서는 치조라고 부른다는 지적이 악학궤범에도 나옵니다.
계면조는 ‘우’를 중심으로 음들이 배열되어 있습니다. 향악에서는 중심음을 ‘궁’이라고 부릅니다. 아악에서는 ‘궁’이 7음의 기준음인데 반해, 향악에서는 중심음을 가리키니 궁의 의미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계면조의 음계는 중심음 우(향악에서는 궁)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상1은 중심음보다 3율 높고, 상2는 상1보다 2율이 높습니다. 반면 평조는 ‘치’를 중심으로 음들이 배열되어 있습니다. 평조의 음계는 중심음 치(향악에서는 궁)로부터 위로 올라가며 상1은 중심음보다 2율 높고, 상2는 상1보다 3율 높습니다. 중심음과 상 2의 간격은 평조와 계면조 모두 5율입니다. 평조와 계면조는 결정적 차이는 중심음 궁과 상1의 간격입니다. 평조는 그것이 2율 간격이고, 계면조는 3율입니다.
계면조가 변질되었다
18세기 중엽부터 정악의 계면조는 상1이 생략되어 본래의 특징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정악은 평조이든 계면조이든 어느 곡이나 화평한 곡태를 지닌 음악이 되었습니다. 그 근본원인은 정악의 계면조가 변질된 데 있습니다. 정악의 계면조는 본래의 상1을 잃어버려, 서름조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더 이상 서럽지 않고 화평한 느낌을 주는 악조가 된 것입니다(4). 현전의 정악 계면조는 본래의 계면조와 아주 다른 것입니다. 현전 정악 계면조는 상1이 없어서 화평한 곡태를 보이지만 본래의 계면조는 상1을 구비한 것이고 또한 그것은 일종의 서름조였을 것입니다.
계면조는 처음 문헌에 기록되었을 때부터 슬프고 아픈 것으로 규정되었습니다. 그 후도 계면조가 서름조라는 점을 지적한 문헌 기록들을 황 준연 교수는 찾아냅니다(5). 그런데 악학궤범에는 계면조를 슬픈 것이라고 규정하지 않고 ‘본래 정률이 없다’(本無定律)고 하였습니다. 이말이 무슨 뜻인지 학자들을 혼란스럽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황준연 교수는 그것을 계면조가 단조로운 보통의 5음 음계가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나아가 그는 거문고 고악보 한금신보(韓琴新譜)의 계면조현법(界面調絃法)과 그 대목을 연결하여, 계면조 선율은 일정한 지법은 있으나 그것에 구애됨이 없이 농현을 많이 하는 음악이고, 그래서 소리가 슬픈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예전의 계면조가 슬픈 것이었다는 점은 여러 문헌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면조로 된 예전의 영산회상이나 가곡은 오늘날의 악곡처럼 곡태가 화평한 것이 아니라 현전의 것과 사뭇 달랐을 것입니다.
본래의 계면조는 민속악에 남아 있습니다. 정악의 계면조와 민속악의 계면조를 비교하면, 둘 다 중심음 궁에서 5율 간격의 하2, 궁에서 5율 간격의 상2를 공유합니다. 그러나 상1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정악과 민속악의 핵심적 차이는 음계 구성 중 궁보다 3율(단3도)높은 상1의 유무에 있는 것입니다. 정악에는 상1이 없고 민속악에는 남아 있습니다(6). 바로 이것이 정악의 계면조와 민속악의 계면조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메나리토리와 육자배기토리
계면조 계열의 민요에 메나리토리와 육자배기토리 민요들이 포함된다. 그중 메나리토리는 한반도 동부지역에서 전승된 민요, 무가, 기악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음계이자 선율로, ‘메나리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메나리토리는 주요 구성음이 ‘미, 솔, 라, 도, 레’입니다. 라가 중심음 즉 궁입니다. 궁(라)과 상1(도) 사이는 3율 간격이며, 상1(도)과 상2(레)는 2율 간격입니다. 궁보다 3율 높은 상1이 살아있으니 메나리토리 악곡은 계면조의 본성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육자배기토리의 대표적 민요는 육자배기입니다. 중심음은 라이며, 음계는 ‘미-솔-라-도(시)-레’입니다. ‘라’가 궁이고 상1은 도이니, 궁과 상1 사이는 3율 간격입니다. 그런데 ‘시’가 ‘도’와 함께 쓰입니다. ‘시’를 상1로 본다면 이것은 본래 계면조 음계는 아닙니다. 황준연 교수는 ‘시’를 무시하고, 궁과 상1 사이가 약간 변화되긴 했으나 육자백이가 본래의 계면조에 해당한다고 봅니다(7).
