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양왕용의 시 읽기
작성일 : 2020.12.25 05:18
사마리아 2
/하 현 식
지하철 낮은 승강장에 내려서면
소모되어가는 지상의 소음이
더욱 깊게 줄을 서서 달려왔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기계음의 여진이
신명나는 기억을 몰아오고
하늘로 향하는 번민 한 자락씩
개찰구를 빠져 나갔다
빗금 그어진 시멘트 바닥에는
애잔한 외국어들이 묻어 있고
트라우마를 다독이는 아침이
가까스로
거대한 침묵을 받쳐들고
겨운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길은 두 갈래 레일에 얹혀
간흘적으로 새어나오는 신음을 달래며
짙은 안개 사이로 오르내렸다
마침내 절룩거리는 통로가 열리고
저만치서 머뭇거리는 풍경이
접어둔 세상을 풀어내었다
한동안 흔적을 숨긴
영혼들의 초췌한 뒷모습이 일렁이고
꽃을 씹으며 가는
인간들의 눈시울이 뜨겁게 흔들거렸다
봄은 한층 더 멀리 있고
나부끼는 허공이 아득히 쓰러지고 있었다
-《시와 사상》 2015 봄호
*하현식(부산시 연제구): 시인, 서라벌예술대 문예창작과 졸업, 《현대시학》 등단(1973)
항우문학상, 부산시협상 등 수상, 시집 『브니엘 일기』,『암장』, 『칼』 등과 시평론집 『절망의 구조』,『한국시인론』,『한국기독시평설』, 등이 있음.
서러벌예대 출신으로 작고한 소설가 이문구와 동기인 하 시인은 시 뿐만 아니라 시비평도 능하여 여러 권의 평론집도 발간 하였다. 그리고 시창작 지도에도 일가견이 있어, 그의 문하생으로 경향각지의 신문사 신춘문예와 문예지를 통하여 시단에 데뷔한 시인들이 70명이 넘었다. 그의 시창작지도는 엄격하여 아무리 오래 공부하여도 일정한 수준이 안되면 아예 투고를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이름나 있다. 그의 시는 이러한 엄격성과 염결성은 보여주면서 감정을 철저히 절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이미지의 환상성도 보여준다.
이 시는 그가 암투병을 이긴 이후의 첫번 째로 발표하는 2편 가운데 하나이다. 이 시는 ‘사마리아’라는 제목에서 우선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의 지명으로 이스라엘이 구약시대 솔로몬 왕 이후에 남북으로 분열 되어 북쪽은 이스라엘 남쪽은 유다가 되는데, 그 때의 북이스라엘 수도가 사마리아이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이 바벨론 느부가넷살 왕에게 망하는 남유다보다 먼저 앗시리아에 망하게 되어 그 쪽 지역 사람들은 앗시리아인과 피가 섞이는 혼혈족이 된다. 그래서 남유다 사람들의 경멸의 대상이 되고, 신약 시대 즉 예수님 시대에는 출입도 안하는 땅이 된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님은 강도 당한 사람을 구해주는 선량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사용하시고, 실제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신다. 이렇게 현실적으로는 오욕의 땅이지만 예수님은 그 땅과 그 땅의 사람들을 사랑하셨다. 하 시인은 이러한 중층적 의미가 있는 성경의 지명을 제목으로 하여 연작시 두 편을 썼다.
이 작품은 지하철 풍경을 환상적인 이미지로 형사화한 작품이다. 군데군데 관념과 정서를 감각화 하는 솜씨는 젊은 날의 하 시인의 작품에 비해 손색없는 긴장감과 상상력의 폭을 보여주고 있다. 지하철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스크린 도어가 설치된 우리나라 지하철 풍경과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의 이질감 등을 생각하면서 이 시를 읽으면 중층적이고 환상적인 의미를 어느 정도 파악하면서 공감하게 될 것이다.(양왕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