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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12.23 09:20 수정일 : 2020.12.24 01:05
곱창 골목의 아이---
김홍희의 ‘문현동 곱창 골목’ 사진(부산일보 2003. 7. 18. 27면)을 보고

한국 사회의 폐쇄성은 문현동 곱창 골목에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열린 사회에는 의견의 대립을 해결할 공동의 진리가 존재하지만, 닫힌 사회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모두 자기 집단의 신념을 보편적 진리라고 우겨대는 우리의 억지 문화는 곱창 골목의 술 잔치에서 잘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만찬 문화는 단순한 유흥이 아니라 자기 확신을 집단적으로 추구하는 종교적 의식과 흡사합니다. 종교에서 신도들이 찬양과 봉헌을 여럿이 함께 거행함으로써 자기들의 주관적 믿음을 객관적 진리로 변환하듯이, 곱창 골목에서는 친구들이 술잔을 부딪침으로써 자신들의 신념과 행위가 정당하다는 확인을 주고 받는 것입니다. 술이란 혼자 마시면 술맛이 안 난다고들 합니다. 곱창 골목 사진에도 ‘나 홀로 주객’은 보이지 않습니다. 술의 화학적 성분은 언제나 같을 테지만 혼자 마시지 않는 것은 서로 옳다고 맞장구 쳐주는 상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확신의 추구에는 공동성의 범위를 기준으로 세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첫째 주관적 방식은 다른 사람과 완전히 단절되어 자기 확신을 오로지 자기 판단에서 얻는 것입니다. 암자에서 수행하는 수도승이 주관적 확신 추구의 대표적 유형입니다. 이 방식으로는 어떤 공동체도 형성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상호적 방식은 술자리나 동창회처럼 소수의 주변 사람과 상호 인정을 교환함으로써 자기 확신을 획득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방식은 작은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지만, 국가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세 번째 자율적 방식은 자기 확신의 객관적 절차와 기관을 확립하고 거기에서 자기 인정을 획득하는 방식입니다. 국민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가치를 헌법에 투영하고 이것을 실현함으로써 자기 확신을 추구하는 현대 민주국가의 시민 생활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율적 방식으로 자기 확신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행위와 인식의 최종적 토대에 대해 국민들이 동의하는 공통적 믿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근대 국가에는 국가 구성원들의 기본 신념은 헌법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헌법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적 문서일뿐 시민들의 행위와 인식을 안내하고 정당화하는 구실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헌법을 읽어 보지도 않고, 자기 행동이 왜 옳은지 헌법에 바탕을 두고 토론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아무런 공통의 토대가 없기 때문에, 자기 확신은 곱창 골목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잘 하고 있다는 확신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들은 불안한 심정으로 문현동 골목으로 모여듭니다. 그들은 빙 둘러 모여 앉아 나는 네가 옳다고 하고, 너는 내가 잘 낫다고 하며 서로 서로 인정을 교환합니다. 술잔 돌리기와 잔 부딪치기가 빠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상호 인정의 의식에 참여하겠다는 다짐이기 때문입니다. 취기와 객기, 맞장구가 어울린 시끌벅적한 잔치는 별다른 이유 없이도 자신들의 생각을 진리라고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나 곱창 골목은 작은 공동체밖에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술자리란 원래 지역, 직장, 동네, 학교의 끈이 닿은 사람들끼리만 어울리는 좁은 공간이기 때문에 , 여기서 벌어지는 상호 인정은 필연적으로 좁은 집단에게만 타당하게 됩니다. 함께 술잔을 부딪치는 사람들만을 진리로 여기는 곱창 골목의 만찬은 지역주의와 분파주의를 키우고 있습니다. 전국 어디에나 곱창 골목이 있을 것입니다. 곱창골목의 만찬 문화가 자기 확신의 주요 무대로 남아있는 한, 한국은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여러 지역의 연합체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집단들 사이에 보편적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 국가에는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합니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견해를 정당화할 공통의 토대가 필요합니다. 행위와 신념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할 일정한 원칙에 모든 집단이 동의하지 않고 있는데, 무엇을 가지고 좋고 나쁨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공동의 선과 정의가 없는 사회에서 개인이 기댈 곳은 집단의 이익과 지역의 정서밖에 없습니다.
사진의 오른쪽 아래에 한 아이가 고기 굽는 연기에 논을 비비며 불편하게 앉아 있습니다. 그 아이에 자꾸 시선이 가는 것은 곱창 골목 국가로 전락해가는 조국에 대한 저의 안타까움 때문일 것입니다.<배학수 경성대 교수>