민속악에서 본래의 계면조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에 대해 장사훈 교수과 황준연 교수는 의견이 다른 듯합니다. 장사훈 교수는 5음 음계로 된 계면조는 민속악에서도 드물고 대개는 한 두음이 탈락되어 변질된 계면조라고 여깁니다. 반면 황준연 교수는 본래의 계면조가 드물다는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현재 정악에서는 본래의 계면조가 완전히 사라졌고, 민속악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변질 현상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왜 계면조는 변질되었을까요? 저는 세조의 말에 단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 언급한 세조실록 인용문 다음에 다음 구절이 연속됩니다.
“용(瑢)이 세조에게 이르기를, ‘대개 악(樂)이란 애련(哀憐)하면서도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을 귀히 여기는데, 형(兄)은 어찌 계면조를 씁니까? ’ 하니,
세조가 말하기를, ‘옛날 진(陳)나라 후주(後主)가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 때문에 망하였지만, 당(唐)나라 태종(太宗)도 이 곡을 들었다. 그리고 그대는 두견(杜鵑)의 소리를 그치게 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세종이 문종에게 이르기를, ‘악(樂)을 아는 자는 우리나라에서 오로지 진평대군(晉平大君)뿐이니, 이는 전후(前後)에도 있지 아니할 것이다.’ 하였다.”(8)
계면조를 들으면 사람들은 슬퍼서 마음이 아픕니다. 세조의 동생인 안평대군 용은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음악은 귀하지 않은데 왜 그런 음악을 연주하게 하느냐며 형에게 의문을 제기합니다. 세조는 ‘옥수후정화’라는 악곡을 예로 들며 이 노래가 나라를 망하게 하였지만 당 태종을 들었다는 점은 환기시킵니다. ‘옥수후정화’는 요염한 곡조입니다. 남녀의 사랑은 지나치면 나쁜 결과를 초래하지만 그것을 인생에서 제거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슬픈 노래는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그것도 인생이므로 부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조의 말대로 누가 두견의 소리를 그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세종은 세조의 답변을 듣고 악(樂)의 본질을 아는 자는 진평대군이 전무후무(前無後無)할 것이라 극찬합니다. 진평대군은 세조입니다.
계면조의 변질은 악을 모르는 조선의 선비들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화평한 악곡만 귀하게 여기고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곡을 천하게 보았습니다. 계면조는 여기에 포함되어, 본래 서름조의 속성을 잃어버리고 그냥 화평한 음악으로 변질 되었습니다. 인생에는 밝음과 어두음이 공존하므로, 계면조가 없는 음악은 호소력이 떨어집니다. 현대인이 국악을 좋아하게 하려면 국악이 매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세태만 탓할 일이 아닙니다. 국악이 본래의 계면조를 되찾아 인생의 양면성을 반영한다면, 대중은 좋아할 것입니다.
(1) 장사훈 교수는 아악을 정악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며 여기에 영산회상과 정읍을 넣는다. 그리고 가곡과 가사, 시조는 가악에 넣고, 산조와 민요를 다른 범주로 분류한다(장사훈. 최신 국악총론. 세광음악출판사. 1988년 5판. 84-100). 반면 황준연 교수는 정악에 영산회상과 가곡을 포함시킨다. “정악과 민속악은 각각 수 많은 악곡을 포함하나, 그 많은 악곡들 가운데 현전의 영산회상과 가곡이 정악의 대표적 악곡이고 한편으로는 판소리와 산조가 민속악을 대표한다는 견해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황준연. 한국전통음악의 악조.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2년 초판 3쇄. 171-172쪽)
(2)황준연. 위의 책. 62.
(3)嘗於月夜, 世祖敎伶人許吾笛界面調, 【羽調俗謂之界面調。】 聞者莫不哀傷 (세조실록 1권, 총서 3번째기사)
(4)황준연. 위의 책. 175-176쪽.
(5)황준연. 176-177쪽.
(6)황준연. 위의 책. 174쪽.
(7)황준연. 위의 책. 184쪽.
(8)瑢謂世祖曰: "夫樂者, 貴哀而不傷, 兄何用界面調也?" 世祖曰: "昔陳後主以《玉樹後庭花》亡, 然唐 太宗亦聽之。 且子其能止杜鵑聲乎?" 世宗又謂文宗曰: "知樂者, 我國中獨晋平耳, 前後所未有者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